98 계자 닫는 날, 8월 21일 흙날

조회 수 1471 추천 수 0 2004.08.25 23:53:00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

이른 아침,
침묵 속에 잡초를 뽑았습니다.
내가 소리없이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존재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다온이,
결국 풀을 뽑고 모인 평가자리에선 아무말 않았지만
나중에,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마당에 잡초를 뽑는데
힘든 엄마를 생각했다 했습니다.
소리없는 시간들이 우리를 얼마나 사유하게 하던지요.

아이들이 갔습니다.
예쁘게 눈웃음 지으며
조목조목 말 잘하던 세훈이도 가고,
김해파에서 외할머니 사시는 부산으로 이사간,
사연 많은 김제우도 가고,
한 여덟 차례는 불렀을 걸요,
이름이 잘 안들어와서,
성종이 말입니다,
묵직한 그도 가고,
유진이와 현휘한테 사랑받던 영신이도 가고,
돌연구 보고서에 재능을 발휘하던 꼼꼼남 땅(한얼이)도 가고,
반듯해서 뉘집 자식인가 싶던 재용이도 가고,
곤충박사 범준이도,
은근히 재미나게 말하던 건용이도,
피아노를 같이 치며 노래 잘하던, 살갑던 현우도,
어떤 시간이든 천천히 산책하는 아이같던 문인영도,
기타리스트와 발레리스트의 딸답던 예림이,
쩌렁쩌렁 목청좋던 유진이,
제 코의 약점을 잘알아
넘어지는 다급한 순간에도 고개돌릴 줄 알던 은비,
또 올라고 일부러 뭔가 흘려놓고 가겠다는 용석이,
혼자 야물기만 하던 입이 이젠 사람 사이에서 야물줄 아는 연규,
여물어서 어리다고 걱정할 것 없던 정훈이,
눈 나빠진다고 안경 좀 끼고 있으라
몇 번이나 말해주어야 했던,
집에 가면 예서 맛나게 먹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달랄 거라던 상현이,
또 추자며 신나게 몸 흔들던 오인영,
아저씨같는 말들로 웃기던 도흔이,
샘한테 매달려다니던 다온이,
이야기주머니 민재,
참해서 돌아보고 또 보던 은정이,
시끄러워 죽겠다고 부르면 멋쩍어하며 또 말하는,
사람좋은 2% 준화,
선생님, 편지요,
엄마가 전해주셨다던 편지를
가려고 제 가방 되싸다가 발견해서 꺼내놓는 여연,
어른스러워서 손이라곤 갈 일 없던 다예,
무엇이나 진지하게 뎀비던 윤규,
열심히 요리하던 넙대대한 성진,
순하고 선한 상우,
담엔 꼭 동생 붙여온다는 부채귀신 호정,
경단을 잘빚던,
엄마가 참 보고픈데 많이 참는 게 눈에 뵈던 재은이,
엄마가 안떠오를 만치 재미있었다 고백하는 채리,
달리기를 좋아하던,
찐빵을 잘먹던 민수,
연극놀이에서 정말 신이나 뒤로 나자빠지던 운택,
산오름의 질감을 잘 받던 성훈,
다른 캠프의 지루함과 물꼬를 견주어주던,
수박인형만들기에 같이 재미났던,
미워할꺼야의 명대사 주인공 윤석,
이 곳의 자연을(특히 잠자리와 꽃을) 누구보다 즐기던 건용,
장구도 잘치고 북을 치며 흥을 한껏 내던 민아,
산을 내려와 누구보다 뿌듯해하던 현휘,
정말이지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돌아보던 맹재우,
생긴 것처럼 바느질도 그리 한다 싶던 여문 나현이,
그리고 달리기할 때 져서 아쉬웠다던,
더러 잠 서설에 엄마가 그리워 울었으나
날이 새면 말짱해서 좇아다니던 용승이도 갔습니다.
"아싸, 서울 가고요!"
가방 메고 저도 다녀오마 꾸벅 인사하고
냅다 뛰어오른 류옥하다까지 탄 버스가
저어기 나갑니다.
자유학교 노래를 마지막으로 다시 부르며
가을과 겨울에 다시 보자고들 꼭꼭 다짐하며 떠났습니다.

품앗이 샘들한테 작은 사고가 있어
열 여덟이 하기로 했던 계자가
열 넷의 어른들로 진행하게 되었더랍니다.
늦게 들어왔으니 일을 좀 더해야지 않겠냐는 선진샘과
아이들 비어있는 물꼬도 머물러 보며 손을 보태겠다는,
귀한 직장 휴가를 예 쏟는 나윤샘이 남고
(물론 공동체 식구들두요)
다른 샘들은 짐을 꾸렸지요.
특수교사로 일하는, 귀한 방학을 물꼬에 내주었던 유상샘이
어제 아이들 산오름 떠난 학교를 구석구석 청소하고 가고,
내 아이가 없는 곳에서 다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 속에서 느낀 게 많았다며
방문자 영진샘 정숙샘은 차 한 잔을 더 나누다 가셨고,
온 몸을 물꼬와 아이들에게 함몰되었던 승현샘도,
우리의 빛나는 새끼일꾼 수진형아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
물꼬에서 묵으며 길을 찾는다는 유효진샘도 가셨습니다.
"TV랑(물꼬 방영되었던) 느낌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의 정말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그 말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홈피 글 읽으며 사람이 되는 교육이라든가 적혀있는 말들이 다 좋았고...
수업도 주고, 부족한데 맡겨주고... 해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고..."
효진샘은 아셨을까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훨 많았단 걸.
수진이,
물꼬가 길렀고(마치 전과정을 그랬다는 듯이?)
물꼬(생각)처럼 큰 아이입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샘들은 나를 어떻게 봤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지요.
새끼일꾼들에게도 얼마나 귀한 자리일지요.
냉정하게 자기를 볼 수 있는 자리,
어른들이랑 호흡하며 성큼 성장하는 자리.
저런 딸이라면, 어떤 앞날을 걱정하려는지요.
오랜 세월 그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교육, 그거 부모의 사람됨, 어른들 사람됨 아니더이까.
잘 살아야겠습니다.

아,
모두 모두,
정말 정말,
애쓰셨습니다!
또 뵙지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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