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21.쇠날. 오후 잠시 흐림

조회 수 1220 추천 수 0 2012.10.16 08:04:20

 

 

삼도봉(1,176m) 안부-화주봉(1,207m)-우두령-괘방령-추풍령,

백두대간이 이리 이어지지요.

아이들을 앞세우고 몇 차례 걸었던 길입니다.

 

그 우두령을 향해 이른 아침 아이를 앞세우고 나섰습니다.

“니는 좋겠다. 에미 애비 잘 만나 학교도 안 다니고...”

교장으로 올해 퇴임하시는 이모부가 달고 다니시는 말씀처럼

산골에서 홀로 공부하는 아이는 생활이 숭글숭글하나

자주 어미 일에 이리 동원되기 일쑤.

 

우두령 못 미쳐 차를 세우고 화주봉 쪽 숲으로 들어갔지요.

빵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자 하고 나섰다가

아무래도 산에서는 밥이 최고다 하고,

바삐 한 밥과 있는 반찬이 함께 도시락이 되었더랬습니다.

능이 많다는 곳으로 이미 이름 나 있으니 끝물 능이를 따겠다고

더러 더러 사람 소리들이 건너다니고 있었지요.

몇 개의 능선을 가로 지르는 동안 자루에는

가지버섯, 밤버섯, 밀버섯, 이꽃바라기버섯, 싸리버섯

그리고 마침내 능이버섯까지 담겼습니다.

처음으로 따 본 능이는,

아, 갈색 마른 낙엽들 사이에

꽃 그 같은 색깔로 꽃피우듯 올랐는데,

그런 경이가 없었댔지요.

산을 빠져나오기 전 계곡에선 잠시 발 담그고

바위에 오래 앉아 신선도 되었더랍니다.

어쩌면 거기

마음과 머리, 아니 온 몸의 뼈마디까지를 씻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을 내려오다 면소재지를 기웃거렸습니다.

장날!

버섯들이 나왔습니다.

“능이는 없어. 나오면 바로 나가는데 뭐. 이것도 금방 나갈 거야.”

전을 벌였던 가겟집 젊은 할머니가 인사를 건네옵니다.

“송이 좀 사 가.”

“큰 송이는 한 개가 만원 꼴일세.”

 

저녁밥상,

열다섯 사내아이는 가지버섯으로 끓여낸 전골을

이리 맛있을 줄 몰랐다 냄비 바닥을 다 긁었지요.

그렇잖아도 살이 오른 그인데.

 

지천인 오디를 못다 먹고 늦봄이 가고

넘치는 딸기를 못다 먹고 초여름이 가고,

우리가 굳이 무엇을 기르지 않아도

이미 자연이 주는 것들이 넘치는 산골입니다.

어쩌면 식량대란의 위기 앞에

정작 농사보다 채취가 더 견실한 대답일지 모른다 하며

마침 해오고 있던 풀 먹기 연습도 몇 해.

귀한 벗들; 물꼬의 논두렁과 품앗이와 새끼일꾼, 그리고 아이들,

언제든 걸음하면 이 산골에서 나고 자란 것들로 차린 밥상으로 맞지요,

버선발로 달려 나가지요.

 

서울에서 암을 얻은 선배를 위로한다고 사람들이 모였더랍니다.

전화들이 왔고,

그 인연들에는 사회단체에서 같이 활동한 이도 있고,

물꼬에서 학부모로 만난 이도 있고...

알고 보니 선배의 동아리 후배들이었더이다.

다 그렇게 얽히며 서로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헤어지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고,

사람의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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