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 7.해날. 맑음

조회 수 996 추천 수 0 2012.10.24 11:03:27

 

 

우이도에서 돌아오는 길.

섬도 멀고 목포도 참 멉디다.

사흘 그 사이,

조병우 할아버지가 세상을 버렸고 상여가 나갔더랍니다.

태어나는 이는 없고 떠나는 이만 있는 산마을...

 

 

돈목 모시조개

 

 

갖가지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조개는 딱이다

안좌도와 팔금도 사이를 지나

비금도 건너 도초도에 잠시 댔다가

물고기 떨어진 무인도 어락도를 스쳐

목포에서 떠난 배를 세 시간 반 타고 닿는

우이도 돈목 모시조개라면 더욱

 

아침 7시 우이도를 떠나는 배를 타고

목포 지나 광주 지나 무주 너머 영동 산골로 돌아오는 길

모랫벌에서 캔 조개로 걸음이 바빴다

진짜 가져갈라고,

죽어, 다 죽어,

어찌 갖고 갈라고,

비닐을 겹으로 넣어,

페트병을 잘라서 테이프로 붙이면 어때,

조개보다 많았던 사람들의 말을 우이도에 두고

어떤 목숨인들 쉬울 것이냐,

바닷물에 출렁이며 반찬통에 담겨와

두꺼운 가을볕의 고속도로를 달리고도

하루 너머까지 살아주었다

 

삶으면 조개껍질은

수업시간 엎어져 누운 교실 뒷자리 아이들만 같아

살아있는 색을 이 산골서도 보겠다고

뿌연 형광등 아래 한손에 목장갑을 끼고

과도로 까는 조개

칼은 자꾸 입을 벌리지 못하고 미끄러지기 여러 차례

몸의 기억은 그것이 습 아니어도 무서운 것

바닷가 사셨던 외할머니 조개 까던 손길을

어린 날 눈여겨보기라도 했던 걸까

한 번쯤 덩달아 칼을 쥐기라도 했던 걸까

어느새 조갯살이 쉬 껍질을 열고 걸어 나왔다

 

말린 껍데기가 벽에 걸리면

돈목 모랫벌 바람결이 코끝에 한동안은 지날 것이나

세월에 장사가 어디 있더냐

바닷물에 선명했던 조개 무늬도 시간에 실리면

바래가는 것과 깊어가는 것의 차이를 알려주고 말 일

그저 잠시 기억을 붙들려고 잡아온 조개들에게

그제야 후회할지도 모를 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3754 160 계자 나흗날, 2015. 8. 5.물날. 맑음 옥영경 2015-08-18 1000
3753 10월 빈들 여는 날, 2014.10.25.흙날. 가을하늘! 옥영경 2014-10-31 1000
3752 ‘끼리끼리 며칠’(1/11~14) 갈무리글 옥영경 2014-02-03 1000
3751 2012. 7. 3.불날. 해 반짝 옥영경 2012-07-08 1000
3750 154 계자 사흗날, 2013. 1. 8.불날. 맑음 옥영경 2013-01-15 999
3749 2011. 9.20.불날. 맑음 옥영경 2011-10-04 999
3748 2011. 3.21.달날. 맑음 옥영경 2011-04-02 999
3747 2009.12.14.달날. 맑음 옥영경 2009-12-28 999
3746 2009.10.10.흙날. 맑음 옥영경 2009-10-23 999
3745 2019. 4.24.물날. 비 오락가락, 그리고 긴 세우(細雨) / 간장집 처마 기둥 옥영경 2019-07-04 998
3744 2013. 3.19.불날. 오후 흐림 옥영경 2013-03-29 998
3743 2011. 2. 6.해날. 눈이 오려나 옥영경 2011-02-23 998
3742 2010.10.18.달날. 맑음 옥영경 2010-11-02 998
3741 6월 빈들 여는 날, 2010. 6.25.쇠날. 흐려가는 옥영경 2010-07-12 998
3740 2009.12.22.불날. 맑음 옥영경 2010-01-02 998
3739 158계자 사흗날, 2014. 8. 12.불날. 맑음 옥영경 2014-08-15 997
» 2012.10. 7.해날. 맑음 옥영경 2012-10-24 996
3737 2012. 7. 5.나무날. 비 내리는 고속도로 옥영경 2012-07-19 997
3736 2012. 6.22.쇠날. 맑음 옥영경 2012-07-02 997
3735 2011.11.21.달날. 맑음 옥영경 2011-12-05 99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