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7.불날. 맑음

조회 수 1262 추천 수 0 2012.12.10 10:42:11

 

 

날이 추우면 덧정 없을 텐데...”

장 하는 줄 알고 이리 좋은 날씨.

아침 일곱 시부터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웁니다.

어머니는 어느새 청청한 무시래기로

국도 끓여두고 볶아도 두셨습니다.

어떤 것도 어머니 손만 그치면 맛난 것이 되고 마는 거지요.

무만 넣은 무나물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 ‘곤조아나?”

잊었던 낱말입니다.

삶은 고구마를 썰어 말린 것.

아이가 이 날 적 가려운 잇몸을 위해,

플라스틱 비슷한 걸 팔기는 하였으나 그거 안 물리려,

구근 채소들을 잘라 데치고 말려 썼더랬습니다.

특히 고구마는 곁에서 아이를 같이 돌보던 동료들까지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게 곤조였던 겁니다.

생고구마를 썰어 말리면 빼때기’,

그 말은 권정생 선생님의 단편동화로 복구되었더랬으나,

곤조는 까마득했던 겁니다.

, 곤조...

어머니는 고구마를 삶아 잘라 너셨지요.

 

올해는 이걸로 해보자.”

막장을 만듭니다.

원래는 메줏가루에 고춧가루 넣고 보리쌀 삶아 띄워 넣는데

올해는 별스레 했습니다.

내가 묵고 싶어서...”

시골 장을 갔더니 할머니 한 분이 개떡을 팔더랍니다.

보리를 찧고 나온 겨(딩겨라는)를 씻어 가라앉혀

개떡(누룩이라 해야 하나)을 만들고 불에 구운 것이지요.

요새 어디 그것이 있을까요.

이 어르신들 세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 어디서 그런 걸 알까요.

그걸 쪼개 바짝 말려 절구로 찧었습니다.

거기 밀을 빻고 빻은 밀을 쪄 엊저녁 하룻밤 띄웠던 걸 섞었지요.

 

장독대로 갑니다.

날마다 반질거리도록 닦았던 할머니의 손은

그저 전설입니다.

겨우 달에 한 차례나 들여다보나요,

간장을 볕에 달일 때가 아니면.

묵은 간장들을 합칩니다.

여러 해 걸쳐 따로 있던 장들이지요.

장은 말을 알아듣는 것만 같아

서로 섞여 싸우지 말고 좋은 장맛을 만들라 어루만집니다.

된장독들도 정리하지요.

재작년 된장은 바닥이 났고,

작년의 고추장 역시 비었습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무도 말랭이용으로 썰어놓으셨고,

쌓여있던 풋호박도 오가리로 썰어두셨지요.

돌아서면 벌써 무언가가 되어 있습니다.

손 못 대고 있던 들깨도 씻어 놓으셨고...

 

오후, 콩을 씻어 삶습니다.

불려 삶으면 좀 수월하나 맛은 덜하다고

씻자마자 바로 삶아 오래도록 뭉근한 불에 끓이지요.

아이가 삶은 콩을 건져 자루에 넣고 밟으면

외할머니는 메주를 다집니다.

저 힘 좋은 아이 없으면 메주도 못 쓰겠다 하지요.

고추장집 한 방에 볏짚을 깔고 메주를 옮깁니다.

내일 같은 과정을 한 번 더.

올해는 두말 반입니다.

삶은 콩을 좀 떼어 바구니에 담아 띄우기도 합니다.

청국장용은 내일 삶은 콩으로 할 것이고,

이건 짠 된장에 섞어 먹을 것이지요.

 

밤엔 찹쌀로 식혜를 만들었습니다.

달여 조청으로 고아 고추장에 섞을 것인데,

그 결에 한동안 마실 것도 한 솥단지 또 하지요.

 

사나흘 이리 움직이면 사람들 드나들며 한 해 먹을 장이 다 준비된답니다.

고마울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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