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삼경, 눈 내린다.

봄날 같은 바람이더니 오후가 되며 비 뿌렸고,

이렇게 밤을 기다렸던 갑다.

 

달골은 공사를 끝냈다며 잔금을 요구하는 업자와

일이 아직 덜 끝난 것으로 보는 발주자 사이의 씨름이 있다.

오늘은 청주의 한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었다.

마침 이 지역의 도로공사를 맡아 하고 있다.

“재앙이 뻔한데...”

옹벽이 좀 더 높아야지 않겠는지,

그리고 그 위쪽으로 다른 안전장치가 있어야지 않겠느냐는 의견.

마침 연락이 온다, 업자로부터.

상황을 이야기하며 다시 현장을 보고 얘기 나누기로 한다.

참 길고 먼 과정들이다.

9월 중순, 보름이면 청소까지 다 하고 가겠다던 일이 이적지 왔다.

자, 또 다음 걸음을 걸어보자.

김장 이틀째.

어제부터 들어온 아이의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된장집에 묵은 이른 아침부터 옴작거리신다,

한 밤 두어 차례 절인 배추를 뒤집고도.

너무 절이면 단맛 다 빠진다며 절여진 배추를 건지시러 나오셨다.

“우리 자던 방 있제, 우리가 이불홑청도 다 빨고, 청소도 싹 다 했다.”

거기 주무실 계획은 아니었던 지라

미처 청소하고 맞지 못했더랬다.

에고...

 

젊은 할머니 두 분은 또 일감을 찾아놓으셨다.

장롱 위에 있던 늙은 호박들 내려 벗기고 채썰기.

얼려놓고 계자에 아이들과 호박전을 부쳐 먹으란다.

지난 주 식혜 벌써 바닥이라니

이번에는 아이의 이모 할머니가 식혜도 만드신다.

“올해는 사과잼 안 하나?”

지난해도 김장하는 사이 사과잼을 만들었더라지.

빈들모임에서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 나눠 보내고 그리 넉넉지 않았다.

그것도 어느새 썰어주시기 불에 올렸다.

 

어르신들은 부엌 뒤란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멸치젓을 달인다.

멸간장을 내리지.

한해 내내 미역국에서부터 나물무침에 넣을 것들이다.

멀리 있는 몇 스승님 댁에도 보내리라.

그 결에 불 앞에 있던, 아이의 이모 할머니,

비질을 시작해 되살림터 앞이며 장독대며 해우소 가는 길이며

온통 훤하게 해두셨다.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이건 순전히 그 어른이 보실 일 없으니 하는 말인데,

인물은 다른 형제들보다 빠진다는...)

어릴 적부터 온 동네서 야무지다 소문난 양반이다,

그 고래 적에 이미 남녀공학에서 회장을 했던 짱짱한.

가슴 찡했다.

누가 우리 마당을 이리 해줄 것인가.

 

젊은 할머니 두 분, 이불홑청 걷어와 어느새 꿰매놓고 주무신다.

아이랑 두 어른 안마를 하다가

늦은 밤, 짚을 들여와 마주앉아 메주를 매달기 시작한다.

늘 하는 일이 아니니 또 자꾸 어설프다.

잠을 깬 어른들이

한 차례씩 당신들 어릴 적 했던 방식들을 기억에서 찾아낸다.

“아이, 대해리는 대해리 방식이 있다니까요.”

그런데 방에 들여놓은 짚이 메주 띄울 때 깔았던 거라 자꾸 미끌거려

다시 짚을 챙기고 추리고 물 축이느라 더뎌지고,

낟알이 붙은 것들이 많아 짚을 꼬며 손바닥을 긁히기도 하고,

그래도 도란거리며 재미가 있다.

이 시대 사춘기 아들과 마주 앉아 이런 일을 나누며 하는 이가 얼마나 되려나.

고마운 일이다.

 

이리 푹해본 겨울밤이 없었던 것만 같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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