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3.나무날. 맑음

조회 수 1008 추천 수 0 2013.01.09 06:43:49

 

 

다행입니다.

영하 20도의 깊은 밤,

바람이 안 불어 다행입니다.

바람 불면 그 추위 얼마나 혹독할 것인지요.

 

새벽 또 눈이 다녀갔고,

길은 다시 묻혔습니다.

건물과 건물이 이어지는 곳에 길을 내고...

수행이 다른 것에 있지 않았지요.

 

간밤 새벽 5시까지 언 보일러와 씨름했습니다.

세 시간을 자고 다시 나와

어제 기별 넣어 오늘 일찍 오기로 한 보일러 아저씨를 기다렸지요.

그런데 이곳저곳 터진 수도와 보일러에 좇느라

여기까지 이르는데 시간이 더뎌집니다.

이른 아침부터 온다던 사람이 해가 중천이어도 소식 없었지요.

와야 하는 그 마음이 더 바쁠까하여

다시 전화도 못하고 한참을 기다리다

이럴 일 아니다 하고 넣으니 올라오고 있는 중.

보일러의 강제순환도 소용없고

수도며 보일러며 곳곳이 그러하다는 소식과 함께.

아랫마을이 그러하니 올 겨울이 이 산골은 얼마나 거칠지요.

 

결국 강제순환에도 노출된 보일러 쪽이 얼었던 것.

부위를 찾고 연결하고 녹이고.

얼어있던 보충수 쪽 급수도 녹아 다시 움직이고.

그런데 방 보일러가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불을 때고 일하는 아저씨들 바라지하고

에고, 오늘도 다른 일은 통 못했고나,

그래도 다행입니다.

뒤란 응달의 어수선한 상황에도

마당 볕이라도 밝아 다행입니다.

발을 동동거리다 햇살 아래 나오면

한낮 영하 5도여도 제법 웅크린 어깨가 펴졌지요.

 

마을에 또 다른 집이 하수구가 얼어

올라오는 보일러차를 보고 물어보러왔습니다,

그런 것도 고칠 수 있냐고.

“이런 데서 그래 어찌 살아요?”

사랑방에 있던 몇 아저씨들이 같이 건너와 뒤란으로 가보더니

한결같이 측은하게 바라보며 그리 입을 모았습니다.

“다 살아져요. 겨울이 그렇지, 뭐.”

산골살이가 그런 거지요.

 

보일러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애끼지 말고 때요!”

보일러 관이 지나는 복도에 석유난로도 둘 종일 피우고,

다시 새벽 5시에 이르는 이적지 켜두었습니다.

보일러실에서는 보일러실대로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집어넣고.

“제가 4시까지 땔 때 테니까 6시에 이어서 때주셔요.”

2시간마다 나무를 집어넣어야 하니.

아침까지 그리 해보고도 아니 되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테지요.

 

그런데, 새벽 3시, 또 다른 사태가 기다립니다.

복도에 켜둔 석유난로를 계속 피우기 위해 기름을 채워둔 통에 갔다가

따라내는 관이 얼어 툭 건드리니 부러지고 맙니다, 영하 21도!

한밤 누군가 석유를 가지러 갔다 이리 난감해지면

그찮아도 얼마 자지 못하는 다른 선생을 깨우기도 미안하고

얼마나 난감해졌을 것인지요.

나여서 다행이다, 했습니다.

또 다행이다, 했지요.

이럴 때 스패너를 써 봤더래서, 부탄가스와 토치를 써 봤더래서

다행입니다, 참말 다행입니다.

손전등을 어찌 어찌 위에 매달고

혼자 어찌 어찌 해보았더랍니다.

 

다행입니다.

오늘도 5시까지는 불을 살펴얄 것인데,

이렇게 바느질감이 있어 다행입니다.

아궁이 앞에 있다가 틈틈이 몸을 녹이러 방에 들어

이불홑청을 꿰맸습니다.

꿰맬 줄 알아 다행입니다.

넘들 다 하고 사는 일들, 가령 밥을 하는 것도,

스스로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기특해하고 박수치고 애끼면서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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