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마운 하늘.

지난주 영하 22도까지 내려가던 혹독한 기온이

아이들이 와서 뒹군다고 푹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영하지만.

낮엔 마당에서 외투를 벗고 있었지요.

“누구야, 누구, 겨울이 그리 춥다고 한 사람이?”

겨울 계자에는 처음 함께 하는

밥바라지 인교샘의 즐거운 외침이었더랍니다.

 

샘들의 아침수행.

우리는 얼어붙은 고래방에서 철퍼덕 엎드리며 대배 백배를 했습니다.

비로소 잠을 깨고

아이들과 함께 할 하루를 위해 마음 모으기.

‘대배는 언제하든 항상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시간에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려 하지만 곧바로 다시 대배에 집중하게 된다. 참 묘한 느낌이다.’(화목샘의 하루정리글 가운데서)

‘아침에 너무너무 추웠다. 그런데 절을 백번 하니가 땀이 나면서 더워졌다. 아침마다 하던 재채기가 안 나왔다.’(새끼일꾼 해온 형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배를 100번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왜 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됐었는데 생각했었던 것보다 시간도 빨리 가고 상쾌하게 몸을 풀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기분도 좋았고 아침 대배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혜라샘)

 

해건지기.

일찍부터 집을 나서서 먼 곳을 온 아이들이

추위에 제법 많은 움직임을 하고는 밤에 노곤해졌기

대동놀이를 건너뛴 어제였습니다.

“우리에게 날이 많으니까.”

덕분에 아침에 개운하게 깼지요.

방이 따닷하고 복도도 온기 돌아

겨울 아침이 그리 어렵지 않았네요.

아이들이 많지 않으니 굳이 추운 고래방까지 건너갈 것 없겠다 하고

모두방에 모였습니다.

모둠방 두 개는 모두가 모이는 모둠방이 되거나

때로 수행방이 되지요.

첫째마당은 전통수련의 일부로 몸풀기,

다음은 마음의 근육 기르기,

셋째마당은 그야말로 마당으로 나가 자연 안기.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이 지나고

들불을 지폈습니다.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들에 나갈 것 없이

눈 가득 덮힌 학교 마당에서 놀기로 하였지요.

마당에 불도 피우고, 작은 눈썰매장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촬영을 하고 있던 한 지방 방송국 연출가와 리포터는

윤기 정원 유진 주엽 성빈 진이 초아 은정이의 눈뭉치를 피해 다녀야 했지요.

군고구마 그을음으로 인디언놀이도 하던 마당.

 

가마솥방 안에선 달고나가 뽀글거리고 떡꼬치가 익고

고구마가 튀겨지고 은행과 가래떡이 구워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른들이 하는 보글보글방 같았지요.

놀기도 전에 먹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고

놀다 지쳐 에너지를 공급하러 들어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태희는 고구마튀김 앞에 앉아

알바생이라며 고구마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주었다나요.

물엿도 아닌 꿀을 줘도 인기가 없다 낙담하던 가래떡은

젓가락 가래떡꼬치로 떡볶이 양념을 묻혀 변신을 시도하자

비로소 고객들 열광.

은행구이는 냄새 난다며 멀찍이 있더니

일곱 살 태은 예은 종근이 맛있게 집어먹고 있자

슬금슬금 다가들 왔더랍니다.

 

달고나는 샘들이 더 신났습니다.

승혁샘은 처음 해 본다 신기해하기까지 합니다.

문턱이 닳을 것 같던 달고나를

작은 희정이 열심히 곁에서 모양을 잘라 주며 손을 보태기도 하였지요.

화목샘이 고구마튀김 소문 좀 내달라 종근에게 말하자

일곱 살 셋 거기 와서 또 바람을 잡아주었답니다.

‘아이들만 먹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함께 먹고, 오히려 아이들이 해주고 싶어 하고,

그런 어우러짐(?) 속에서 다들 배불리 먹고, 가장 편한 시간이었다.’(경이형님)

밖에 불 피우고 고구마를 굽고 있으니

아이들이 제비 에미들처럼 열심히 먹을 것들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배가 빵빵하다며 점심 때건지기 할 시간도 논다는 아이들,

그럼 또 그렇게 하면 되겠지요.

저녁을 좀 일찍 먹으면 되잖을지요.

‘아이들이 적어서 다들 배불리 먹고 점심을 건너뛰니 하루가 전체적으로 여유 있다.

...우리는 과연 하루 세 끼를 모두 먹어야 하는가?

먹는 문제 생각해보는 것도...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살지 않나? 가볍게 살기’(아리샘)

아리샘이 하루정리글로 둔 메모장이었습니다.

한때 계자에서도 두 끼를 시도해본 적 있습니다.

아침에 차를 마시고 한 끼, 새참, 다시 한 끼, 밤참.

두 끼는 세 끼가 습이 된 아이들에게,

특히 산골에서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에게 적확하지 못했고

그래서 새참까지 끼니 못잖은 양을 요구 받아야 했지요.

하여 현재의 결론은 세 끼 밥에 정성스럽게 집중하는 것.

우리 너무 많이 먹고 살지 않나,

또 처음처럼 물어보는 시간 되었습니다.

 

‘우리가락’을 내일로 미루고

‘열린교실’을 여유 있게 하기로 합니다.

‘뚝딱뚝딱’은 폐강으로

화목샘과 희중샘은 기표샘을 도와 뒤란 장작더미 앞에서 장작을 팼습니다.

밤에 땔 나무들을 쪼개 놓았지요.

톱질 망치질 대신 도끼질.

‘지난 계자도, 이번 계자도 열린교실은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지난 계자 때는 밥바라지를 하느라, 이번 계자는 뚝딱뚝딱임에도 불구하고 폐강되었다.’(화목샘)

밖에서 한다 했으니 그럴 밖에요,

책방 현관 앞은 바람 불지 않을 땐 볕 좋아 그리 춥지도 않은데.

 

‘새달력’.

유진이는 아주 정교하게 그림을 그렸고,

성빈이는 달력 위에 종이를 붙여 제(자신의) 달력을 붙이고 있었으며

자누와 정인이는 저들끼리 성실했습니다.

두 희정도 재미나게 하고.

 

‘한땀두땀’.

태은이와 예은, 일곱 살인데도 진지하게 집중해서 하는 모습 좋데요,

서로 칭찬해가면서.

태희는 잘 안되면 짜증을 많이 내지만,

결국 혼자서 쭈욱했습니다. 다행이.

7학년 해찬 도영이는 자기들 할 것 하면서도

동생들한테 양보하고 도와가며 바느질을 했지요.

‘아이들이 바느질하는 것이 참 좋다.

자기 손으로 정성을 모아 집중하는 모습도 좋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수행하고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게 참 좋다.’(아리샘)

 

‘단추랑’.

진이가 목걸이와 안경을, 초아가 작은 꽃 세 개를,

은정이도 철사를 써서 꽃 세 개를 만들고,

큰 희정은 외투에 붙어있던 단추를 떼 내고

예쁜 단추들로 바꿔 달았습니다.

 

‘병뚜껑이랑’은 ‘다시쓰기’의 시간.

버려진 것들에게 새 쓰임을 주기.

상자와 병뚜껑들로

현진이는 배를, 윤호는 탱크를, 윤기는 로봇을, 주엽이는 얼굴을,

종근이는 수륙양용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건호는 콧물을 흘릴 수 있는 피노키오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로봇의 머리를 꼭 칠성사이다 뚜껑으로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호에게

현진이가 양보하며 우리를 감동시켰고,

깔끔한 비질로 또 한 번 우릴 놀래켰지요.

꼭 칭찬듣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런 행동들이 잘 배여 있는 친구.

홀로 와 눈물 그렁거리던 어제의 주엽이는

오늘은 또래 친구도 사귀고

열린교실에서 노래도 불렀다 합니다.

 

‘다좋다’.

정원 혜준 태은 우열이 있었습니다.

혜준이 때문에 폐강의 위기까지 갔고

혜준이 덕에 교실이 다시 살기도 했네요.

“지난번에 왔을 땐 물고기도 잡고 그랬는데...”

잘 놀기 혹은 보다 재미나기를 잔뜩 기대하고 들어온 아이들과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샘 사이에서

교실은 잠시 삐걱거렸고 아이들은 다른 교실을 찾아 떠나려는데,

혜준이가 마음을 내며 다좋다 하겠다 하자

아이들도 마음을 돌렸지요.

가마솥방에 가서 다시국물을 낼 멸치를 가렸다지요.

발려 똥을 떼어내는.

달고나도 처음 만들어보았다던 승혁샘,

‘멸치똥도 처음 떼보고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나요.

펼쳐보이기에 혜준이는 멸치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더랍니다.

 

한데모임.

노래를 익히고 손말도 배우고

하루를 돌아보고 잃어버린 물건도 찾고

다른 이들과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또 꼭 나오는 책방 정리 이야기도 이어가고...

책방지기들이 생겼습니다; 태희, 성빈, 우열, 현진. 작은 희정.

저들끼리 그리 관리해보겠다지요, 책이 흩어져있기 전에.

 

고래방의 온풍기가 꿈쩍을 안합니다.

모진 날씨 탓인 듯합니다.

모둠방에서 대동놀이를 하나 하다

추워도 좋으니 가자는 아이들의 강력한 요구로 건너갔는데

다행히 기표샘과 승혁샘이 석유난로를 한 대 옮겨놓았더랬지요.

좀 낫대요.

우리들은 눈 내린 산 속에 갇힌 짐승 사냥을 떠났는데,

열심히 잡아오는데 잡아만 놓으면 없다며 중얼거리는 해찬이가

우리들을 퍽 웃겼고,

늑대 소리 내며 자신이 여우라 우기는,

토끼로 오해받아 울타리에 갖힌 아리샘이 또한 우리 배꼽을 뺐지요.

말을 못할 정도로 웃어보기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대동놀이를 했는데 아이들도 신나고 선생님들도 신나는 자리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뛰어놀아서 기분이 좋았다.’(승혁샘)

귀찮아도 움직이면 역시 잘했다 싶지요.

정말 신명나는 몸놀이였습니다.

 

‘맛있다는 평에 점점 집착하게 될까 봐 걱정됩니다.

남이 먹어주는 것에 행복감을 느껴야 하는데...‘(밥바라지 2호 정환샘)

틈틈이 책방이며를 다니며 아이들과 친해지려 노력하는 그.

밥이 참말 맛있습니다.

전라도가 고향인 정환샘은 아주 예민한 혀를 지녔고

간장과 소금이 들어간 음식의 차이를 압니다.

오늘은 호박전.

가을학기 달골 보수공사로 씨름했다지만

고구마줄기며 고춧잎이며 시래기며 그럭저럭 갈무리 한 것들이

이 겨울 잘 쓰이고 있습니다.

호박오가리와 말린 가지와 무말랭이와

아이 외할머니가 건사해준 가을걷이도 많아

산골 겨울 식탁인데도 꽤 풍성하였더이다.

‘호박전 진짜 맛있었다. 집에서 그런 걸 먹을 수 없다니 슬퍼질 것 같았다.’(해온)

 

계자를 와서 아이들이 속틀에서만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속틀 또한 정체된 게 아니고.

시간과 시간 사이를 채우는, 바로 그 전이시간의 움직임이야말로

최고의 교육들입니다.

책방에 모여 아이들은 알까기도 하고 체스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고

눈삽을 들고 삽질을 하는가 하면

공기도 하고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그런 속에 조율하는 법도 배우고 배려도 익히지요.

아이들이 놀아야 하는 까닭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조언은 윗사람에게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편견이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지고 나도 아이들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어서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은희샘)

 

모둠 하루재기를 하고,

어제는 가볍게 씻었으니 오늘은 제대로들 씻기로 합니다.

모진 겨울은 산골에서 씻는 것도 퍽 일이지요.

아이들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고

샘들 모여 둘러앉아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 움직임 그려보기.

 

가까운 이들과 와서 우정이 깊어지는 것도 좋으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넓혀갈 수도 있음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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