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불날 흐린 속 드나드는 볕

조회 수 1569 추천 수 0 2004.09.21 23:11:00

집 뼈대를 그립니다.
되는대로 모여서들 머리 맞대고 하래니
나현이 령이 정근 예린이가 한 패를 이루고
혜린이와 혜연이가 같이 앉았고
채은이와 류옥하다가 어깨 결었으며
도형이랑 채규가 같이 한다 싶더니 등을 돌렸네요.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고 서까래를 올리고...
끌어낼 수 있는 상상과 현실 가능성을 재며
가지를 치고 또 칩니다.
한껏 신나게 그림을 그려댄 혜연이는
그 가망없음에 주저앉아야 했고,
뼈대로 마치 벽을 채울 듯한 채은네는...

오후엔 아이들이 은행 털러 갔습니다.
준비야 단단했지요.
자루에다 지문 남길까 장갑에다...
그런데, 익은 솜씨 없으니 도난경보가 울리겠지요.
용케 빠져나오더라도 지명수배에 오를 겝니다.
아직 제 죄 감당할 나이 아니니
저들 보호자로 있는 저라도 잡혀갈 량이겠지요.
예, 가을, 바로 그 은행 터는 한 철입니다.
냄새는 얼마나 쏘아댈지요.
창너머 목 빼고 보니 은행알 개수 세느라 더 바쁩디다.

손님 한 분 찾아오셨습니다.
대전에서 택견하신다는데
학산중이며도 수업을 다니셨고 상촌중에 이번 학기 오신다지요.
얘기도 들었고 관심도 많다시며 얼굴 내미셨다는데
우리도 가르쳐주면 좋겠다 하였겠지요.
하마 하시데요.
그리하야 우리, 택견까지 구경하게 되었답니다.

애새끼들 함께 사니 조용할 날 있겠는지요.
허구헌날 무릎팍 깨지지요,
싸움질 해대지요,...
채규 장난에 혜린이 엄지발가락이 상모서리에 눌리고
채은이도 채규 땜에 무릎에 피흘리며 들어서는데,
오늘만도 문제의 중심에 채규 있은 게
너댓 차례는 되었지요, 아마.
“오늘 남은 시간 동안 한 번만 더 남을 못살게 구는 중심에 있으면
암소리 말고 운동장에 나간다아!”
그런데,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지요.
누워있는 도형이를 슬쩍 밟았다나요.
“모르구요...”
진짜냐 다시 채근했겠지요.
알았답디다.
“옷 두툼이 입고 현관 처마 아래로 가라.”
그런데 이 약삭빠른 채규 얼른 덧붙입디다.
“얼마나요?”
자리가 자리여서 웃지도 못하고...

해건지기를 끝내고 무언가로 언쟁이 있다 범주가 커지면서
뜻 아니게 혜연이랑 류옥하다의 다툼이 있었다는데
한참 목소리 오르더니 류옥하다 발길질을 하더랍니다.
안하던 짓인지라 뒤에서 상범샘 놀래서는
된통 혼을 내켰더라지요,
엉덩짝도 엄청 맞았더랍니다.
“평생 발길질 다시 하지 마라.”
끄덕끄덕 오래 앉았던 류옥하다가 빼곳이 고개들며
“삼촌도 하잖아요.”
그랬다지요.
“아니, 아니, 내가 언제?”
“축구할 때!”
분위기 잡는 터에 웃을 수는 없었겠지요.

밥알 식구 혜연이네 어머니 안은희님 들어오셨습니다.
방금 아홉시를 넘기며 책방에 앉았던 아이들 끌고
조릿대집으로 떠나셨지요.
아이들 잔다고 별 일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 일만 나눠줘도 일이 얼마나 수월한지...

도형이가 열이 납니다.
으슬으슬하다네요.
감기인 듯합니다.
혜연 어머님 편에 해열제를 만들어보냅니다.
저녁 먹고 후식으로 나온,
그 잘먹는 포도도 놓고 이불로 들어간 도형에게
정근이부터 어찌나들 그에게 잘하는지.
심드렁하던 나현이도 걱정을 하고
채은이가 이불을 끌어다 주고
류옥하다는 살금거리며 걷고
저마다 도형이를 위해 마음을 씁니다.
한 번씩 아파도 볼 일입니다.
실한 우리 아이들이니 금새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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