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물날 맑음, 딴 거 안먹어도

조회 수 1295 추천 수 0 2004.09.28 20:24:00

길이 참 멉니다.
칡넝쿨을 구하러가는 참입니다.
시원스레 돌돌거리며 가는 계곡물이 발목을 잡고
포도 다 떨군 동네 밭들이 눈길을 잡고
밤알이, 감이 손목을 잡아끕니다.
대추나무 아래도 그냥 갈 수 없지요.
간다 간다 가을이
겨우 겨우 살 겨울 속으로 가는 길목에
제보다 젯밥이라고
널린 넝쿨이야 언제나 끊지 하고
칡뿌리를 캐느라 여념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힘깨나 써야 할 걸요...
이제 우리 것이 된,
아주 아주 커다란,
저 아래 마을을 다 굽어보는 곳에 훤칠하게 선 감나무는
우리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더랬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굴지 않는 요술뒤주처럼.

옥수수 베내고 갈고나서 시금치를 심은 오후였네요.
저녁에 아이들은 조릿대집 큰채 아궁이에 죄 붙어서서
고구마를 구워먹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만든 불은
가을 열매들을 적당하게 굽는데 그만이었더라지요.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싸울 법도 하건만
맛나다 맛나다 아궁이 앞의 밤을 즐겼더이다.
그리고 늘어서서 이를 닦는 량이라니...
누가 좀 봐주지 않나 뚤레거리는,
퍽도 정겨운 풍경이었지요.

열택샘이 마을 부역 나갔습니다.
상수도 둘레 청소였지요.
“우리 딴 거 안먹어도...”
더덕이며 칡이며 도라지며, 아마도 산삼까지
왼갓 약초들이며가 다 녹아들어
우리 마을 수돗물만 먹어도
몸을 보하겠더랍니다.
제주 삼다수처럼 어느날 우리 아이들이
대해리 뭔물이라며 물장수(술?) 나선다 할지도 모를 일이라지요.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뭐씨도 있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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