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모임입니다.

해마다 4월은 사람 몇 안 되더이다.

어느 해는 울산에서 온 부선이 하나 있기도 했더랬지요.

빈들 오는 이들이 단식하는 줄 모르고 올까 하여

강조 또 강조했습니다.

그런데도 혹여 힘이 들지 않을까 싶어

식구들 밥 먹은 점심 밥상을 치우지 않고 두었습니다,

든든히 먹고 시작하라고,

일찍부터 오면서 부실했을 것이다 싶어.

무엇보다 계자 밥바라지했던 지은샘,

꼭 밥상 차려주고팠는데,

하필 단식을 하는 빈들에서야 걸음하시게 되니

자꾸 미안한 마음입니다.

 

‘든자리’.

잠시 마을을 산책하고 들어와

단식을 하는 까닭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몸에 갖는 의미, 나아가 우리 삶에 지니는 뜻.

전체 흐름도 안내하였지요.

 

‘이랑과 고랑’.

일을 합니다.

명상이고 수련이고 손보탬입니다.

비 다녀간다더니 웬걸요, 날 어둑하기만 할 뿐.

하여 일하기 좋았네요.

달골에 뒤집어놓은 오백여 평의 땅,

밭이 되기 위해 여러 날 동안 오는 이들마다 돌을 치웠더랬습니다.

어떤 돌은 보기에 아주 큰 것일 줄 알고 힘주어 곡괭이질을 하지만

푹 하고 쉬 빠져나오는가 하면,

그냥 살짝 밀면 될 것 같은 돌이

사실은 그 뿌리가 더 크게 흙 속에 박혀있기도 했습니다.

사람도 그렇겄지요.

우리가 보는 모습이란 불과 그 사람의 얼마 되지 않는 부분일지니.

허니 쉬 사람 안다 못하고 뭐라 못하는 겁니다.

갈아엎은 오늘은 더 많은 돌들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밭 가운데 있는 바위 곁에다 얼마 전부터 돌탑을 쌓기 시작했지요.

한 어른도 거기 돌을 얹으며 큰 돌 사이에 작은 돌들을 괴다가

세상도 그렇겠다 싶더랍니다,

작은 존재도 그리 세상을 채우며 존재하지 않더냐는.

왜 아니겠는지요.

아이 하나는 돌을 얹으며 그랬습니다.

모가 나도 분명 만나는 지점이 있더랍니다.

돌탑을 쌓으며 지극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씩 밭둑에 앉아 물을 마시며(참이 있을 까닭이 없지요)

허리띠처럼 둘러친 산과 저 아래 웅크린 마을을 내려다보니

마음에 바람 살랑이며 가는 것 같았지요.

 

‘걷기명상’.

맨발로,

내 몸의 한 부위이지만 관심에서 자주 먼.

골짝 끝마을 돌고개까지 갔지요.

“아이구, 뭐하는 거라?”

들에서 들어오던 어르신들이 무슨 짓들이냐 갸웃거리셨지요.

“벌 서는 거래요. 저는 좀 나아서 한 쪽은 양말 신었잖여어.”

농을 던집니다.

저녁이 내리는 산마을의 이웃들의 가볍고 유쾌한 핑퐁.

(발가락 수술 부위가 아직도 애를 먹이고 있어

몸이 물구경한지 오래랍니다.)

돌아오는 길엔 머위를 한 묶음씩 따왔습니다.

어느새 어둑해진 학교.

 

‘붓명상’,

선공부라고도 하고 붓공부라고도 하며 필공부라고도 하는.

마음을 종이에 옮겨놓고 바라보기.

마음이 가는대로!

오래 함께 수행해왔던 도반들마냥

깊은 시간 되었습니다.

 

그리고 달골로 올라가 ‘夜단법석’.

준비한 이야기를 나누고,

혹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꺼내기,

그 꽁무니에 드는 생각 말하기.

 

어른들끼리 짧은 ‘실타래’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을 어쩔까,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여느 빈들이라면 마음들을 터느라 두세 시도 성큼 지났겠지요.

단식한다고 시간을 좀 당겨보았습니다.

그래도 자정이 넘었더이다.

단식은 첫날이 에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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