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野戰(야전)에서 野田(야전)을 일구다 >


비 올 꺼나 하더니 일하기 좋을 만치 먹구름 지나고...

 

얼마 전 차를 태워주었던 이가 내리며 그랬습니다.

“이 차도 아주 野戰이군.”

승용차이지만 포터에 가깝습니다.

(낡을 대로 낡은 트럭을 없는 이에게 주고 났더니 그마저도 자주 못내 아쉽지요.)

며칠 전에는 거름을 실어 날랐으니 배인 냄새가 여간 고약하지 않은 데다

마을 사람 하나를 태우느라 실린 짐을 밀쳐두니 어지럽기가

다섯 살 아이가 놀다간 방이랍니다.

야전이라...

 

오백 평이 넘어 되는 돌밭을 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가 돈 준다고 어디 하겠는지요.

산골 가난한 학교의 삶이 또한 그러합니다.

누가 일 값을 준다고 이 허름한 학교 일을 하러 나서기 쉽겠는지요.

나날의 삶이 野戰입니다.

밭을 일구는 과정 또한 그러했습니다.

돌이 많아 마을에선 어느 누구도 갈아 준다 나서지 못했더랬지요.

 

아이들과 해건지기를 채 끝내기도 전

서울의 병선샘이 학산의 진수샘과 함께 관리기를 실어 나타났습니다.

이쪽 끝에 대해리가, 저 쪽 끝에 학산이니

같은 군이어도 적잖이 멉니다, 한 시간은 달려야 하는.

손 보태러 오마던 병선샘은

비 내린다고 거름 넣었냐 전화 주었고,

종자 구해놨냐 전화 넣었고,

온다고 전화했고,

그리고 정말 왔습니다!

“도와줄게.” 한다고 다 오는 게 아니니, 놀랍고 고마웠지요.

(늘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 내 몸의 부끄러움이여!)

두어 시간 관리기로 로터리를 치면 되리라 여겼던 진수샘,

다리쉼을 하며 말했습니다.

“완전 野戰이네.”

 

아이들도 밭으로 보내놓고

묵은지로 부침개라도 참으로 낸다고 부리나케 학교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황금마차 마을에 들어와 있었지요.

두부와 콩나물과 막걸리를 삽니다.

묵은지를 볶아 두부 데쳐 막걸리와 함께 새참으로 올렸네요.

 

(* 엊그제 쓴 ‘물꼬에선 요새’에서 일부 옮김)

밭이 되기 위해 여러 날 동안 오는 이들마다 돌을 치웠더랬습니다.

어떤 돌은 보기에 아주 큰 것일 줄 알고 힘주어 곡괭이질을 하지만

푹 하고 쉬 빠져나오는가 하면,

그냥 살짝 밀면 될 것 같은 돌이

사실은 그 뿌리가 더 크게 흙 속에 박혀있기도 했습니다.

사람도 그렇겄지요.

우리가 보는 모습이란 불과 그 사람의 얼마 되지 않는 부분일지니.

허니 쉬 사람 안다 못하고 뭐라 못하는 겁니다.

 

갈아엎은 오늘은 더 많은 돌들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밭 가운데 있는 바위 곁에다 얼마 전부터 돌을 쌓기 시작했지요.

4월 빈들에 다녀간 지은샘은 거기 돌을 얹으며 큰 돌 사이에 작은 돌들을 괴다가

세상도 그렇겠다 싶더랍니다,

작은 존재도 그리 세상을 채우며 존재하지 않더냐는.

왜 아니겠는지요.

아이 하나는 돌을 얹으며 그랬습니다.

모가 나도 분명 만나는 지점이 있더랍니다.

돌탑을 쌓으며 지극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점심 밥상을 준비하러 내려옵니다.

일하는 사람들 반찬은 뭘 해주나,

생선도 없고 고기도 없고,

내려오며 밭으로 먼저 달려가지요.

풋마늘을 뽑아 데쳐 무치고

부추를 베서 겉절이를 하고

머위를 뜯어 살짝 데쳐 막장이랑 내고

돌나물에 초고추장 이우고

묵은지로 부침개를 놓고

아, 이럴 때의 시골 사는 뿌듯함이란...

 

메밀을 뿌립니다.

메밀을 받자고 심는 시기보다 아주 이른 때입니다.

“수확까지 안 바래. 나물 먹고 꽃 보고...”

20년 된 씨여도 뿌리를 내린다는 메밀이고,

흙만 닿아도 싹을 틔운다는 메밀인데,

이 산마을에선 어째 메밀 놓은 지 오래여

김천의 한 묵집에 말을 넣고 종자를 얻었습니다.

“씨가 모자라! 위에 뿌리니 없어.”

“나중에 할게요.”

“언제 할라고? 할 때 해야지. 우리가 아래 밭가는 동안에...”

 

점심 밥상을 물리고 읍내 곡물상을 달려가지요.

많은 양을 사서 묵을 쑤는 할머니는

이걸 얼마를 달라 그러냐시더니

그래도 종자는 돈 주고 사야 잘 자란다며 천원 짜리 몇 장 놓고 가라셨는데,

양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데 몇 배의 돈입니다.

그 할머니 고맙기 더한데 곁에 있던 아들도 그러했던가 봅니다.

“정말 우리 밥 한번 먹으러 가야겠다.”

 

그 참에 케잌도 사옵니다.

다섯 시에 겨우 일을 끝내고 작은 잔치.

오늘이 진수샘 생일입니다.

두 딸 대처 보내놓고 어머니 곁에서 홀로 농사지으시지요.

마침 있던 미역국도 냈답니다.

 

저녁도 못 먹이고 보냈습니다.

잘들 가셨는지.

다리가 좀 불편한 진수샘은 허리를 내내 두드리며 관리기를 몰았습니다.

성격은 또 얼마나 꼼꼼하신지.

 

野戰에서 野田을 일구었습니다.

봉평장으로 가던 나귀 어리는, 달빛 머금은 메밀밭을 볼 수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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