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계자 닫는 날, 10월 31일 해날 맑음

조회 수 1302 추천 수 0 2004.11.13 01:54:00


99 계자 닫는 날, 10월 31일 해날 맑음


너무 짧아요.
눈 감았다 뜨면 사흘이 훌러덩입니다.
그것도 아이들하고라면 더욱.
첫날 어둑해서야 들어온
은정 의로 태영 누리 재현 유진이는 얼마나 더 할지요.
이 산골, 가을이라 해도 날 차기가 매울 법도 한데
아이들은 짬만 나면 마당으로 쏟아집니다.
햇살, 어깨에 사뿐히 앉아주지요,
산, 어쩜 저리 갖가지 빛깔로 우리 눈을 베는지요,
그리고, 저 아이들 얼굴과 몸짓,...
막 살-고-싶어지는 거지요.
“물꼬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로 시작한 승진샘의 엊저녁 갈무리는
냄새나는 화장실,
어쩜 재미보다 진지함이 더 많은 속틀,
자칫 거북하기 쉬운 발우공양,
부모로부터 떠나 대부분 본적 없는 이들 속의 서걱거림,
그 모든 걸 안고
이 자연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듯이 지내는 아이들에 대한 감탄과
그것이 가능케 하는(?) 물꼬의 흐름에 대한 칭찬이었겠습니다.
늘 하는 감탄이지만
정말, 저엉말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저 아이들 말예요.

득시들거리는 아이들 얘기야 계자의 축이다마다요.
그런데 이번엔
물꼬의 ‘때때로 교사’인 품앗이샘, 도움꾼샘들
또한 그 못지않은 느낌었네요,
꼭 뭐 움직임 큰(?) 제규샘이나 승현샘 아니어도.
“건설적인 생각을 가지고 맡은 자리에서”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기뻤다는 승진샘 말때문만도 아닙니다.
어느 계자든 건강한 사람들의 모임이었지요.
각 개인의 삶의 도덕성이 어떨지를 놓고라도
이런 고생을 사서하겠다는 것만으로
일차적으로 삶에 대한 신뢰가 갑니다.
그런 어른들이 모여서 만나는 아이들의 장,
그 속에 있으면서도 느껴지는 떨림은 늘 새로움이지요.
이번에 조무래기들 많은 거야 말씀드렸지요,
“니네 부모님은 무슨 맘으로 널 보내셨다니?”
그리 되물어주어야했던 그 일곱 살들말입니다.
급기야 유치부를 신설(?)해서
오줌 똥 두 패로 나누었더라지요.
그런데 마침 이번에 방문자로서 도움꾼에 붙은
아네사샘과 지민샘이 계셨잖아요.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성씨도 같았네요.
당신들이 똥오줌들을 건사하셨답니다.
얼마나 절묘한 자리나눔이었던지요.
부엌은, 역시 방문자로서 도움꾼에 붙은
씩씩한 아줌마 순덕샘이 지켜주셨지요,
바글거리는 녀석들을 머리에 팔에 다리에 감아준
제규샘, 승현샘, 그리고 태석샘,
참하게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던 양언샘과 상근샘.
아무리봐도 예쁜, 미래의 특수교육을 짊어질 노근샘,
이제는 두레일꾼 못잖게 물꼬를 지켜주는,
모둠샘으로 걸리적거릴 게 하나도 없는 큰 일꾼 나윤샘과 선진샘,
지난 계자에 아이를 보내고 그 아이 이 학교 입학을 염두에 둔,
감초같은 아저씨 승진샘,
그리고,
삶의 질감으로든 고민으로든 나눌 게 많은,
늙은 특수교육과 대학생 이근샘,
모두 모두 얼마나 애들을 쓰셨던지요.

“농군은 겨울에 쉬어줘야 하는데
우리 땅 안사고 집 안 짓고,
무리하게 겨울에 2주씩 두 번이나 계자하고 그러지 맙시다.”
공동체 식구 준형샘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지요.
그런데 물꼬의 재정적인 보탬에 적지 않다는 게
우리가 꼭 계자를 하는 큰 까닭은 아니랍니다.
물꼬의 교육적 성과물을 보다 많은 아이들과 나눈다는 명분도 명분이지만
교사로서 자극도 되고
아이들을 우르르 만나는 일도 너무 반갑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그리 뒹구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지요,
그거 말로 다 못하거든요.
상설학교가 있기 전엔 그랬습니다,
추욱 축 힘이 빠졌다가도
계절학교 한 차례 하면 또 주욱 끌어올려져
한참을 살아지고는 하였지요.
펄펄뛰는 애들 사이를 누비는 기쁨이라니요...
저것들을 보며 살아야지,
저것들을 지켜줘야지,
단지 자기연민 같은 설움으로서가 아니라,
이 문제덩어리 지구에, 이 시대에, 건너온 아이들을 위해
우리 사는 곳이 다른 존재에 관심 없는,
사람 살 곳 못되는 곳은 아니어야 하기에
물꼬는 아이들을 만나고
생태공동체마을을 일궈보려 한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또 맞을 준비를 하는 대해리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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