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은 생각들이

잘 달궈진 솥단지 안에서 누룽지 일어나듯

그리 바짝바짝 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그땐 숨 쉬는 것도 귀찮지요,

하늘이 고단하고 땅이 고단하고 말도 사람도 다 피곤하지요.

급기야 뼈 없는 동물처럼 몸은 그냥 흐느적거리다 도저히 일으켜지지 않는 그런 날.

그러다 뭔가 쫓기듯 할 일이 생기거나

더 이상 미루면 당장 생계에 지장이 생겨버리는 그런 일이 퍼뜩 눈에 들고

그리 또 일어나 움직이다 보면, 그리 움직이다보면

다시 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머리도 제 기능을 회복하고

그리하여 다시 삶도 제 기능을 회복하고...

하하, 그런 한나절이더란 말이지요.

 

오후, 다듬었던 배추를 간밤 늦게야 김치로 담가놓고

학교살림들을 단도리한 다음

기락샘이랑 동행하여 서울 길 올랐습니다.

티벳스님으로부터 초청이 있었더랬지요.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로 지속적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 가르침을 펼쳐온

14대 달라이라마의 78회 생신기념 및 장수기원법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있는 날입니다.

부처와 법과 승단의 삼보에다

티베트에서는 스승의 은혜를 더하여 사은(四恩)을 일컫습니다.

‘땐슉’이라고 하는 장수기원법회.

티벳불교에서 법맥의 근본스승으로 여기는 분께 올리는 지극한 헌신의 의식,

법의 구현체인 스승의 탄신을 기뻐하는 축제이지요.

최대 명절인 ‘로싸’(설날)와 함께 ‘땐슉’은

다함께 공양을 올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공연과 놀이를 즐기는 축제.

티벳을 여행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자국의 문화와 정신적 유산에 대한 자긍심과 스승 달라이라마를 향한 무한의 존경심을 가진

티벳인들에 대한 감동입니다.

1959년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가 세워지고

난민의 처지가 되어 전 세계로 퍼진 이후,

현실적으로는 나라를 잃고 떠도는 난민의 신분임에도

그들로부터 여행자들은 오히려 평안과 행복감을 전해 받는다 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만으로 인생을 운용하는 이들의 모습은

자신의 손안에 잡히지도 않건만

그것을 가지려고 쫓아 달려가는 우리들에 대해 친절한 웃음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이리 말했댔지요.

 

그런데, 고단함까지 끌고 갔던지

그만 세종로까지 나갈 엄두는 둘째 치고

까맣게 잊은 약속이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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