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계자.

그러니까 그간 백쉰네 차례의 계자가 있었던 거지요.

차례에 들지 않은 계자도 있으니 실제 계자는 더 되는.

1994년 여름부터 이적지.

그리고 2013년 여름,

‘백쉰다섯 번째 계절 자유학교 -초록이 악수하잖다·1 -’를 엽니다.

대개 아이 수가 마흔넷,

그런데 이번 계자는 어른 아이 더하여 마흔넷.

 

비 내리고,

그리고 어둑한 아침.

구석구석 아이들 움직임이 원활하도록 마지막 점검을 하고

희중샘과 한솔샘 그리고 새끼일꾼 연규 형님이

영동역으로 아이들을 맞으러 나갑니다.

 

‘버스 안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에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새끼일꾼 연규의 하루정리글에서)

아이들 도착.

언제나처럼, 정말 언제나처럼,

고맙게도, 정말 고맙게도

한 게 무엇 있어 이리 호사를 누리는가, 하늘에,

비는 절묘하게 우리의 흐름을 도왔습니다.

야삼경에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후려치듯 떨어지며 아침까지 이어지더니

아이들 모이고 대해리 들어오고 하는 동안 말개지더니

(아주 맑지는 않았어도) 아이들 마당에서 뛰놀고

마을을 돌고 계곡으로 갈 수 있었지요.

하늘도 돕는다 싶으면 더 힘이 날 수밖에요,

하기야 비가 온들 하늘이 하는 일을 무어라 할까요만.

 

그런데,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려 마을 삼거리로부터 걸어 들어오는데

그 짧은 몇 발짝에 벌써 큰 야단이 났습니다.

툭툭 나무들을 치며 오기라도 했던 겐지

벌에 쏘였다며 소리소리 지르고 우는 건호를 기백샘이 업고 옵니다.

여기저기 물린 건호에 강현이도 어깨 아래쪽 물렸더이다.

침이 있나 살핀 뒤 남자샘들 붙여 해우소로 보냈지요.

우선 급할 땐 제 오줌이 젤 빠른 특효약.

그리고 얼음찜질.

병원을 가야할 것인가 싶더니 다행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꿀벌이었던가 봅니다.

아무래도 만만찮은 계자일 것 불길한 예감이...

아이들 규모가 적으면 더 편할 듯해도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개별의 특성이 더 드러난단 말이지요,

덩어리가 크면 전체에 묻혀가는 흐름이 있어

진행이 수월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 반면.

 

무량이가 팔을 다쳐 깁스를 해서 못 왔습니다.

윤성이는 여름 두 번째 일정으로 옮겼습니다.

세라와 재민이는 갑자기 아파 병원을 들렀다 내일 합류하기로 합니다.

이런 작은 규모의 계자인데도, 그렇다고 흔한 이름도 아닌데,

한진희가 둘이나 됩니다;

4년 큰 진희 일곱 살 작은 진희.

태경 가온 재혁 정기들이 첫걸음을 했고,

선화와 유란이가 초행 지은과 함께 왔고,

나이차 많은 언니들이 직장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 계윤은

초등 말년이 되어 몇 해만에 왔습니다.

눈을 수술해 원규가 같이 오지 못했지만 다경이가 왔고,

유현이가 사촌 예림이와 동행했으며

발을 찍고 가는 게 방학일정으로 굳어져버린 현진.

승희가 친구 수인이를 데리고 동생 동윤이와 왔고

건호는 올 여름 보름을 여기서 보냅니다, 홀로,

처음으로 밥바라지엄마 인교샘과 떨어져.

두 차례 계자를 다하는 거지요.

엿새를 같이 보내고도 말 한마디 듣기 쉽지 않던 진이 재이가

느린 말투이긴 해도 수다스럽게 왔고,

여기서 한 주 위탁교육을 하기도 했던 강현이가 친구 규민과 드디어 왔고,

96년이던가 대학생 때 의료자원봉사를 왔던 품앗이 정민샘이

아이를 낳고 키워 희정이와 태희를 보내더니

드디어 그들의 막내 작은 진희도 보내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지호!

물꼬사회교육원에서 같이 공부모임을 하던 후배대학생이었던 준구샘,

결혼하고 아이 낳고 큰 아이 열 살이 되어 왔답니다.

오-랜 시간... 고마운 인연들... 물꼬 그늘 아래가 그러합니다...

“어, 유현이 아냐! 와아, 어찌 그리 이뻐졌어? 인물 나는구나.”

아이들은 계절을 건너뛰어 나타나

그렇게 훌쩍 자라서들 왔답니다.

일곱 살 때부터 드나들었던 현진 형님(현진이도 둘이군요. 아이 현진, 새끼일꾼 현진),

드디어 새끼일꾼으로 첫발을 떼며 얼마 전까지 그 처지였던 자신을 돌아보며

하루정리글에서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현진 형님은 지난해 첫 새끼일꾼 기회를 다른 새끼일꾼에게 양보해야했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린 자리인지...)

‘첫 번째 새끼일꾼이다. 다가오는 물꼬의 공기부터 다르더라.

그동안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관리하느라 힘드셨던 쌤들을 생각하니 조금 찡하다,

대단해서.’

 

이번 일정은 밥바리지엄마가 따로 없습니다.

교원대 화목샘,

작년 여름 한 계자에서 밥바라지엄마 없는 계자를 그렇게 같이 했지요,

아무렴 하던 손이 났겠지요, 하여 이번에도 밥바라지를 함께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새끼일꾼 윤지 형님이 원활한 시작을 위해

팔 걷고 부엌을 돌기로 한 하루.

어제는 새끼일꾼 교육을 맡아 신입교사들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는 법을 세세하게 안내하더니...

저녁밥 준비까지 돕고 부랴부랴 저녁 버스에 올랐더랍니다.

그렇게 샘들이 이리저리 붙으며 아이들 밥공양을 할 것이랍니다.

지치도록 논 우리들은 맛있게 먹을 준비가 다 되어있을지니.

 

이곳에서 지내는 방법을 익히는 안내모임,

밥 먹고 서로를 알아보는 큰모임,

여기서 지내는 동안 어찌 움직일지,

하고픈 게 뭔지 나누고 같이 속틀(시간표) 짜는 시간이 있었고

(뭘 안하기도 하고 하기도 할),

다음은 물꼬를 둘러싼 대해리 산마을을 걷는 동네방네,

그리고 물, 물, 물로.

신비롭다고까지 할 날씨는

비 많아 안에서만 활동하는 거 아니냐 묻는 처음 아이 보내는 부모들 걱정을 무색하게

짱짱짱짱짱.

큰모임을 하고 축구도 하고 공놀이도 하면서

계자 구성원들은 계곡에 뛰어든 몸처럼 서서히 물꼬에 젖고 있었습니다.

‘oo가 팬티에 거사를 치뤄놔서 샤워실에 데리고가 oo 뒤를 닦아주었던 게 기억납니다. 저는 세면대에서 어린시절 닦아주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진희를 닦아주면서, 내가 벌써 닦여지는 사람에서 닦아주는 사람이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기백 형님의 하루정리글에서)

이곳에서의 교사는 그렇습니다.

앞에서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보육도 함께 하는.

똥기저귀도 빨고...

 

태경이가 저녁 밥상에서 끊임없이 묻습니다.

“새앰, 어느 게 젤 맛있어요?”

“...”

“이거 맛있죠?”

“...”

“맵죠?”

장난끼로 대답도 없이 밥만 꾸역꾸역 먹다가

비로소 고개 끄덕끄덕, 그때 태경이,“그래도 맛있죠?”

고개 주억거릴 밖에, 진짜 맛있었으니.

“우리 엄마가 한 거예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게지요, 이 녀석.

 

강현이가 현진이랑 큰 진희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또 건호랑 싸움이 붙었지요.

이 사내 녀석들 몇이 그리 시끄러울 거란 말이지요.

뭐 재미있겄다, 하고 봅니다.

 

저녁 때건지기.

마침 달골 일로 온, 오랜 자취경력을 발휘하며 성범샘,

전체 일정 잠시라도 여유롭게 집중하라고 아이들 밥상을 준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감자찌개!

꽤 칼칼한데 아이들도 잘도 먹었지요.

러 차례 찌개를 퍼가는 통에

아이들 다 씻기고 늦게 들어온 여자 샘들 몇

국물 맛도 못보고 말았네요.

“죄송, 죄송, 죄송. 밥바라지 소임이 마지막까지 배분을 놓치지 말아야 하건만...”

 

저녁답에 보육원의 아이 하나가 교무실로 찾아옵니다.

“저 낼 가면 안돼요?”

“으응?”

“재미가 없어서요, 친구도 없고요.”

“남자친구를 좋아해도 늘 좋기만 하더냐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거지,

사람의 마음이 그런 거다.

고작 7시간 보냈는데, 자기 마음대로이지 않다고 해서 가겠다니.

그리고 꼭 재미로만 무엇을 하느뇨.

배움을 위해서도 하고 보람을 위해서도 하고 그런 거지.”

어쩌면 그 아이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한 걸지도...

더 많이 바라봐주고 더 많이 사랑하는 시간이길.

 

‘한데모임’ 전 진이 재이는 벌써 졸립다고 찾아왔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이 먼 곳까지, 얼마나 곤할까요?

잠시 눈 붙이는가 싶더니 한데모임에 다시 들어왔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이곳에서 한데모임 시작 때 부르는 삼십여 분의 넘치는 노래는

저녁이 내리는 산마을을 들썩들썩하게 하는데,

역시 아직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정한 걸 보면

첫날은 첫날인 모양입니다.

한데모임의 막바지,

제법 늦은 시간이라 대동놀이를 하느냐 마느냐로

두 안을 나왔지요.

“1, 굳이 다른 아이들이 힘들어죽겠다고 하는데도 꼭 고래방을 가겠다,

2. 남은 날이 많으니 내일 한다.”

그때 규민이 손 번쩍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옥샘, 왜 선생님은 앞의 것은 안 좋게 말하고

뒤에 것은 좋게 말해요?”

얼마나들 웃었던지요.

“아, 예, 맞아요.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진행자의 ‘가치와 의도가 없는’ 재 질문으로 전환.

그래도 우리 아이들, 아직 우리에게 남은 날 많으니

오늘은 너무 늦고 곤한테 내일로 미루자는 설득을 받아들여주었지요.

그리하여 벌써 9시도 훌쩍 넘어가는 시간,

춤명상도 대동놀이도 다른 날로 밀고 모둠하루재기,

그리고 머리맡에서 샘들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잠자리로 갔더랍니다.

 

아이들방 불이 꺼지고 샘들 하루재기.

아이들계자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에겐 그들대로의 계자인 셈이고,

어른들 역시 결국 전면적으로 노출되는 자기 모습 앞에

좋은 수행의 엿새가 될 터이지요.

처음 오는 이와 오래 익어온 이들

오래 왔으되 일꾼으로 첫발을 떼는 이들

친구의 소개로, 교육경험으로, 좋은 일에 대한 보람으로, 연대로

우리는 뜨거운 여름 한때의 열정과 함께 있게 될 것이고.

‘항상 학생이어 왔는데 쌤으로 오니 되게 느낌이 새로웠다... 아이들은 참 부럽게도 정말 사회성이 좋은 것 같다. 하루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는 걸 보니 참 대단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흘렀다. 이번기회에 잘 배워가서 좋은 일꾼이 되도록 하겠다. (새끼일꾼 해찬 형님의 하루정리글에서)

‘이번 계자 아이들을 보는 순간 ‘아이들이 정말 활기차구나’라는 걸 바로 느꼈다.’(수연 형님)

그런데, 샘들도 적응이 좀 필요하지요.

신입교사가 많습니다.

아직 원활한 움직임을 기대라기 어려운 시간일 밖에요.

새끼일꾼이지만 물꼬 세월이 십년인 연규 형님,

‘활동을 하면서 집중하는 분위기가 공중분해되는 느낌...’이라며

전체를 읽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각자 튀기도 하지만 샘들도 다 각자 하는 탓도 있는 듯. 개인이 뭔가 하려고 하기보다는 전체 흐름에 스며들어서 흐름과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으면.’

그래서 이곳 새끼일꾼은 봉사활동 점수가 필요해서 오는 어정쩡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일 수 있는,

물꼬 ‘영광의 이름자’라 불리는...

웬만한 어른들에 견줄 게 아닌 게지요.

그리고 초등 3년 물꼬생활 시작으로 사계절 계자를 다 왔고, 중고생 새끼일꾼으로,

대학생이 된 뒤 군대를 다녀온 이후까지 품앗이샘으로 활동 중인 기표샘,

하루정리글에 이리 쓰고 있었네요.

‘항상 계자를 시작할 때 집에 온 느낌이다.’

사랑하는 기표샘아...

 

다들 공간도 눈에 익혔고, 서로도 좀 봤고,

낼은 눈을 뜨면서부터 온전히 물꼬에서 보내는 날,

이번 계자는 또 어떤 날들일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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