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쇠날 흐림

조회 수 1367 추천 수 0 2004.11.22 18:31:00

으으, 무지 춥습니다.
날은 흐리지, 바람도 많지,
영하랍니다, 영하.
우르르 배추 뽑으러 나갑니다.
논 아래 밭에도 뽑고
학교 곁 밭에서도 뽑고
간장집 남새밭, 된장집 남새밭에서도 뽑습니다.
아이들이 일일이 손으로 벌레랑 씨름했던 배추입니다.
밥알 식구들도 붙었고 품앗이들 손도 닿았던 그 배추입니다.

점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이 엄동에 다섯 마리나 태어났습니다.
새벽이 요란터니 그 예 세상구경을 한 새끼들을 들여다보며
추운 날씨가 자꾸 걱정인 우리 아이들입니다.

오늘은 에프(F)랑 놀았습니다.
일상에서 참 소중한 표현법이다 싶은 것도 익히고
낱말에 들어갑니다.
스무 개 가까이 쏟아놓아도
마치 당장 다 외운듯합니다.
몸으로 때로는 손말과도 이어서 익히니
잘 들어오는 모양입디다.
창틀에 앉은 네 살 다섯 살들 성연, 규민, 지섭, 성준이도
몸으로 배우는 낱말들을 어느새 따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일기가 한참 재밌습니다.
일이 왠지 재밌다는 예린의 깨침,
나만 편하게 사는 게 아닌가 자기 반성하는 채은이,
마음에 있는 것들을 말로 표현하고 나누러
친구랑 일부러 먼길을 돌아오는 운치있는 나현,...

학교 전기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전문가가 와얄 모양인데, 내일 날이 밝아야 되겠답니다.
사택에서 끌어와 급한대로 가마솥방만 밝히고 저녁을 먹습니다.
밥알식구 정미혜님까지 들어와 배추를 다듬는 불빛 아래서
쫓겨난 우리들은 집하장 앞 가로등 아래로 갔습니다.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대동놀이,
동네가 떠나가라 놀아댑니다.
비바람치는 거리에서 우산 들고도 대동놀이 할 놈들입니다.
그런데, 참말 재밌는 걸요...

굳이 찾아서 나쁜 상황을 가질 것까진 없겠지만
때로 악적인 상황이 꼭 악만으로 작용하지 않는 걸 우린 압니다.
저녁에 갑자기 찾아든 바로 그 정전 때문에
우리는 어둠 아래 모여앉아 한참을 도란거렸더이다.
무서운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못다한 얘기도 나누고 노래도 하였지요.
그래요, 엄마를 그리워도 하고...
무엇이나 놀이가 되고 무엇이나 행복이 되는,
무엇이나 무엇이나 이토록 기쁨일 수 있는 새 나라입니다, 여기.

아, 사무실에도 연탄난로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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