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쇠날 맑음

조회 수 1373 추천 수 0 2004.11.24 17:18:00
버스운전기사가 꿈인 아이들에게 차는 어마어마한 관심이지요.
류옥하다만 해도 카레이서인 한 어른의 영향으로
서울 살던 두세 살 때
굴러다니는 모든 차종을 꽁지만 보고도 구별했더랍니다.
작년, 아주 가끔 읍내를 따라 나갔던 그는
일곱 살까지 타고 운전이 가능하다는
거대한 차를 보고 그만 반해버렸지만
택도 없다는 한마디에 뭐 별 수없이 꿈을 접어야했습지요.
"구경만 할게요."
그렇게 대여섯 차례 외울 만치 눈요기를 했더랍니다.
그러다 주유소에서 주는 화장지를 열심히 모아
팔아서는 엄마 아플 때 약 사주겠단 계획은
슬그머니 제 차를 구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지요.
그러며 적금이란 걸 넣었습니다.
그치만 그 차를 사더라도
탈 날이 그리 오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그는
날이 가고 달이 가자
공동체 식구들 제주도 여행 보내는 걸로
적금을 풀겠다 의젓하게 말했지요.
그 소식을 들은 제 선배 하나
기특해도 하고, 포한이나 없어라고
싼 차를 하나 사 준 게 그제 일이었습니다.
하루를 쟁인 다음 모두 같이 풀었습니다.
마침 와 계시던 상현샘이 부품을 챙길 동안
눈이 빠지게 들여다보던 아이들,
"자, 이제 고만!"
오늘은 상황 끝, 낼 점심때나 시승식 하라는데,
심지어 류옥하다만 해도 제 것이라 떼를 써봄직하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저녁모임을 하러 갑니다.
끽 소리들도 없이 말입니다.
"야, 우리 애는 정신 못차리거든."
아이들이 닫고 나간 문을 쳐다보며 상현샘이 칭찬삼아 그러셨지요.

그 저녁, 아이들은 저녁 내내 새로운 장난감으로 부산스러웠답니다.
차요?
아니요.
아이들이란 게 그렇지요,
값비싼 선물이래도 정작 그 선물보다 포장상자에 더한 흥미를 느끼는.
아니나 다를까 그 상자는 침대가 되고 옷장이 되며
차 못지않게 아이들의 환영을 받았더랍니다.

이 놈의 차를 어쩌나,
참 걱정이었지요.
손이나 발을 동력으로 쓰는 게 아니라
전기를 쓰는 게 공동체 뜻과 어긋지는 것에서부터
아이들 속에 괜스레 싸움을 만드는 건 아닐까....
아침 모임에서 차 얘기를 꺼내봤습니다.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예린이가 먼저 입을 엽니다.
어차피 일곱 살 아래만 타는 거니
학기 중에는 치워놓고(전기 때문에라도)
방학 때 꺼내놓고 원 없이 타랍니다.
다른 애들도 한 순간에 동의해버리데요.
그래서 강당에서 시승식만 같이들 하기로 한 게지요.
괜히 혼자 고민만 많았더랍니다.
한낮의 햇살에 성준이 성빈이랑 류옥하다는
학교 앞 도로 위를 달리고
채은이며 령이며 몇이 그 아이들 행여 경운기라도 마주칠까
주위를 살펴주고 있데요.
그 차를 공동체에 계속 두어야 하느냐는
이 열기가 좀 가라앉은 뒤 의논해도 되겠다 걱정 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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