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흙날 맑음, 밥알 반짝모임

조회 수 1201 추천 수 0 2004.12.03 10:33:00

11월 27일 흙날 맑음, 밥알 반짝모임

2005학년도 신입생을 위한 '학교 안내하는 날'을 앞두고
준비나 좀 해야지 않나 밥알식구들이 모인 걸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떡 본 김에 제사라고 가을학기를 끝내며
우리 어른들의 삶은 공동체 속에서 그럴 듯했나 돌아보자했지요.
그간 모이면 공부하느라 틈만 있으면 일하느라
정신없는 손발공양이 밥알모임의 대부분이었더랍니다.
일하며 얘기도 많이 하려니 싶지만
떠들고 웃으며 흥을 내야지 농사일이고 막일이고 하지
진지한 얘기들 놓고 낯붉히고 마음 아파하며는 못할 짓이라
마음이 쓰여도 석연찮은 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그러저러 한 해를 다 보내는 건 아닌가 하고.

우리는 너그러운가,
내가 이만큼 했으면 넘도 이만큼 해야 한다고 자로 재지는 않았나,
우리는 마음을 잘 쓰고 있는가,
아이들의 공동체성이 강화되는 만큼
혹여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위기감을 느껴야 하지 않나,...
입학만 시켜주면,
그렇게 다졌던 마음을 시간 속에 슬쩍 풀어버리지는 않았나,
혹 돈으로 학교에 공양하면 그만이려니 하진 않았나,
아이 건사하는데 드는 시간만큼이라도 공동체에 내놓고 있는가,
내 애새끼만 생각하지는 않았나,
상설학교 애들만 우리 애들이고 계절학교 아이들은 넘의 새끼라고,
이 세상 애새끼들은 그들 몫으로 사려니 눈 돌려버리지는 않았나,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기는 한가,...
어느덧 새벽 다섯 시,
우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모임을 맺었지요.
정말 우리는 아이들을 어이 자라기를 바라는가,
세상은 어떠하기를 바라는가,
그 속에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할 것인가,...
마치 그간의 모든 갈등이 풀어진 듯함으로
마음 아주 가벼워있는 얼굴들이었습니다.
11월 대해리의 밤공기는 날카로운 각성을 재현하고 있었지요.

엄마들끼리 잠시 아이들 얘기로 수다나 좀 더 떨까 앉았다가
아, 내가 문제구나,
확인하고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고,
행여 일었던 서운함과 못난 마음들 꺼내 풀고,
마지막까지 해갈되지 않는 게 있다면 무언가 또 까뒤집고...
잠을 포기하길 잘했지요.
다시 뭉쳤다,
그런 기쁨으로 손을 맞잡았습니다.
어느새 시계는 아침 여덟 시를 향해 치닫고 있었더랍니다.
고맙지요,
열고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더이까,
그런데 자기를 이토록이나 내려놓을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지요.
우리 아이들이 이런 어른들과 있어서 고맙다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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