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해날 맑음, 학교 안내하는 날

조회 수 1269 추천 수 0 2004.12.03 10:34:00

11월 28일 해날 맑음, 학교 안내하는 날

2005학년도 신입생을 위한 안내가 있는 날.
잠을 설친 밥알들이 살구나무에 환영의 마음으로 노란손수건을 매달고,
이곳 아이들이 역시 반가움으로 천에 그려놓은 그림이 나부끼고,
대구의 논두렁이자 품앗이 황성원샘은
급히 물꼬 역사 비디오를 만들어 고속버스편에 보내고,
(연락을 맡은 이가 잊었더랍니다)
도대체 물꼬는 뭘 믿고 이리 당당한(?) 한지...
가마솥방에선 점심 준비로 한창이었지요.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벌레 잡으며 키운 배추며 무들로.

12시 30분,
서산에서 달려오고 있는 한 가정을 빼고는 같이들 밥 먹을 수 있었습니다.
1차 전형(?)을 통과한 스물다섯 가정(아이 서른 둘) 가운데
날을 잘못 알아 흙날에 찾아들었던 한 가정과
결국 오기를 포기한 한 가정을 뺀 스물 세 가정,
'초대받지 않고'(당사자의 표현) 온 가정 둘이 모였더랍니다.
널럴한 점심시간으로 설거지도 일찍 끝나고
문건도 이미 다들 읽은 터라
2시에 하기로 한 모임이 삼십분 일찍 시작되었네요.

애들은 누구여도 된다,
부모들이 장애든 비장애든, 버릇이 있든 없든 아이를 맞듯
우리는 누가 와도 된다,
내 애새끼를 위해서, 그것이 불순한 의도라고 말하지 말자,
문제는 출발은 그러했으나 우리 눈을, 삶을, 확장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애들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 자신, 우리 어른들을 놓고 얘기해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 삶을 놓고 말하자,....
이런 곳이 존재하고 유지되도록 무엇을 했나,
무임승차에 대한 불편함도 접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늘 왜 이곳, 이 자리에 와 있는지를 말하며
자연스레 서로의 가치관을 드러냈지요.
물꼬는 환상을 깨고 이곳이 가진 한계를 더 많이 말해주고
밥알식구들은 그들이 겪은 물꼬에 대해 증언해주었으며
그러다 둘러앉아있는 이들끼리 탁구공이 빠르게 오갔습니다.
꼭 물꼬가 대답하지 않아도 아는 이들이 답변이 이어지기도 하고.

밖에선 아이들이 '새벽의 동그라미'에서
젊은 할아버지가 구워내는 군고구마에 들러붙어 있다가
천지를 헤매다녔다지요.

원서가 서른 다섯 장이 나갔습니다.
(글쎄, 예기치 않았던 손님들은 어이해야 하는 건지...)
재미나지요,
고작 왜 이곳에 아이를 보내려는가 편지 한 장을 읽었을 뿐인데
그렇게 읽힌 것과 부모님들이 드러낸 삶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거요?

잠과 씨름하며 자리를 지킨 밥알식구들,
제주도에서부터 먼 길 찾아든 손님들,
손님들을 위해 맛난 고구마를 먹는 줄에서 뒤로 빠졌다는 물꼬 아이들,
그리고 이제 이곳과 연이 된 아이들,
모두 모두 애쓰셨습니다.
돌아보니 못다한 말이 더 많았지만
어차피 공간과 시간이 갖는 한계려니,
그렇게 접고 나머지는 신입생이기를 바라는 이들이 다 안고 갔답니다.
아무쪼록 잠시 우리 삶을 한 번 흔들어본 시간이었길,
더할 수만 있다면 행복한 만남이기까지 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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