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5.물날. 맑음

조회 수 738 추천 수 0 2014.02.09 11:29:23

 

 

스무 살 주원이가 왔습니다,

12학년의 막바지에 흡족한 대학 합격소식을 가지고.

방황하던 시기 물꼬가 고마웠다 하던 친구입니다.

김 포르르 오르는 시루찰떡 한 말을 짊어지고 나타났지요.

“어, 아직 따뜻해!”

“어머니가 어제 전화를 해서...”

읍내에서 젤루 맛있는 떡집을 알아보고,

그 떡집에다 시골 어르신들 가장 잘 먹는 떡을 주문해서

오늘 주원이 도착하는 기차편과 맞춰 역으로 배달을 시켰다는...

만들어서 보내는 떡 아니어도 마음씀이 읽히는.

“니네 어머니는 어쩜 이리 적절한 선물을 보내셨다니...”

 

떡을 접시 접시 담아 커다란 쟁반에 놓아 든 주원이를 앞세워

경로당이며 마을 몇 집을 돕니다.

거동이 불편한 댁도 가고,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 댁도 가고,

자주 오가는 이웃에도 가고,

그리고 경로당도 들리지요.

“대학 합격하고 인사 오는 애 편에 학부모가 보냈네요...”

“누구라? 자라? 축하해!”

할머니들의 덕담.

 

오전에는 면소재지에 다녀왔습니다.

새마을 지도자회의 결산하는 날,

새해 움직임도 확인하고,

재밌기도 하지요.

짱돌 던지며 화염병 뒹굴고 최루탄 난무하는 80년대 거리에 있었던 사람이

지금 시골 면소재지 2층 회의실에서 권위적인 의자에 앉아

새마을연수를 언제 가느냐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어느 동네가 밥을 하느냐,

그런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살아볼 일입니다.

사람의 내일을 무엇 하나 말할 수 있는지요.

 

그네와 야외용식탁의 걸레질을 주원이에게 부탁합니다.

목재보호용 도료를 칠할 참.

생각났을 때, 맘 내켰을 때 하자 하고.

그런데 먼저 닦은 식탁으로 붓이랑 도료를 들고 가니

닦은 걸레자국에 남은 물기가 벌써 얼어 있습니다.

“안되겠다, 그네는 닦지 마라.”

아무래도 오늘은 작업이 안 될 듯하여.

날 맵군요.

 

“잘 쉬고 가라.”

독기를 빼고 간다 표현하지요,

여기 와서 내내 까부룩까부룩 잠을 자다 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달래 바쁠 일도 없는 시기,

따순 아랫목에서 뒹굴거리다가만 가도 좋으리 합니다.

저녁 밥상까지는 좀 쉬랬더니

고새 마을로 돌아오는 9학년 아이를 맞으러 나간 주원이.

흔들리는 제(자신의) 경험이 있어

후배에게도 좋은 이야기 들려주던 애정 많은 주원이는

홀로 읍내에서 오는 아이를 맞으러 마을 계곡 들머리까지 걸어 나갔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너무 이르게 나가 한참을 어둔 겨울 저녁 떨었던 모양.

 

스무 살,

저들끼리야 어디 마신 적 없겠냐만

이제 마주앉아 대놓고 곡주도 한 잔 할 수 있는 나이.

겨울밤 모여앉아 잔도 기울이지요.

노는 손은 삶아 놓은 감자 껍질을 벗기며,

버터에 굴러도 먹고 으깨 샐러드도 하고 샌드위치도 해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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