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몹시 불었습니다, 구름 잠시 지나기도 하고.
단식 이틀째.
얼마나 먹고 살았길래 아직 속이 이리 무겁단 말인가요,
이틀 곡기를 넣지 않았는데도.
대배 백배로 시작하는 아침,
개운한 아침이긴 하나 그래도 수행하고 나니 고단함이 좀 밀려옵니다.
어제 남도의 한 절집에서 베어온 대나무들을 내렸습니다.
배사며 풍사며 다입궁사며 차 관련 도구를 만드는 데도 쓰고,
더하여 평상도 하나 만들어볼까 하지요.
소사아저씨는 닭장 뒤란 밭 마른풀을 뜯다가
간장집 앞 도랑을 청소하고 계셨습니다.
한 자리 일을 끝내지 못하고 여러 날 끌고 가는데,
그게 또 당신 일하는 방식이십니다.
산만하고 더디지만 끝을 만나는 날 오지요.
사람이 같이 살다보면 더러 내 방식인가 아닌가로 다투는 날이 있습니다.
아집이 드러나는.
그런데 그 순간 이게 정녕 죽고 사는 일이더냐 물어볼 수만 있다면
사람살이 갈등 반은 줄지 싶은.
한 방송국에서 전화.
새로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동행하자는 소식.
여행을 하고 그 산지에서 얻은 것들로 밥을 지으며 얘기 나누는.
같이 민주지산 올랐다가 물꼬로 들어와
이곳을 둘러친 자연과 사는 것들과 물꼬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일단 단식 중이니 이후 다시 연락 하라 했습니다.
할 만하면 할 테고, 아님 말테고.
식구들 밥상 준비 좀 해둡니다.
단식수행을 하던 초기엔 단식을 않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위해
때마다 밥상을 차리기도 하였는데,
그 세월 오래이고 보니 자리가 잡혀
밑반찬과 찌개거리를 좀 챙겨놓으면
단식을 하지 않는 식구들이 알아 챙겨 먹습니다.
단식 때는 읽을거리를 준비해두지요.
평소 읽고 싶었으나 미처 못보고 있던 책이거나
그 맘 때 잡히는 책이거나
필요한 공부 책이거나...
오늘 책 좀 읽었네요.
이래서도 단식을 즐기는군 싶은.
‘목숨껏 노엽다’,
오늘 시를 읽다 발견한 구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으나
한편 어떤 낱말은 너무나 적절하게 그 상황을 전하기도 하지요.
오늘 그 구절이 그러하더이다.
아, 제 마음이 그리 노여웠다가 아니라
때로 노여움이란 것이 목숨껏이기도 하더라는, 충분히 노여움이 전달되는 문장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