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구집 뒤란 가지들 설켜 있는 나무들과

대들보 뒤란 쓰레기처럼 뒹구는 나무들 정리,

언제나 그리 후미진 곳 살피기.

그리고 밭에 무섭게 오르는 풀들 잡기.

그렇게 여러 날이 갔습니다.


20일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하고

진눈개비와 눈을 반복하다

밤에 기온 툭 떨어져 영하.

21일도 새벽에 눈 많이 내려

겨울 아니나 눈에 갇히듯 안에서 옴작거린 산마을 사람들.

22일부터 한 이틀은 운동장 가장자리 도랑들 정리하고,

24일 감자밭 두둑 만들고.

그리고 비가 조금씩 내린 25일이었다지요.

그런데 날은 포근하고 바람도 조금 살랑거렸다는.


파리에 있었습니다.

한국이랑 비슷한 기온,

하지만 맑았던 날씨 끝에 아침 눈발 날리다 비 내리다 갠 봄날이었더랬습니다.

국제회의 하나에 참관인으로 동행.

각국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회의를 주관하여 밀도있게 조직한 이들을 보며

참 ‘실속 있게’ ‘일을 잘 한다’,

그런 생각했습니다.

짬내서 메트로 6호선 코르비자르 역에 내려 뷔트 오 카이 언덕도 올랐지요.

시민단체 ‘파리의 친구들’도 지나 파리꼬뮌광장에 이르고.

파리코뮌(Commune);

1871년 3월 28일부터 5월 28일 사이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의 시절.

1870년 7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서 국민의회는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비준하고

지배층과 정부군은 베르사유로 도피합니다.

그 권력공백기, 시민자치라는 가슴 떨리는 시간이 만들어지지요.

그런데, 코뮌이 지상 최초의 노동자정부를 수립하려고 분주한 틈에

프로이센과 결탁한 정부군은 5월 21일 파리로 진격합니다.

그렇게 ‘피의 1주일’이란 7일간의 시가전 끝에 28일 코뮌은 붕괴되고,

3만 시민이 죽고 많은 이들이 처형을 당하거나 유형을 당했습니다.

1871년 5월 25일 시민군사령부가 있었고 마지막 진지를 구축했던 곳이

바로 이 언덕이라 했던가요.

'그 안에서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완수하기 위해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태'

칼 막스는 코뮌을 그리 평가했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도

러시아 혁명에 선행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혁명정부 코뮌이라 규정했습니다.

언덕을 내려오며 ‘버찌가 익을 무렵’을 흥얼거렸지요.

80년 광주 피의 시간들도 바로 버찌 익을 무렵이었습니다려.



Antoine Renard / Le Temps Des Cerises (버찌의 계절)



버찌가 익을 무렵이면

명랑한 나이팅게일과 꾸러기 개똥지빠귀는

신나게 노래 부르며 흥겨워하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가슴은 터질 듯 부풀고

연인들의 가슴은 설레임으로 뜨거워집니다

버찌가 익을 무렵이면

종다리의 지저귐은 더 한층 높아만 가죠


하지만, 버찌의 계절은 짧아

둘이서 짝지어 함께 꿈꾸듯

버찌를 따러 가는 계절은 잠시일 뿐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랑의 버찌는

나뭇잎 그늘로 떨어지고 맙니다, 핏방울처럼

버찌가 익는 시간은 너무나 짧아

꿈꾸듯 산호색 버찌를 따는 계절은


이 버찌의 계절에

사랑의 상처가 두렵다면 아름다운 아가씨를 피하세요

그러나 내게는

고통이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답니다

버찌가 익을 무렵이면 당신도

역시 사랑의 괴로움에 빠지겠지요


하지만 난 언제까지나

버찌가 익어 가는 계절을 사랑할거예요

설사 내 마음 속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생겨

행운의 여신이 내게 온다 하더라도

이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겠지요

난 언제까지나 버찌의 계절을 사랑할거예요

마음속에 남겨진 고통의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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