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6.해날. 갬

조회 수 710 추천 수 0 2014.05.09 06:44:21



사흘째 길을 헤매는 봄입니다.

찹니다.

가는 겨울 끝바람이 다시 돌아와 낙엽들을 불렀고

다시 뒹구는 마른 잎들.

새벽, 살얼음이 얼었습디다.


현리의 산 속에 들어 서리산에서 한 물꼬의 세 번째 계자,

1995년 봄을 그렸습니다.

그 계자가 벌써 158번째를 앞둔.

그리고, 선배들과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산을 나와

어제 이어 4월 빈들모임을 위한 종묘 2차 답사.

사람들과 종묘를 걸으며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나눌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걸을 것인가, ...

운현궁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서울 한복판 고즈넉한 그곳도 좋으리라 하지요.

물꼬 서울학교가 가회동에 있던 시절,

멀리서 사람들이 오면 비원을 걷거나 운현궁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시간에 맞춰 들어가는 창덕궁 뒤뜰은

흐린 날이라면 첫 시간은 해설자 없이 홀로 걸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는 하였지요.

점심은 인사동의 안국동 쪽 들머리의 키 낮은 앉은뱅이 탁자가 있는

지붕 낮은 집에서 먹으리라 합니다.

굳이 들리는 않고 전화로 예약만.

인사동을 돌고 다음은 인사동 저 쪽 끝의,

이제는 서울을 떠난 한 선배가 얼마 전까지 운영하던 집에서 갈무리를 하리라,

그림은 그리 그려졌습니다.


물꼬 본관 들머리 현관 기둥 곁에는 화분 둘 앉아 있는데,

지난해 가을을 보내고 말라비틀어진 국화 줄기 사이로

새잎들이 차고 올라옵니다.

죽은 것들 사이로 새잎들이 나오는.

그들의 시간은 그러합니다.

운동장 건너 나이만큼 커다란 백합나무는

마른 꽃자리 그대로 매단 채 새잎들을 답니다.

‘늙은’ 나무들이 ‘새’잎들을 다는.

그들의 시간은 그러합니다.

시간...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밤새 쓰고 구기고 던지고, 그러기를 또 여러 날,

그러다 살아남은 편지가 접혀 봉투에 들어가고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다리던.

편지는 제대로 갔을까, 읽기는 했을까, 마음이 어떨까,

답장은 언제 받아볼 수 있을까 하던.

그런데 1993년 5만 7599개를 정점으로 우체통은 급속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지요.

2004년 3만 3544개, 2008년 2만3761개, 2013년 1만 9121개.

‘물안개 피어오르는 하늘을 넘어’ 편지가 가고

‘저녁 물소리로 창문을 두드리는’ 답장이

‘밤마다 강을 건너가는 것을 우체통은 알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체통은 가슴이 늘 벅차올랐습니다.’(도종환의 ‘우체통’ 가운데서)

그렇게 벅찼던 우체통은 이제 야위어

이문재는 ‘푸른 곰팡이-산책시1’에서 이제 이리 노래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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