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17.나무날. 오후 비

조회 수 658 추천 수 0 2014.05.21 08:11:17


산마을을 나갔다가 여러 소식을 듣고 옵니다.

산촌유학센터 일로 남도의 한 센터와 논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먼저 그 일을 해온 곳이고,

이끄는 분은 영성지도자로 활동해온 어른이십니다.

그런데, 부적응학생과 지적장애아를 중심으로, 그리고 농촌생활을 원하던 아이들을

한때 너무나 활발하게 돌보았던 그곳은

이제 장애아 하나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최근 서울 인근과 지방의 두어 곳을 빼고는

그 분야 상황이 그러하다합니다.

더하여, 남도에서, 어쩌면 대안학교의 선두주자였던 한 학교 소식도 같이 듣습니다.

해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했던 그 학교는

올해 겨우 정원을 채웠다지요.

그럴 밖에요.

대안학교가 담당했던 부분들을

이제 혁신학교라든지 제도학교에서도 일정정도 채우게 되면서

굳이 부모 역할을 많이 요구하는 대안학교가 더 이상 매력이 없어졌다는 진단.

대안학교가 이제 그 질이 찼음이야 최근 계속 물꼬에서도 주장하고 있는 바입니다.

다른 질이 필요한 때이지요.

어느 영역이고 그렇지 않을까요,

무언가가 차면 다른 질로 이행하는 것이지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길을 찾을 때도 그것을 왜 하느냐는 고민 아니겠는지.

우리 아이들에게 정녕 무엇이 필요할까 물어야!

선생님 부부는 언제나처럼 돌아오는 걸음에 선물을 또 한 아름 안겨주셨습니다,

양파즙이며 현미옥수수숙성볶음이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이들이 떠나고 아이들도 이제 없어 고즈넉해지기까지 한 그곳이지만

여전히 농사를 짓고,

외려 평화를 이루고 산다 보여졌습니다.

하나의 평화기지로서 여전히 그곳은 ‘존재’하고 있었지요.

중요한 건 살아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싶데요.


재활승마센터에 다녀옵니다.

지난해 수업과 일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해내야 했던 센터는

먹고 자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마방 일을 한 달만 거들어달라며

이곳 아이에게 150만원을 제안한 일도 있었습니다.

중학생 나이의 아이에게 과분한.

재활승마 수업을 하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말을 타던 아이가

어느 때부터는 어미보다 잘 타더니,

한 승마고로부터 오라 제안을 받기까지 했더랬지요,

덩치가 커서 기수는 못하더라도.

그 아이 올해 10학년, 이제 제도학교를 가 사십여 일을 보냈습니다.

공부가 정말로 재미있다지요.

“그러면 하렴.”


장정 노릇하던 아이의 손이 없으니 일이 감당할 수준을 자꾸 넘고

아이는 아이대로 제 삶도 물꼬에 남겨진 일들도 걱정이 많습니다.

오늘은 어느 아비처럼 아이에게 몇 자.


얘야,

이른 아침에 출근이다.

집이고 일터이고 놀이터가 같은 곳이고 보면

이런 의식적인 동선이 좀 중요하다.

그래야 늘어지지 않으니까.

수행방에서 절을 하지 못하는 날이라면 더욱 소도를 한 바퀴 돈다,

그거라도 해야겠는 그런 일 있잖여.

사실은 좀 추워서도 그렇다.

낮은 덥기까지 하지만 아침은 여전히 쌀쌀하다.

오늘은 비가 내려 낮에도 싸늘했다만.


재밌느냐?

이곳은 여여하다.

꽃이 피고 봄이 오고 잎이 연초록을 벗고, 그야말로 여여하다.

여전히 물꼬는 일이 많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당연하지.

못할 일은 못하는 거지.

아주 안 되겠으면 그만하면 될 일이다.

아직은 괜찮다.

사람들이 더 자주 손발을 보태고,

그것 아니어도 규모를 조절하며 일을 해가고 있다.

아직은 재미지다.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다, 네 아비도 선배들도 그리 말하지만

돈 되는 일은 늘 아니고

성과도 없이 바쁨은 계속되고

그래도 뭔가 좀 괜찮은 세상에 살아보려는 나로서는

그런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복무해볼까 하고 움직인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어이 하여 이십 년도 더 되는 세월을 물꼬에서 살아내는가 하고.

뭐 무슨 대단한 신념 그런 게 아니라면 실망들을 할 테지.

그런데 사실이다.

그냥 흘러오다보니 그리 되었다,

그런데 나는 외려 이 까닭이 좋다.

가다 보니 거기 이르렀다 그런.

하다 보면 이 일도 되고 저 일도 되고,

이 일이 안되기도 하고 저 일이 안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하는’ 것.


물꼬가 세상과 늘 거리가 있다 생각들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라는.

하지만 절집인들 수도회인들

세상으로부터 누가, 무엇이 무관할 수 있겠느뇨.

자주 하는 말이다만 핵심은 ‘균형’.

그래서 물꼬는 세상과 다리가 있는 섬이다.

세상과 소통하되 끄달리지 않고 뜻대로 살기.

나는 네 선택도 그런 길이길 바란다.


나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이 힘이 든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반영일 터.

그러하니 결국 나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고

거기 또한 내 삶의 길이 있을지라.

너 또한 그리 들여다보며 네 길을 갔으면.

그 길이 어떤 색깔이든 다만,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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