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빈들, 2014. 4.19.흙날. 흐림

조회 수 819 추천 수 0 2014.05.21 08:17:39


귀룽나무 꽃잎이 날립니다,

향도 함께.

저 무수한 꽃잎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이 봄이 바쁘네요.

물꼬 누리집에 소홀했음에 대한 변명쯤 되겠습니다.


사흘 동안 영동에서 하는 빈들모임 대신

이 달은 서울 나들이를 하루 하기로 한 4월 빈들모임.

아침, 종묘 외대문 앞에서 모였습니다.

아직 아침을 먹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서현샘이 초코파이를 꺼냈지요.

초코파이, 우리들에게 각별한 물건입니다.

그거 하나 먹자고 겨울이고 여름이고

개미떼처럼 줄서서 산으로 간다는 물꼬 아이들이 떠올라 배시시 웃게 되는.

평소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것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것이 된다는 산 정상...


세월호 참사에 대한 먹먹한 마음과 애도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로 4.19 혁명을 되짚었지요.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 봄은 오는가’도

이육사의 ‘절정’ 떠올리며.


조촐하게 베풀어진 단청과 홍살의 외대문으로 종묘에 들어서서

각 건물들이 갖는 의미와 장소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갖는 뜻을 헤아리며 거닐었습니다.

종묘의 건축이 갖는 가치, 종묘가 가진 뜻, 길과 연못과 누각의 의미....

공민왕 신당도 지나 향청에 들러 혼비백산을 해석하고,

재궁에 이르러서는 12장복이며 임금의 복장에 대해 살피고,

전사청을 거쳐 정전의 하월대에 앉아 종묘제례악을 그려보았지요.

동월랑 계단에 올라 긴 길이로 드러누운 정전의 기둥을 눈으로 더듬고,

구름 모양의 법수석을 더듬으며 운궁을 올려다보고는

침묵,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닫힘과 열림들도 생각했습니다.

무심한 익공의 짜임,

중앙부보다 낮아 다소곳하게 정리되어 보이는 양끝단의 지붕,

증축 때마다 그 시대의 건축양식을 담아낸 기둥...

나오는 길에 해우소를 다녀오는 일행들을 기다리다

지은샘이 챙겨온 과일이며로 주전부리하는데,

아차차차, 신성한 곳에서 그러고들 있다고 관리자에게 혼이 나기도.

아, 지복현샘은 세상에! 아몬드를 한 움큼씩 모두를 위해 한 봉지씩 싸오시기도.

“자상도 하셔라!”


다음은 운현궁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늦은 이들이 그쪽으로 와서 합류.

고종이 열두 살까지 살았던 사가이자 기울던 조선 막바지의 역사를 안은 마당에서

도시 한가운데 발견한 휴일 오후의 고즈넉함에

한껏 취하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인사동의 지붕 낮은 옛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마루식으로 앉아 먹던 운치 있던 그곳이

고새 식탁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들며 가져온 변화였던 듯한테

약간의 아쉬움이...

미루샘 유설샘과 동행한 어린 소윤이와 소율이가

바닥에 앉는 자리였으면 더 편하였을 것을.

“밥은 누가 사는 거예요?”

“그래서 회비 냈잖여.”

“어, 저는 물꼬 보탠 건데...”

그 말이, 그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우리 가온이.


오후엔 두 패로 나뉘어 사람들을 헤집고 인사동을 걷거나

조계사 경내를 걷고 혹은 미술관을 들기도 했더랬습니다.

법당에 들어 절을 하기도.

그런데, 사람에 치이기도...


마지막으로 낙원상가 쪽 인사동 끝지점에서 갈무리모임.

지복현샘이 어느새 운현궁에서 모두를 위해 산 엽서와 펜을 선물하셨지요.

물꼬의 2014학년도 한해살이를 공유하고,

5월 어른계자를 어찌 꾸릴까 안내도 하고,

무엇보다 품앗이샘들과 새끼일꾼들을 주축으로

달마다 한 번씩 서울에서 이어갈 공부모임에 대한 의논은

아주 고무적이기까지 하였답니다.

(준비모임: 5월 10일 흙날 낮 2시 서울 안국역 근처)


멀리 광주에서 날아와 준 해숙샘, 충주에서 휘령샘, 음성에서 지복현샘,

성남에서 지은샘, 안성에서 진주샘,

김포에서 아리샘, 군포에서 미루샘과 유설샘과 여섯 살 소울, 세 살 소윤,

서울 안에서 철욱샘, 서현샘, 연규샘, 기락샘,

수원에서 성남에서 새끼일꾼 가온과 재호가 동행하고,

하여 갈무리 장소에 수년 만에 얼굴 보이러 온, 새끼일꾼들의 전범이었던 아람샘과

인교샘과 건호와 윤호와

수필가 김창환샘과 백인화샘까지 저녁시간을 내주셔서

반갑기 더하였습니다.

함께 하지 못했던 익산의 희중샘과 영동에서 기차 타고 같이 올라가기로 했던 류옥하다,

그리고 덕소의 선정샘과 성빈이와 세현은

다음 걸음을 기약하고.


일상 벗어나 이리 오니 좋다,

틀에 박혀 살다 아들이랑 좋은 사람들과 보낸 자유가 좋다,

이름 익숙하나 얼굴은 모르다가 봐서 좋다,

서울에 사는데도 못 가봤던 장소들 밟아 좋다,

종묘 운현궁 한 번도 안 가본, 그런데 얘기 들으며 못 가봤던 곳 가서 좋다,

좋은 공간 알아 좋다,

좋은 사람들과 바람 쐬러 나와 좋다,

맨날 왔다갔다 하며 애들이랑 오고 싶었는데 와서 좋다,

대학을 들어가고 이질감을 느끼다가

물꼬 사람들보며 내가 가는 삶의 방향에 동행자들이 있구나 확인해서 좋다,

옥샘 뵈어 좋다,

그래요, 좋고 좋았습니다.

가온이도 그랬습니다.

“일상은 재미없어요. 뭔 재미로 사는지.

역시 어디 만나든 물꼬 사람들 이 인간관계 좋구나...”

아리샘은 이번 빈들모임에서 사람 만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며

인문학모임 광고를 했지요.

물꼬 식구들이 서울에서 달마다 한 차례 할 공부모임.

세미나 부활해야 한다,

잘 해야겠다가 아니라 해야 해,

사람 많지 않아도 필요성 속에 움직이다 보면 확대되고,

특히 새끼일꾼들 왔으면 좋겠다,

훈련의 자리가 필요하다...


몇은 더 남아 김창환샘 부부가 벌인 찻상에서

얼마쯤 담소 이었네요.


고맙습니다.

숨은 보물을 찾은 듯한 종묘와 운현궁이 준 기쁨과

물꼬의 인연으로 모인 우리들의 꽤 길거나 혹은 싱싱하게 시작한 연과

그리고 흐릿한 날씨마저 화창한 마음으로 덮던 봄날 하루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에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살아 움직일 내일의 시간에도 배우고 익히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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