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잘 썼던 가마솥방 방석들을 꺼내 빨래통에 담그고,
겨울신발들도 털어 물에 부시고,
밀린 다림질도 하고,
가마솥방 윤기내고,
장독 닦고,
바깥수돗가도 훑어주고,
가마솥방 앞 풀도 뽑고,
아이들을 만나고...
달래 무슨 길이 있습니까,
세월호의 참담한 시간들을 건너갈 방법이.
직불제 건으로 마을회관에서 관련 마을사람들 죄 모이고,
차례대로 서류들을 확인하고.
덕분에 들에 나가 서로 얼굴들도 잘 보지 못하다 인사하고.
삶은 계속됩니다...
마을에 작은 갈등 하나.
어디라고 없을까요.
나이든 사람들과 젊은 축의.
그럴 수 있겠다, 그 마음이 안 되는.
좋은 이야기도 그렇지만 나쁜 이야기도 모이면 증폭되기 더 쉬워
상대편을 험담하고 할퀴고.
안타깝습니다.
일단 듣고 다만 움직입니다.
말이란 게 앞뒤가 있겠거니, 태도란 것도 앞뒤 정황이 있겠거니,
일단 자신의 일을 다만 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경험.
전엔 중재자로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도 그런 역을 해낼 수 있다는.
오후에는 자활센터와 대안학교 쪽 여럿이 물꼬에 모였습니다.
“어, 나 선생님 알아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지난 주 콩재배 교육을 받던 도민교육관에서 맨 앞 옆자리였다는데,
제가 뭘 물어보기까지 했다는데,
그리 만나데요.
연대가 힘이지요.
서로 도울 일들을 찾아봅니다.
사람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럴수록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뭔가를 해야지!”
두어 주 뒤부터 진행하려 했던 수행모임이
오늘부터, 뭐 전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주에 한 차례.
일이 되려니 이리 됩니다.
이리라도 옴작거려야 하겠는.
그래야 세월호의 참담한 시간을 지나갈 수 있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