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도였다구요?
그러나 아침엔 추웠는 걸요.
진도 앞바다, 그 바다 속은 어땠을지..
NPO법인 오이타현 그린투어리즘 연구회의 미야타 세이치 회장님이
영동에 오셨습니다.
농가민박마을 아지무정,
오지에서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우리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바로 그걸 하고 있다는.
마을을 살리고
살린 마을이 도시 사람들을 살린.
품질유지와 지속가능하기 위한 그들의 세 가지 약속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패와 어려운 점을 공유하자.
절대 험담을 하지 말자.
제대로 공부하고 일류로 배우자.
얘기 중 교육공무원의 정신적 질병이 쉬지 않아 그렇더라는 통계를 언급했는데,
그들이 다녀가며 교육에도 작은 변화들이 일렁였겠다는 짐작.
물꼬의 역할이 더 넓어지겠단 생각도.
즐거운 만남이었지요.
충남대 사대랑 6월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6월 빈들모임을 앞두고, 마침 기말고사도 끝난 시점,
손발 보태면 큰 힘일 테지요.
5월에는 부산대 사대랑
8월에는 한국교원대랑 이어지겠습니다.
교사가 되려는 이들의 좋은 훈련의 장이고 있지요,
아이들의 학교이면서 어른의 학교라는 표어대로.
제도학교를 측면 지원하는 역을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많은 이들이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고,
동시에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 채 오해하고 있다면,
그 책은 고전일 가능성이 높다던가요.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도 그런 책 하나라는.
수많은 신화에서 한 가지 공통 요소를 뽑아내는데,
하나의 희생물을 폭력과 죽음 앞에 노출시킴으로써
다른 잠재적인 희생양들의 안위를 일시적으로나마 지켜내더라고.
아주 먼 고대로부터 하나의 희생물을 바침으로써
모두의 결속과 안위를 도모하는 일은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종종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걸 확인해서 뭘?
사실 새삼스러운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인문학자는 어떻게든 해답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인류가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그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강변하며.
물론 예수가 그 한 예였다며 지나치게 기독교 중심적 해석을 깔지만.
인문학의 역할은 문제를 보고 알아차리고 개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마다요.
어떻게든 그것과 싸워내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과정.
물꼬의 ‘섬모임’도 그런 것.
우리는 아는 걸 넘어 움직이려지요, 각자의 삶터에서.
그러자고 모여 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