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9.쇠날. 맑음

조회 수 687 추천 수 0 2014.05.31 01:20:02


봄 같은 봄날.

포도나무에 잎이 오르고 있습니다.


단 바람이 조금씩 일고,

이른 아침 일 좀 하고.

물꼬 도메인 건 처리.

관리자 정보를 변경했지요, 물꼬 이름으로.

도메인이 일을 맡았던 이의 개인이름으로 돼 있었던 것.


현장견학 있어 이천으로.

그런데 내일 서울에서 공부모임인 섬모임이 있어 차를 가져가야 한.

그리고 농업교육 모임을 다음 주말에 물꼬에서 하자는 의견들 있었고,

사람들에게 통문을 돌리는 중이라는 전갈이 온.


스물두 살은 내 생의 랜드마크였다,

얼마 전 벗이 선물한 책 한 권의 어느 구절.

스물두 살...

저도 그리 쓸 수 있겠다 싶은, 스물두 살은 내 생의 랜드마크였다고.

스물둘,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스러진.

물꼬 일을 그 나이에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투병을 시작한 해였고 질주하듯 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내 등에는 세 동생이 업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마저 내게 기댔다. 나는 싸움꾼이 돼야 했다.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 죽는시늉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어머니의 유언대로, 어머니를 대신해 엄마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으므로.

필요에 의해 선택한 성격과 달리, 나는 태생적인 겁쟁이다. 낯선 일을 싫어하고, 노상 허둥대고, 곧잘 상처받고, 넌더리나게 망설인다. 혼자 욱하고, 혼자 부끄러워한다. 사소한 일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졸렬하게 군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이토록 후진 자지로, 극단적인 두 성질의 충돌을 끊임없이 겪으면서 그 기나긴 어둠을 어찌 통과했는지 스스로 신통할 지경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가 있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삶이 단단해지지 않았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어둠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생과 싸우는 법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링이 아닌 놀이터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전의를 불태울 대상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테다. 나는 노는 일마저 훈련해서 노는 인간이 되었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정전 상태에 빠뜨린 원인이었다.

... 나는 혼자 가야 했다. 빚을 갚고, 동생들을 가르치고, 집안살림을 꾸리면서. 운명이 내게 둘 중 하나를 요구한 셈이었다. 달리거나 고꾸라지거나.

이제 와 나는 울고 싶었다. 어머니가 떠났던 오늘, 이국의 쓸쓸한 강가에서 뒤늦게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면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이 두려움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리지 않으면 고꾸라진다는 두려움, 고꾸라지면 죽는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아, 당신은 알까. 여기 한 사람도 그런. 그리고 보다 많은 우리들이 그러한.

여행서에서 정작 찬찬히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한 부분이 거기.

뭣 같은 책이라고 절반쯤 읽다 팽개쳤다가

어제 오후 비오는 결에 마저 읽고 덮었습니다.

글 좀 쓰는군, 구력 있네, 그래서 다른 책도 챙겨 봤던 작가인데,

소설 그리 즐겨 읽지도 않으면서,

이번 책은 20대의 객기로 쓴 글 같아 시작 몇 페이지에서는 짜증이 일기도.

그래도 뭔가 있으려니, 그래도 똑같았던.

이야기와 자기 삶은 다른 것이기도 하더라는.

작가와 작가의 삶은 다른 것이기도 하더라는.

하지만 처음 길을 떠나려는 이들에겐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과 어떤 길일 것인가 하는

정보로서의 일정정도의 기능은 있었지요.

한편, 어쩌면 가벼운 책이어서도 좋았기도 했던.

4월 말부터 도대체 책 하나를 잡을 수 없었던 날들.

이렇게 얇은 책 아니었으면 들여다 볼 수 없었을.

‘앞으로도 기회 되면 책 공수하기. 무엇이나 귀한 산골이잖여.’

그렇게 벗에게 고맙다 글 한 줄도 보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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