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16.쇠날. 맑음

조회 수 716 추천 수 0 2014.06.04 10:14:31

 

바람 나무 그리고 밤

그렇게 또 봄이 4월이 5월이 이 폐허가

그 속에 있는 듯

(그리고)

사람이 희망이듯

움직임이 희망이리


깊은 밤 한 벗의 문자를 읽습니다.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권했던 친구.

그 책 당도했다 연락 넣으며 마을에서 젊은 엄마들과 회동했단 소식도 전하였더니

온 답문자.

이 참혹한 시절을 건너가느라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헤집어졌을지.

이 참담함 아니어도 삶은 자주 폐허를 드러내노니.


물꼬에서 마을 소모임(일단 그리 부르지요)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젊은 엄마들, 그래도 50대이거나 넘거나, 규합회담(?).

벅찬 감동이 인.

어쩌면 산마을에서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있는지도.

혁명이 어디 무장하고 국가를 전복시킨다는 의미이기만 하겠는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의 발걸음이 모다 그 이름일 수 있을지니,

자신의 내부에서도 일어나는 일일지니.

흐흐흐, 혁명...

혁명가의 원동력은 감수성이라던가요.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섬세한 감수성이 혁명을 가능케 한다던가...

물꼬에 대한 안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산마을에서 조화롭게 살기 위한 발걸음.

학교 공간에 대한 설명이 곧

물꼬가 이 산골서 어떤 생각으로 무슨 짓을 하는가를 읽을 수 있는.

학교를 한 바퀴 돌며 전하는 물꼬 이야기를 마치고

각자 들고 온 먹을거리와 곡주를 펼쳤습니다.

“우리가 배워야겠구만.”

“그래 내가 배워야해.”

“이렇게 젊은 엄마들 다 모여서 강의 한번 하고

나이든 사람들도 모아 또 하고...”

무슨 강의라니요, 이 산마을에서 살아낸 모두가 선생이려니.

“우리 한번씩 이리 모이자.”

젤 큰 형님이 말합니다.

“그래요, 그래요.”


그렇게, 어제는 이웃집 자두밭에서 종일 자두를 솎아내고,

오늘 오후엔 마을의 젊은 사람 병문안을 잠시 가

손을 못 쓰는 그를 위해 수건에 물 적셔 얼굴도 닦이고 팔다리도 닦이고 등도 닦아주고

그리고 손발톱을 깎아주고

오늘밤은 이렇게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이들이 둘러앉아 곡주 한 잔.

사람같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한밤의 통화.

“물꼬는 나를 씻기는 존재 같은 거야.

내게 따뜻한 잠(자꾸 잠 속으로 불려가는)으로부터 깨워주는.

어릴 적 겨울에 외가에 가면 말이다,

방을 나오면 코끝이 찡해지는, 내 잠을 깨워주던 그 차가움 같은,

문고리를 잡았을 때 쨍하고 나를 깨우던...

영동의 바람은 내게 그런 거지.”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 모임하고...”

오래된 진보진영의 모임입니다.

“형, 아직도 그거 하고 있어?”

“아직도라니? 야, 내가 너 물꼬 아직도 하고 있냐 그러면 좋겠냐?”

“하하하, 그래, 그래...”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일종의 커피숍 같은 거지.

우리가 지나가면서 저 커피숍 문 닫겠다 싶은데 그러면서도 계속 열려있는.

그게 중요한 거야. 계속 살아있는 거.

커피숍 열고 취미생활 하는 거지.

그러며 한 번씩 사람들과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거지.

언젠가 사람들도 돌아와 커피를 같이 마실.

익명의 기지 같은 거.

나는 이럴 때 그람시의 진지전을 생각해.

언젠가 혁명이 일어나면 각 기지들이...

너도 한 샵의 주인이고 나도 또 한 샵의 주인인 거지.”

그래요,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게 얼마나 값진 일이겠는지...


참, 오늘 드디어 알콜 샀습니다.

달골 햇발동과 학교 가마솥방에 놓여있던 램프들

드디어 불 환히 밝혀보았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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