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17.흙날. 맑음

조회 수 744 추천 수 0 2014.06.07 01:06:27


태어나서부터 9학년 나이까지 내내 붙어 다녔던 아이가

요새는 세상으로 나가 보름마다 겨우 봅니다.

그것도 잠깐.

아이가 와서 자고 있으니 퍽 든든한 밤.

이 아이를 의지하며 지내던 한동안의 산골 삶이었는데.

비로소 어미가 홀로서기 하는.


마을 형님이 이른 아침 학교에 들리셨습니다,

자주고구마 모종을 들고,

싹이라 해야 하나...

어제 부녀회 젊은네들 물꼬 회동에서

주시마시더니 서둘러 걸음 하셨지요.

당신은 늘 뭘 주신다고 하면 그리 ‘곧’ 주십니다.

일도 늘 그렇게 하시지요.

일을 잘 하는 방법 하나이겠습니다.


두더지와 싸우고 있습니다.

길이거나 공터일 땐 그들의 집이려니 하다가

밭에도 운동장 가장자리도 그러할 땐

굳이 그 구멍을 파고 메웁니다,

저는 저의 자리에,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있어야지 하며.

저들과 세 싸움 하는 듯하여 잠시 헛헛이 웃었네요.


오늘 오전에야 비로소 어른계자 공지를 올렸습니다.

늦은.

5월에 모이기 수월치 않을 거라며 일정을 가을로 미룬다 어쩐다고도 하다

몇이라도 수행하는 날로 잡으면 되겠다,

이곳 식구들만으로도 날 잡아 수행하는 시간으로 하면 되지,

그렇게 늦은 안내를 하였습니다,

먼저 해둔 예비안내를 믿고는.


아, 섬(모임)에 가려했는데 못 갔다는 한 상담연구소 선생님의 연락.

자리하지 못해도 그렇게 관심을 더러들 가져주시는,

그러다 함께 앉는 날도 오겠지요.

자리를 지키고 나아가고 있으면

그리 어깨 겯게 되는 날도 올 것, 오고야 말 것.


아이랑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어미는 침을 맞는다 가고, 아이는 기차를 타고.

재래시장을 갔지요.

세상으로 나가니 옷가지도 좀 필요해졌다는 아이.

그간엔 물꼬 옷방에서 철마다 한 번씩 훑으며 챙겨 입었는데,

너무 커버린 아이가 입을 옷이 더는 없는 게지요.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곳을 가면 되니까...”

그렇게 파장에 가까운 장을 돌다 재활용 옷가게를 발견.

밖에서 보기엔 그저 아저씨 아주머니들 옷들로만 보였는데,

하나하나 옷걸이를 밀어가며 뒤적이니 아이가 입을 만한 것도 보입니다.

입어보고 마음에 들어 하는.

티셔츠가 3천원, 청바지가 3천원, 6천원으로 한 벌 잘 갖췄습니다.

“몇 개 더 고르자!”


갈수록 글이 밀도가 떨어집니다.

한 편에도 존재를 걸어야 할 것을.

어디 서해에 가라앉은 배 때문이기만 할까요,

어디 그 의혹들이 까닭이기만 할까요.

그 우울과 분노가 아주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다행히 삶의 밀도가 그런 것 같진 않고.

요새는 아이들 이야기도 할 말이 없는.

요즘 같이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주로 드러내지 못할 이야기를 더 많이 안고 있어.

글보다 중요한 건 삶일 테고,

드러냄보다 중요한 건 안일 것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3736 2014. 5.26.달날. 갠 하늘로 바람 거세게 휘돌고 옥영경 2014-06-13 654
3735 어른 계자 닫는 날, 그리고 갈무리글, 2014. 5.25.해날. 오후 비 옥영경 2014-06-13 771
3734 [고침] 어른 계자 여는 날, 그리고 이튿날, 2014. 5.23~24.쇠~흙날. 덥고, 뿌연 하늘 옥영경 2014-06-13 691
3733 2014. 5.22.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4-06-13 688
3732 2014. 5.21.물날. 맑음 옥영경 2014-06-13 621
3731 2014. 5.20.불날. 종일 몇 방울의 비 옥영경 2014-06-07 663
3730 2014. 5.19.달날. 오후 잠깐 흐림 옥영경 2014-06-07 800
3729 2014. 5.18.해날. 30도라나요 옥영경 2014-06-07 801
» 2014. 5.17.흙날. 맑음 옥영경 2014-06-07 744
3727 2014. 5.16.쇠날. 맑음 옥영경 2014-06-04 716
3726 2014. 5.15.나무날. 가끔 해, 그리고 바람과 바람과 바람 사이 옥영경 2014-06-04 685
3725 2014. 5.14.물날. 맑음 옥영경 2014-06-04 750
3724 2014. 5.13.불날. 맑음 옥영경 2014-06-04 748
3723 2014. 5.12.달날. 맑음 옥영경 2014-06-04 710
3722 2014. 5.11.해날. 비바람 부는 어둔 산마을 옥영경 2014-06-04 687
3721 2014. 5.10.흙날. 맑음 옥영경 2014-06-04 660
3720 2014. 5. 9.쇠날. 맑음 옥영경 2014-05-31 656
3719 2014. 5. 8.나무날. 소나기 옥영경 2014-05-31 673
3718 2014. 5. 7.물날. 구름 오더니 빗방울 좀 옥영경 2014-05-31 746
3717 2014. 5. 6.불날. 맑음 옥영경 2014-05-31 64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