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19.달날. 오후 잠깐 흐림

조회 수 804 추천 수 0 2014.06.07 01:09:30


까마귀 우는 아침.

개체수는 많아졌어도 아침부터 저리 울진 않았는데.

그들에겐 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겐지.


북악산 아래서 온 한 소식,

아카시아향기에 그의 마음도 산도 하얗다는.

여기도 그러합니다.

마을로 내려오며 찔레향에 젖었는데

학교 마당은 아카시아향이 먼저 내려와 있습디다.


아침, 산판을 하며 남긴 상흔을 정리하기 위해

마을에서 거간노릇을 한 분이 달골 오르셨더랬습니다.

“아무래도 인력으로 될 일은 아니네.”

굴삭기가 들어와야.

보셨으니 일이 되겄지요.


댓마에 일곱 살 아이가 외가댁을 와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비어있던 보건소로 귀농한 댁에

초등학생 둘도 들어왔습니다.

곧 대전에서 아비 먼저 이사를 왔던 가정도

머잖아 중학생 아들 둘이 오지 싶다는.

마을에 홀로 있던 9학년 아이가 10학년 되며 제도학교로 전향하고

다시 빈 마을에 아이들이 생겼습니다!


무슨 글쟁이도 아니지만

무수한 생각들이 흐르다 그저 물처럼 흘러가버려

막상 책상 앞에 앉고 보면 글 한 줄이 되질 않습니다.

작가라고라도 치면 고갈된 에너지라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면 이것도 일상에 지쳐 그러한 건지.

하지만 이 좋은 곳에서 좋은 일하며 그럴 일이 무에 있겠는지.

물론 산마을 살림이 고단키야 하지요.

가끔 아이들을 만나고 그리고 더 많은 어른들을 만나며

움직임은 쉼 없는데 요새는 자주 할 말이 없습니다.

세월호에 얽힌 숱한 의혹들 앞에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일에 넌덜머리가 나

한번 심연으로 내려간 마음이 올라오질 않는 것인지.

허망한 목숨들과 거기에 얽힌 이권과 정치적 음모

(그리고) 그래도 삶은 계속 되고...

한 품앗이샘의 연락.

“오오 진짜 어른계자를 하는군요. 짝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나라가 시끄러워 쉬는 날이 없어서 못 갈 것 같아요.”

다들 곳곳에서 아프고, 곳곳에서 욕봅니다.


신발 상자에서 검정고무신을 한 켤레 꺼냈습니다.

오래 겨울 장화를 벗지 못하고 있었지요.

고무신을 신고 도시를 다녀오려니 좀 그렇습디다.

얼른 신발에 꽃 하나 그려 넣었지요.

그런 거 하나로도 다른 신발이 되었네요.


한밤 목공작업 하나.

달골 뒤란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되는

햇발동 옆과 햇발동과 창고동 사이 그리고 창고동 옆,

세 곳에 가로막을 두어야겠습니다; 울짱.

뒤란이 크게 앞으로 무너져 내릴 위험은 없는 암반이라 하나

흘러내리는 마사가 계속 되고 있으니

누구라도 드나들지 않게 하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지난해는 한동안 줄을 연결해 위험구간임을 알렸는데

쌓인 흙들을 긁어낸 뒤 그냥 둔 상태.

다시 계절 지나고 비오고 그러고 다시 흘러내렸지요.

곧 긁어내려하지만 당장 쌓인 것 흉물스럽기도 하여

견본으로 먼저 하나 만들어보았습니다,

홍살문처럼.


교무실 일을 두고 잠자리로 갑니다.

이렇게 하기 벌써 한 달여는 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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