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22.나무날. 맑음

조회 수 691 추천 수 0 2014.06.13 08:44:28


오늘은 홍차를 마시는 다구들로 녹차를 달여 냈습니다.

그렇게 마시면 또 되지요.


부랴부랴 어른계자 신청한 몇.

일 많은 5월이어 시간 내기 쉽잖아 모일 수 있네 없네 하다

서넛만 되어도 수행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며

진행하기로 한 일정입니다.


물꼬의 품앗이일꾼이었고 논두렁인 이주욱교수님이랑

6월 일정도 확정합니다.

충남대 사대 차원의 일 아니어도 학생들 데리고 손 보태러 오시겠다는.

이래저래 예비교사연수들이 이어집니다.

한국교원대랑 여름 일정 논의 메일도 오갑니다.


나주에서 배가 왔습니다.

선배 보내준.

어른계자에 잘 쓰겠구나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때때마다 닿는 손길들, 이것도 기적입니다.


저녁답에는 달골에서 어둑하도록 일을 했습니다.

달골 창고동 지붕 치고 달골 우수통 치고.

해마다 이맘 때 하는 일이지요.

낙엽송 잎들이며 참나무 마른 잎들이 쌓여 물이 빠지지 못하여

어느 해이던가는 장마통에

창고동 벽을 타고 폭포처럼 안으로 비 쏟아지던 날 있었더랬지요.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짐작도 못하던 일.

세상일들도 그렇지 않겠는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숱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그래서 ‘혜안(慧眼)’이란 말을 하는 걸 겝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

불가에서만 하더라도

차별·망집(妄執)의 생각을 버리고 진리를 통찰하는 안식을 말하는.


<이 폐허를 응시하라>(레베카 솔닛의 <지옥에 세워진 낙원>) 몇 장 들추었습니다.

당장 읽어야 할 닥친 책도 있건만.

1905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의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어떤 지적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솔닛은 재난은 대중이 아니라 평상시에 힘을 가진 엘리트들을 패닉에 빠뜨리는데,

그것은 엘리트의 권력이 그 평상의 유지 자체에 근거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비상사태는 엘리트의 무능과 그들이 운영하는 제도의 무가치를 폭로하는 거지요.

이런 무능은 때로 두려움으로 이어져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대중은 서로를 돕고 신속하고 능력 있게 상황을 헤쳐 나가더란 말이지요.

사람들 안에 잠복해 있던 이타심과 상호부조의 마음이 깨어나

서로에게 간절한 것을 서로에게 기꺼이 내주더랍니다.

비록 재난이 지옥과 같은 고통을 줄 때에도

그 지옥 안에서 사람들은 재난공동체를 형성하고 재난유토피아를 일구어나간다는 것.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이어 읽는다면

좋은 연작이 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토록이나 사람들을, 까지 말할 것도 아니고 ‘나’를

지독하게 가라앉게 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국민', 아니 '사람'의 값어치를

누구 말마따나 그야말로 개뿔도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 아니었는지.

어떤 이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뒤 한 체육관에 설치된,

칸막이가 있던 이재민 피난소의 모습을 예로 들며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진도체육관 사진을 내밀었지요.

‘국가의 후진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태도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자 노력하는 자세, 국민을 위해 세심한 것을 준비하고 배려하는 자세에서 '국격'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민간잠수사에 대한 부족한 지원 실태도 같은 맥락아니겠느냐는.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해경 해체'를 선언한 5월 19일 이후에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수색하지 못하고 있지만,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서히 옅어가는 관심에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부가 어디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안중에 국민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똥값’도 아닌 국민인 당신은(그리고 나)

이 상실의 시간들을 어이 건너가고 계시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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