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달골 뒤란 쪽 산 한 바퀴,

발을 타지 않은 길을 헤집고.

옷이 흠뻑 젖었습니다.

산딸기가 한창 익고 있었지요.

곳곳에 보물로 가득찬 산마을입니다.


일명상에서의 일거리는 김장독 묵은지 꺼내기.

해마다 사람들이 오면 같이 거들어 하는 일입니다.

꺼내고 짜고 봉지봉지 넣고 묶고 냉장고로 옮기고.

계자에서 잘 쓰일.


은혜롭다는 말을 어디 종교에서만 쓰겠는지요.

유적(幽寂)하다...

깊숙하고 고요하고 그윽하다...

예, 그러했습니다.

궁극에는 아마도 사랑이 번져갔던 듯합니다.

때로 마음 안에 격랑이 일기도 했으나 곧 평화 안에 놓이고.

원래 규모대로였다면 훨씬 떠들썩한 계자로 꾸렸지 싶은데,

외려 다음에도 이처럼 수행에 더 집중하면 좋겠다 했습니다.

특히 묵언수행과 우거진 숲에서 길을 만들던 시간은

말할 수 없이 진하게 마음을 물들였지요.

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허락되어 감사합니다.


사람들 가고 빗방울.

못다 정리한 묵은지를 다 넣고 나자.

늘 해도 해도 닳지 않은 말, 물꼬의 절묘한 날씨!


그리고 서평 하나 퇴고하고.

                 

다음은 어른 계자(2014.5.23~25) 갈무리글이랍니다.

희중샘은 주말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고,

호열샘은 나라가 시끄러워 쉬는 날이 없어 못 온다 하고,

아리샘은 무리하게 밀고 간 일들로 결국 몸져눕고,

진주샘은 미국 잠시 갈 준비를 하고,

재홍샘은 살짜기 다녀가는 길을 택하겠다,

어른계자가 집단상담이라 하자 겁난다는 샘들 두엇은 결국 안 왔습니다.

자기를 마주하기가 혹은 자기를 드러내기가 두렵다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리하여(그리고, 라고 읽어도 더 맞겠는) 우리들 다섯.

마치 석가가 처음 연 설법의 자리에 있었다던 그 다섯처럼.

늘처럼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혹여 이해가 어렵다 싶은 심각한 게 아닌한,

최대한 원문대로 옮겼습니다.

괄해 안에 ‘*’표시가 있는 것은 옮긴이가 주(註)를 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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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지:

“어른계자” 스무살이 된 나에게 처음으로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 것이다.

수행을 중심을 돌아갔다. 학교를 처음처럼 다시 바라보는 안내모임, 뿌리보기, 실타래, 나무 밑 명상, 묵언수행. 버튼벨리 & 아킬레스건 찾기, 노동수행.

대학교를 가고나서 나도 모르는 답답함이 생겼고 요즘따라 스트레스도 되게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 명상, 수행을 하면서,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쉼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힘을 받고 편안해질 수 있었다. 또 반대로 드는 생각이 이런 수행을 해서 편해지는 것도 있는것 같다. 또 집단상담, 아직도 내가 나를 잘 모르겠고 요즘에 이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 해보고 나니까 조금 더 깊게 해보고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까지 느껴졌다. 처음에 오는길에 정말 평소처럼 익숙함을 가지고 온 물꼬였지만, 이번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 할 거리를 안고 돌아가는 것 같다.

이 생각을 해복 조만간 다시 물꼬에 올것 같다. 편안해지기도 하고 조금은 복잡해지기도 했는데 진짜 바쁘게 지내다가 온전히 나를 생각하면서 지낼 수 있던 3일이라 너무 좋았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항상 오랜만에 와도 어김없이 반겨주는 물꼬가 있어서 든든하다. 안녕 물꼬.


공연규:

오기 전에 올까 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그 고민이 무색해질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첫날 와서 ‘처음처럼’ 물꼬 공간 소개를 듣는데 익숙한 공간이지만 또 느낌이 새로웠다.

익숙해서 무뎌져가는 물꼬의 생각, 느낌을 다시금 새로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몸다루기, 한껏맘껏, 일명상을 하면서 그간 바쁜 일상에 치여 여유없던 마음에 여유도 채워주고, 단편적이고 깊이없던 생각을 넓히고 깊어지게 했던 시간을 보냈다.

뿌리보기에서는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를 찾아가 그 까닭을 묻기도 했고 그 어린 아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찾기도 했다.

한 계절을 지나 찾은 물꼬는 이번에 나에게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물꼬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의미와 가치들이 조금 더 실감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예전에는 단지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일꾼으로서 나의 마음에 더 의무감도 생기고 의욕도 생겼던 것 같다.

또, 정리되지 않은, 쫓겨가는 일상을 사는 나에게 이번 계자에서 물꼬가 정돈된 삶의 중요성도 알려주었다.

여러모로 나를 일깨워준 좋은 시간이었다.


배기표:

한국에 입국한지 일주일 채 안되어 ‘물꼬’를 방문했다. 그냥 잠시 들렀다 갈 생각이였는데 어른계자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가하게 되었다. 물꼬에 와서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진지한 활동에 잘 집중할 수 있는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생각이 깊지도 않다. 하지만 그냥 와서 ‘어떠한 것’을 좋은 사람들과 깊은 대화 또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하면 나에겐 보람이고 재미이다.

옥쌤과 식후 혹은 술을 한잔하며 나누는 얘기들, 새끼일꾼들(윤지, 연규/* “기표야, 이젠 야들 새끼 아니다. 어른이여!”)과 일상적으로 하는 농담들, 삼촌과 일하며 나누는 대화들이 내가 여기 오는 이유인 것 같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이 장소와 느낌에 대한 익숙함과 그리움? 때문에 1년에 2~3번씩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귀국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찾아온 이유도 오랜 시간동안 못본 친구를 보러온 느낌?에 왔다.

내가 매번 올때마다 어떤것을 느끼고 어떤것을 배우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물꼬와의 인연과 여기서 지낸 세월, 경험들이 ‘나’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것은 확실하다. 어떠한 배움이 있는지 모르는데 계속 찾아오는 것은 이곳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인거 같다.

이번 ‘어른계자’ 역시 너무 편안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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