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원하게 젖다-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있는 산골 초여름 밤 >


다시 6월입니다.

참으로 흥건했던, 산마을 초여름 한 때의 저녁을 기억하실지요.

바다와 섬의 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가객 현승엽 선생님과 함께

산마을에서 시와 음악의 밤을 또 풀어놓게 되었습니다.

시가 있어 세상 건너기 수월하지 않은지요.

시인이 있는 시절을 살아서 고맙습니다.



예, 그렇게 6월 빈들모임 사흘 가운데

이렇게 하룻저녁을 마련하였습니다.

뭐 마지막 문장부터 쓰자면,

사랑하는 벗 점주샘이 다 한 행사입니다.

사람 모이면 먹는 일이 젤루 중요하고 크니까.

그가 종일 쉰이 넘어 되는 사람들의 밥상을 준비하였지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침, 방마다 자리끼 마련해두고,

수건도 챙겨두고,

표도 나지 않는 분주한 일들로 왔다가다 하고나니

해가 중천.

점심 버스부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교무실에서는 아리샘과 휘령샘과 서현샘과 기락샘, 그리고 첫걸음한 혜정샘이

고래방을 오가며 행사 준비로 종종거렸습니다.

빠진 곳들 청소도 하고,

안내지도 만들고 맞이책상과 고래방 행사장 정비도 하고,

성산포를 그린 지역화가 두 분의 작품도 걸고...


곡차와 과일과 고기와 먹을 것들을 앞세우고

사람들이 일찌감치들 들어오고 있습니다.

양재연샘이며 물꼬 살림을 살펴주고 헤아려주시는 어르신들...

서울에서 상찬샘 대진샘 두병샘 성군샘이 타고 오는 차편에

영동역에서 이생진 선생님과 현승엽샘 합류,

광조샘네는 여덟 식구가 들어와 민주지산 올랐다 내려오고,

대전에서 주훈샘도 들어오고,

때마다 사진과 영상을 전담해주는 병선샘과 성순샘이 남양주에서 오시는 걸음에

학산의 진수샘과 지난해 동행했던 사진샘들과 연극샘들도 동행,

김천에서 속리산에서 울산에서 산오름 도반들이 건너오고,

영동문인협회와 감고을문학동아리 분들도 들어오시고.

멀리 백양산에서 차 덖으시는 모리샘,

30년 유기농사꾼인 이웃마을의 조정환샘과 현옥샘과

대를 잇는 농사꾼 젊은 친구 민재와 그의 친구,

잠시 얼굴이라도 비추겠다고 건너온 귀농자모임 회장 조성보님 부부...

마흔이라고 마감을 하고도,

못 온 사람 있으니 더 오는 이도 있겠다 해도 마흔이더니,

무려 쉰이 넘는 이들이 모였더랬네요.

그럼요, 그럼요,

이생진 선생님이 섬과 바다를 불러 이 먼 산골까지 온 걸음에

어깨 겯는 일이 얼마나 귀할지요.


밥상을 물리고 저녁이 내리는 마당에서 노닐다가

7시 고래방으로 들어갑니다.

1929년 세상에 나셔서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근현대사를 지나

우리 앞에 열정을 토하고 계신 이생진 선생님은

여전히 젊으십니다.

달마다 넷째 주 쇠날에 있는 서울 인사동 시낭송회를

전날 늦도록 함께하고 오셨으니

곤함이 가셔지지 않으셨을 테건만...

선생님의 손은 눈에 띄게 더 떨리고 계신데,

아, 그래도 더 꼿꼿해지신...

이어진 사람들의 소개도 몇 년생인가가 서두가 되었더랬지요.

그건 그 사람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졌는가 말해주는 거라는

선생님 말씀 좇아.

그리고,

끝까지 살아야 한다,

끝까지 살아 말해야 한다,

강렬하게 다가왔던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서해에 가라앉은 배도 언급하셨지요.

누구보다 시인은 근원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아니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일 수밖에 없을 것.

왜냐하면 가장 민감한 영혼들이니까요.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들...


선생님 시강 뒤에 사람들도 시를 낭송하고

함께 한 자리의 의미를 새겨주었습니다.

모리샘은 나오셔서 제주4.3 을 돌아보며

‘잠들지 않는 남도’를 열창하셨고,

무슨 의원이고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이를 본 적이 없던 우리들,

그닥 시에 관심 있는 분도 아닌데 박우양 도의원님 끝까지 앉아

우리를 감동케도 했으며,

30년 유기농사꾼 조정환 샘처럼

이생진 선생님의 시편에 대한 생생한 감정을 덧붙여 들려주는 이들도 여럿.


이 현란한 시대에도 시를 쓰고 시를 읽고 노래를 부릅니다.

생각보다 고전적인 사람의 삶이려니.

이생진 선생님,

선생님 계셔서 더 풍요로운 우리들의 삶이어요!


고래방을 나오면서 산마을을 먼저 나간 분들도 계셨지만

가마솥방이 넘치도록 뒤풀이가 이어졌고,

그리고 밤새도록

가마솥방에서, 뒤란 가마솥 앞에서, 마당 평상 위에서 밤을 밝힌 사람들,

곡차 동이 날 때까지.

아, 모두 외로웠던 겁니다,

모두 시인이었던 겁니다,

모두 뜨겁고 싶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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