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29.해날. 오후 몇 방울 비

조회 수 680 추천 수 0 2014.07.16 22:46:25


詩원하게 젖었다가 새벽빛에도 젖다가

해가 떠오를 때야 고요해진 학교.

속리산에서 오신 소장님,

이른 아침부터 평상이며 널부러진 것들을 치우고 계셨습니다.

“선생들이 내려오면 다 할 건데...”

“보기 싫잖아요...”

사람들 모이고 술 푸고 다음날 아침이 더딜 때

당신이 꼭 먼저 일어나 그리하고 계신 걸 여러 번 봤더랬습니다.

‘어른의 자리’를 생각했지요.


아침밥상에 국밥 그릇이 무려 서른입디다,

간밤, 어제 시가 있는 밤을 지나고 간 사람도 많았건만.

그러고 보니 어제 쉰이 넘었더란 말이지요.

시를 읽고 시를 들으러 그리 모였더란 말이지요.

아직도 시를 읽고 듣더란 말이지요.

사는 일이 다사와지는.


설렁거리는 바람도 있고 날도 좋고

사람들은 밍기적거리며 대해리를 더 누리다가

차를 마시고 또 찾아내온 곡차를 마시고...

이생진 선생님은 역에서 화장지를 잔뜩 실어 보내오셨습니다.

산골 살림을 그리 살펴주시는.

아니, 가는 길 우리가 선생님 가방을 채워 드려도 모자랄 것을...

그찮아도 선생님 차표는 광조형님이 샀습니다.

“선생님 거마비라도 드려야 안 되나...”

그러며 봉투 챙겨주셨던 그니.

어제 낭송회에 사람들이 후원을 하기도.

다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올해도 강연료도 없이,

승엽샘 역시 출연료도 없이

그렇게 이 먼 산골짝 다녀가셨습니다.

이럴 때 가끔 좀 부자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지요, 저요.


이제 좀 곤함을 풀어볼까,

그런데 바로 이어 들어온 젊은 사회적 기업 친구들,

몇 와서 좌담이 있었습니다.

물론 물꼬 투어(‘논두렁 걷기’라 이름 할까요...)부터, 달골까지.

“무엇이나 재미가 있어야 오래하지.”

오늘 주제는 그쯤.

네 시간여 머물고 돌아갔지요.


드디어 모두 떠나간 늦은 오후,

벗 점주랑 남아

비로소 마당가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리버풀 FC를 잉글랜드 최고의, 그리고 유럽 최고의 명문이 되는데 초석을 다진

1960년대 리버풀 FC 감독 빌 생클리,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몹시 못마땅하다.

축구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순간 물꼬를 생각합니다.

물꼬는 때로 생사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람들이 다녀가고 나서 고요해진 마당을 보며 매번 그리 생각한다지요.

그 빌 생클리,

‘나는 사회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이를 다 같이 나누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축구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겠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혹은 극히 제한적인 시기에만 그런가요?

아니요,

물꼬에 오면 거의 대개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그러고 있다는...


허허허, 그리고,

20년 전에 발표된 김영현의 <남해엽서>를 떠올립니다요,

詩원하게 젖었던 간밤을 따랐거나,

밤샌 취기의 뒤끝이었거나.


‘술 깨는 오후’


정 때문에 마신 한잔 술이/ 마침내 나를 잡아먹고//

온갖 욕으로 온갖 인간을 차례로 씹고/ 몽롱한 욕정으로 불타기도 하다가//

한편/ 호연지기를 발휘하여/ 대책 없이 약속도 하고 감격도 하다가//

마침내 침몰해버린,/ 다음날/ 오후.//


나는 갑자기/ 수도사처럼 경건해진다.//


조촐하게 몸을 가누고/ 라면국물로 겸손하게 속을 달래며/

자기가 저질렀던 엄청난 말의 실수와/ 담배연기에 싸인 터무니없던 감격과//

되돌이킬 수 없는 치졸했던 행위를 곱씹으며/

세상과 자기에게/ 또/ 용서를 구한다.//


햇빛과 바람의 파동에도/ 가늘게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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