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습니다.


마늘을 거두고 감자를 수확하고 나섰던 길이었습니다,

6월 빈들모임 ‘詩원하게 젖다-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있는 산골 초여름 밤’도 막 끝내고.

사람 난 자리가 사람 사이에서만 큰 게 아닌 모양입니다.

사람 기운이 참말 독하다싶은.

그 사이 잡풀은 얼마나 훌훌 팔을 벌렸을 것인가요.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떠났던

젊은(그래요, 나이가 들 수 없는) 시인 기형도의 마지막 시 ‘빈집’을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


잃은 사랑이 곧 빈집일 것이라.


달골은 비어있었으며,

학교에는 그 사이 가마솥방 바닥공사를 했습니다.

오래된 마루가 꿀렁거려 여러 차례 나무를 덧대고 갈다

그예 시멘트 바닥으로 바꾸게 된 것이지요.

교육청에서 진행해준 일이었습니다.

7월 섬모임이 서울에서 있었고,

밭에선 고구마와 땅콩과 옥수수와 고추와 가지와 들깨가

여름 산마을을 지켰더랍니다.


비워두었으니 쌓인 일들 더미가 더하겠고,

그거 아니어도 돌아서면 일 많은 산골살이,

하지 않은 일을 보자면 한이 없을 것을

그래도 한 것을 보며 하나씩 하나씩 또 일을 해나가겠지요.

곧 계자, ‘자유학교도들의 부흥회’라고까지 불리는!


다녀온 일요?

지금 중학교에는 ‘자유학기제’가 진행 중입니다.

2013년 42개 연구학교 운영을 시작으로

2014, 2015년은 희망학교가(2014학년도 현재 800 곳),

2016년에는 모든 중학교에서 하게 될 예정;

‘한 학기(대개 2학년 1학기)동안 지필고사 같은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토론과 실습 등 직접 참여하는 수업을 받고 꿈과 끼를 찾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 일에 물꼬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일정 정도 하게 되었지요.

최근 몇 해 제도교육을 지원하고 보완하는 역이 큰 물꼬였습니다.

그야말로 선진(물꼬에서 적응이 참 안되는 낱말?) 사례의 하나인

아일랜드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를 두루 돌아보고 온 것.

- Department of Education and Skills, Ireland; 아일랜드 교육숙련부

- Forfás; 기업, 교역, 과학, 기술 및 혁신에 관한 정책 자문 기구

- Transition Year Support Service; 전환학년제 지원 서비스


결국, 교사가 어떤 교육관과 가치관으로 접근하는가가 가장 중요하겠다는,

멀리 가지 않았어도 알 너무나 당연한 생각에 이르렀더랬네요.

오래전 세 돌배기 아이 손을 붙잡고 나가

세 해 동안 일곱 개 나라를 돈 적이 있습니다,

공동체와 새로운 학교들을 찾아.

그때도 돌아와 같은 생각을 했던 듯.

그 모든 것이 물꼬에 이미 있더라는.

마침내 찾아 나선 파랑새가 집에 있더라는 뭐 그런.

언제나 물꼬가 그러했듯 또 기꺼이 잘 쓰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열흘 안으로 바짝 일을 모아 끝내고,

찬찬이 수도 더블린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아일랜드 서쪽 골웨이와 슬라이고의 길 호수 이니스프리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예이츠의 ‘불벤 산 기슭에서’를 읊조리며 불벤을 향해 걷기도 했지요.

미당은 산수유나무꽃에 비밀을 말했다던가요.

살아오며 만났던 가장 큰 환희를 불벤 산에 묻어두고 나오기도 했더랍니다.


한 주는 바르셀로나를 건너가 휴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프랑코에 맞서 가장 오래 저항했던 카탈루냐의 심장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희망>과 <카탈루냐 찬가>,

헤밍웨이와 말로와 조지 오웰과 노먼 베쑨, 까뮈와 시몬느 베이유,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로버트 카파의 사진과 켄로치의 영화를 생각했지요.

FC 바르셀로나(바르샤)의 홈구장 캄프 누부터 찾았고,

파밀리아 성당이며 가우디의 세계를 더듬었으며,

에스꼴라뇨 소년합창단이 있는 몬세라트산 중턱 몬세라트 수도원에선

‘순례자의 길’을 아이랑 걸었습니다.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가 보고서 갈무리를 한 뒤 서울로 귀환.


그리고 한국.

‘지금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일념으로 추구해온 것이 결국은 공허한 물질적 안락이었다는 데

핵심적 비극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노교수의 글을 곱씹습니다,

‘우리 삶이 안락하기는 커녕’ ‘인간다운 삶의 근본기반’마저 망실했음을

내면적으로 이어져있는 4대강과 세월호를 통해 읽고 있는.


4대강과 세월호가 그러하고 가자 지구에 포탄이 떨어지고

그렇게 너나없이 어른들의 삶은 천근같은 무게들이 있을 것이나

그래도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는 뭔가를 해야겠지요.

아일랜드행이 좋은 움직임 하나를 만들 수 있기를.


비운 동안 물꼬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엎드립니다.

모다 고맙습니다!


음... 그리고,

늘 밖을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물꼬’가 아니라면 굳이 이 나라를 또 오겠는가(올 수밖에 없으면서),

그런 생각이 심중에 남기도 하다는 고백은

순전히 가라앉은 날씨 탓인 걸로 해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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