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6.물날. 비

조회 수 673 추천 수 0 2014.08.10 10:31:19


계자를 앞두고 샘들이 미리 들어와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95라인’(저들이 그리 부르데요)들이

(오랜 세월 물꼬의 계자 아이들이었고, 새끼일꾼이었던),

드디어 품앗이일꾼이 되어 그들 주축으로 계자를 한다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리 준비하는.

연규샘, 윤지샘, 수현샘.(아, 수현샘은 하루 더디 오게 되었다네요.)


저들 먹을거리를 미리 식단과 함께 재료들을 보내놓고,

이번 계자에 들어오기로 했던 갈음샘도 힘을 보태서,

지내는 동안 저들 먹을 건 저들이 감당하겠다 하고 그리합니다.

우리는 자주 ‘오늘 우리는 염치가 있었는가’를 물어왔고,

저들이 지금 그 염치를 차리고 있는 거지요.


오늘은 샘들이 아이들이 덮을 이불들을 거풍했습니다.

장마의 습이 어디라고 닿지 않았을라구요.

그런데 날이 꾸덕하니

아쉬운 대로 비닐하우스인 빨래방에 널었더랍니다.

때마다 밥을 챙겨먹는 일도 작은 일 아니었을 테지요.

비어있던 시간들의 공간들도 점검하고,

물꼬수영장도 들러 보았더라나요.

풀 무성하여 손을 좀 봐야겠더라는.

지난 6월 이주욱 교수님과 충남대 샘들이 한번 정리해주었으나

사람 발이 닿지 않는 곳의 잡풀의 세가 이만저만만 할까요.

또, 흙집 여자 씻는 곳에는 한 귀퉁이 개미길이 생겼더랍니다.

조처가 있어야겠더란 전갈.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젊은 선생들을 보며,

또 곧 온다 안부가 들어온 샘들까지,

물꼬 18년차 15년차 10년차 8년차 7년차들이란 말이지요,

무엇이 저들을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공간으로 모이게 하는 걸까,

무엇이 저리 좋고 무엇이 저리 절절할까,

그런데, 오늘, 저야말로 이 공간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맙던지.

연애만 해도 서로를 살린다 싶을 때 할 만하지 않던가요(흐흐),

무슨 일인들 그렇지 않을까만.

우리 서로 그러고 있습디다.


교무실에는 쌓여있는, 정리되지 않은 책이며 서류들이며 우편물이며...

그러나 이 산더미 같은 일들에 짓눌리지 않고

‘되는대로 하지, 뭐.’, 그럴 수 있는 것도 물꼬에서 배웠고

(하기야, 왜냐하면, 별수도 없으니까),

할 것보다 한 것을 더 많이 보는 것 역시 물꼬가 가르쳐주었으며,

선한 일을 함께 하는 즐거움도 물꼬에서 배웠고,

기꺼이 내는 마음도, 나를 쓰는 마음도

모다 물꼬에서 배웠더랬지요, 아마.

이 공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다시 생각하는.

저이들도 그렇겠구나,

18년 세월의 아리샘도,

8년이 되는(하지만 밀도면에서 10년도 훨 넘을, 계자를 빠진 적이 없으니) 희중샘도,

15년의 기표샘도,

10년이 넘어가는 수현샘도 연규샘도,

7년의 윤지샘도,

무에 저리도 좋고 무에 저리도 고마울까 싶더니.

예, 곧 계자입니다, 우리들의 부흥회.

이래서도 계자를 건너뛸 수가 없는 거지요

(아, 이번엔 아일랜드 일정으로 여름 계자 너무 더뎌

아무래도 진행할 수 없잖겠느냐는 의견들이 있었던).


‘옥샘이 안 계시는 물꼬는 뭔가 조금 거칠어 보이기도 하고...’

윤지샘이 하루 정리글에 그리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래, 있어야지, 큰 바위처럼, 커다란 고목처럼!’

제 뜨거움이, 삶에 대한 제 사랑이

더 넓어지고 깊어져

우리 아이들에게 더 멀리 크게 번져가기를.


그리고,

잠시 숨 돌릴 적 손에 쥔 책에서

율곡의 시를 하나 읽었습니다.


     약초 캐다가 길을 잃었네

     봉우리마다 단풍이 물든 산

     중은 말없이 물 길어 돌아가고

     숲 자락 저만큼 차 달이는 연기


길을 잃으니 풍경이 보이더랍니다.

잃으니 얻더랍니다.

잃으니 더한 걸 얻기도 하더랍니다.

허니 잃는 게 잃는 게 아닐 것.

우리들이 오늘 잃은 것들이 있다면

그건 잃은 것이 아닐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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