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8.쇠날. 갬

조회 수 734 추천 수 0 2014.08.10 10:53:54


옥타비오 파스의 시 하나를 읽는 새벽입니다.


     차갑고 날랜 손이

     한 겹 한 겹

     어둠의 안대를 벗긴다

     눈을 뜬다

     아직

     난 살아 있다

     아직 생생한 상처

     한가운데


상처 아직 생생하여도 나 아직 살아있노라...


날 흐립니다.

가끔 풋감이 떨어지며 지붕에 부딪는 소리에 흠칫 놀라고는 합니다.

아일랜드에서 달고 온 목감기가 꼬리가 길군요.

오늘부터 교무실에서!

샘들도 아이들이 자기 전 모둠방에서 자보는.

이럴 땐 정말 야전(野戰)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평소 물꼬의 삶도 다르지 않거늘 새삼.


희중샘은 일터로 복귀했다 계자에 다시 합류하러 올 테고,

연규샘과 윤지샘을 시작으로 어제 수현샘 합류,

오늘은 휘령샘이 더해졌습니다.

휘령샘은 같이 계자 장을 보았지요.

오는 길에는 이웃에서 복숭아도 얻고,

유기농가 광평농장의 조정환샘과 현옥샘이 실어준 사과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이리 함께 하는지,

하늘이며 바람이며 별이며 이슬이며.

마당(운동장을 더러 그리 말함) 두어 번 왔다 갔다 하면 하루해가 진다,

우리는 이곳 생활을 그리 말하고는 합니다.

돌아서니 벌써 시간은 오후로 넘어가있네요.

종일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어른들이 와서 지내도 드문 일인데

(하하, 이들도 이제 어른입니다만.)

때마다 해주는 밥을 먹었더란 말이지요.

초등 때 계자를 와서 새끼일꾼 거쳐 품앗이 일꾼에 이르더라도

여전히 ‘애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점심은 연규샘의 스파게티가 교무실로 배달이 되어 왔지요,

계속 통화 중이고 있으니

“이런 호사를 다 누리는구나.”

저녁까지도 메밀소바로.

부모님들과 통화가 기니.

(아이들 적어도 어느 때보다 걱정이 많습니다.

물론 처음 아이들을 보내는 가정들이지요.

어수선한 시절,

이렇게만 말하니 이 사회가 겪었던 일련의 일을 예의 없이 너무 뭉뚱거려버린다 싶지만,

말 그대로 아이들을 멀리 보내는 마음들이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려나요.

다른 집도 통화하셔야지요, 그러면서도 얘기는 자꾸 길어지는데

그 마음이 또 헤아려져 자잘한 얘기들을 더 얹고.

그렇게라도 우리들이 보낼 시간에 마음이 좀 놓인다면야...)

지난겨울 계자 전 한 주를 일찍들 들어왔을 때

삼시 세 때 밥만 해먹어도 큰 도움이랬더니,

정말 그리하더니만,

이번에는 아주 식단과 재료들을 다 싸 짊어지고 온 샘들입니다.

우리는 자주 염치를 아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는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주어 기특한!

저들 먹을 건 물꼬에 기대지 않겠단 말이지요.

물꼬 살림을 헤아린.


한밤, 논두렁 상찬샘의 등장,

이 여름을 위한 다양한 크기의 선풍기를 여섯 대나 싣고.

덕분에 앉아 숨을 돌린.

흐린 날 아니어도 입추 지나며 아주 선선해진 산골 밤,

좋은 사람들과 처마 밑에 앉아 도란거리는 시간이 고마웠습니다.

정토는 늘 그렇게 우리 안에 있을지니.


참, 오늘 뜻밖의 연락 하나.

물꼬의 계자에는, 그것 아니어도 모든 교육일정에는

함께 하는 값을 정해 놓아도 형편대로 아이들이 옵니다.

적어도 참가비가 없어서 못 오는 아이는 없게 하자, 뭐 그래왔던.

그런데, 어느 해이던가 그렇게 아이를 보냈던 어머니,

그걸 잊지 않고 형편 나아지자 여기 살림을 보태오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주실 것 다주고도 정말정말 고맙다는 인사도 함께 보내신.

하여 또 고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 혹은 잃지 않으면

안 좋을 관계가 없을...

그 마음을 되짚을 수 있다면

오늘 갈라서는 너와 나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등 돌린 너와 내가 적어도 원수는 아니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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