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전 미리 들어와 준비하고 있는 샘들의 아침모임.

휘령샘과 ‘95라인’들(저들끼리 그리 부른다고 합디다; 수현샘 윤지샘 연규샘)과 소사아저씨.

개수대는 어떻게 청소가 되어야 하는가,

걸레질의 수위는 어느 정도까지여야 하는가,

두 장소에서 동영상처럼 직접 몸으로 시작과 끝을 보이기.

모든 물건은 앞이 있으며 뒤가 있고, 안이 있으면 바깥이 있다,

뒤를 보고 안을 볼 것.

그리고 후미진 곳이야말로 청소의 핵심!

그렇게 눈을 열면

들어오는 샘들한테 먼저 지냈던 샘들이 또 좋은 안내가 될 테지요.


가벼운 아침밥상 뒤

각자의 위치를 잡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교무실에서는 미리모임 준비와 글집 준비.

구석구석 고치고 다듬고 손댈, 계자 전에 해야 할 일들 챙기고.

부엌에선 계자 체제를 위해 냉장고부터 다 비워내고

점심 밥상을 차리고.

저녁 7시가 미리모임이라지만 정오버스로 샘들이 이미 들어옵니다.

처음 온 걸음이 아니어도 처음처럼 다시 학교 한 바퀴를 돌지요.

공간공간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떤 의미로 하고 있는가 되짚기.

그리고 청소가 시작됩니다.

기꺼이 나를 쓰기!

그렇게 또한 깊게 배우리니.

그것이 또 아이들을 맞을 준비이니.

땀 뻘뻘 흘린 뒤 계곡에도 다녀오지요



일꾼 ‘미리모임’.

서른도 안 되는 아이들인데 샘들 스물둘, 대개 그렇듯

(1:2, 1:1.5, 겨울 어떤 땐 1:1, 심지어는 교사가 많을 때도, 교사 연수 삼아 할 땐).

최근엔 샘들이 먼저 자리가 차고 아이들이 더딘.

이번 계자에도 샘들이 잘렸습니다, 여럿.

(도대체 무엇이 있어 이들은 이 불편한 산골까지 와서 이 고생들을 한답니까...)

물꼬 18년차 아리샘에서부터 초등 때 와서 대학에 이르기도 하고;

아리샘과 수현샘 연규샘 윤지샘,

초등 3년부터 새끼일꾼 거쳐

품앗이일꾼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머잖아 대학을 졸업할 15년차 기표샘,

2007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계자도 빠져본 적 없는,

하여 그 질감은 10년도 넘어 되는 희중샘,

그리고 언니가 오고 동생이 옵니다.

예비유아교사 휘향샘은 초등특수교사 휘령샘을 따라 그리 왔습니다.

학기 중에는 충남대 사대에서, 방학 중에는 한국교원대에서 큰 힘이 되지요.

“선배들이 잘하니 후배들이 오기 수월하네.”

이번에도 교원대에서 희정샘 민우샘 지연샘이 자리했지요.

물꼬 이야기 딱지 앉을 만큼 듣다 드디어 첫걸음한 음악가 갈음샘도.


격랑의 8학년을 보내고,

북한이 내려오지 못하는 게 그들 때문이라는 무서운 중2,

반인반수라고도 하는,

9학년으로 이번 계자 새끼일꾼 형님들 대표 가온,

아이였다 이제 새끼일꾼으로 진입하는 자누,

초등 4년 때 물꼬의 어른들을 존경한다며 자기도 새끼일꾼에 이르고 품앗이에 이른다 하더니

드디어 그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태희 도영 현지 훈정, 더하여 새 얼굴 진성

(훈정의 어머니는 집안에서 노는 문구류를 죄 챙겨 묶어 보내오셨습니다.

귀찮아서도 쉽지 않을 것을, 고맙습니다.

언젠가도 그러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얼마나 많은 마음과 손발이 이곳에 이르는지요.)

그리하여 스물 둘.

오늘은 계자에는 합류하지 못해도 인사를 온

10학년 현진이도 하룻밤 같이 움직였지요.

일곱 살 때부터 왔던 아이,

짬을 못 낼 땐 ‘불효자’를 운운하는 아들 같은 우리 아이들.


마음 단도리를 하고, 움직임을 나누고, 아이들 맞을 막바지 채비가 구석구석,

아이들과 나눌 춤도 미리 익히고

(이게 말이지요, 몸이 되는 젊은 것들은 고래방에서 춤을 추고,

노인네들은 교무실에서 글집을 만들라는, 하하),

새벽 4시에야 불이 꺼진 교무실.


“음식 잘 못하는데...”

밥바라지 임미숙 엄마는 아들 셋이 키웠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지요.

밥바라지가 계자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

잘하는 것보다 중뿔나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고,

맛난 것보다 따뜻한 마음이 더 필요한 자리.

큰 아들 현곤을 시작으로 작은 아들 현우가 다녀갔고

그리고 지금 셋째가 와 있습니다, 지난 겨울 계자에 이어.

네 살 때 빈들모임에 처음 왔던 승욱이가 아홉 살.

그리고 집에서조차 부엌일을 해보지 않았다던 휘령샘이

기꺼이 밥바라지 뒷배가 되기로 했지요.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는 곳, 우리는 물꼬를 사랑하노니.

오랜 연들이 만들어내는 연대의 감동이

또 우리를 둘러쌀지니.


참, 여기 사는 10학년 류옥하다, 부엌의 수도꼭지를 바꿔주었습니다.

작은 수술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그 와중에 살림을 살펴주고 갑니다.

그 아이 오랜 시간 이 산골에서 낡은 살림을 그리 돌봐왔습니다.

새삼 고마운.


영화 <명량> 소식을 들으며 <난중일기>를 생각했습니다, 뭐 당연히.

마침 선배가 보내준 책이 책상에 놓여있었지요.

날마다 당면한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장수의 일지.

잠시 숨을 돌리며 들춰본 그의 글은

짧았고 슬펐고 미치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저녁 무렵에 동풍이 잠들고 날이 흐렸다. 부하 아무개가 거듭 군율을 범하기로 베었다.’

<칼의 노래>의 김훈은 장수의 문장을 분명 알고 썼을 것입니다.

김훈을 지나 장수의 문장에 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런 아름다운 문장처럼 아이들과 보낼 시간도 그러하길 꿈꾸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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