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들 해건지기.

오늘쯤은 누적된 피로가 만만찮을 것입니다.

‘오늘은 정말 일어나기가 힘들었는데 백배를 하고나니 잠이 조금 깨는듯했다.’(휘향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그래도 우리들이 간절히 엎드리는 시간이

고스란히 이 계자에 모인 아이들을 향한 기도가 될 터.

그런 준비도 없이 아이들 앞에 서려해서야 되겠는지요.

게다 함께 하니 할 만하다마다요, 그걸 혼자 하려면 어디 쉬울라구요.

 

아이들 해건지기.

첫째마당 요가, 둘째마당 명상, 그리고 오늘의 셋째마당은 마을돌기.

학교 앞뒤로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이 감싸고 있습니다.

나흗날은 물꼬 부속건물이 있는 달골까지 가서 물꼬의 꿈을 듣는 시간도 있으나

오늘은 뒤란 쪽 댓마를 걸으며 찬찬히 흐린 아침을 즐기기.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오늘은 다른 날과 좀 다른 아침 밥상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별미로 빵을 먹은 아침이었습니다.

오늘 밥상머리무대엔 새끼일꾼 도영과 가온의 노래가 있었지요.

어제 한데모임에서 승욱이가 한 제안.

“한 번 더!"

그렇게 노래 하나를 더 부르고.

아, 따뜻했습니다.

 

손풀기.

눈에 보이는 대로 크게, 그리고 침묵 속에.

교사에게는 그림을 통해 아이들을 엿볼 수 있는 시간.

먼저 계자를 다녀간 이들에 이어 쓰는 스케치북입니다.

허니 앞 쪽에는 이전의 내가, 혹은 이전의 다른 이들이 있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 그걸 들추던 아이들,

지금 새끼일꾼인 현지도 자누도 거기 그림이 남아있다고 재밌어라 했습니다.

면면히 그리 흐르는 시간들...

‘손풀기 시간은 참 재밌다. 물꼬의 프로그램 중 아이들은 가장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물꼬의 프로그램 중 재밌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민우샘)

동희는 '주위가 일찌감치 다 그리고 속닥거리고 딴짓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지우고 그리고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반짝 일꾼한데모임(임시교사회의).

만두를 어떻게 할까로.

일사천리라 서로 손뼉맞장구를 치게 만든.

교사의 질이 교육의 질.

교사들의 호흡이 학교의 질.

기꺼이 내는 마음이라면 족하고 또 족할 일.

샘들의 분위기는 그대로 계자의 전체 분위기가 되고는 합니다.

마음 모으기 퍽 수월한 계자이니

아이들 역시 마음 좋지 않을지.

 

보글보글 2.

만두를 빚고, 굽고 찌고 삶고, 먹고 나누고.

그러다 한순간은 밀가루가 풀풀풀 날리고.

요리와 놀이가 어우러진.

 

흥겨운 만두: 다은 유지 율 태우 건호 승민

과정에 과정에 비는 손 없이 모두 움직인 아이들이었습니다,

의논하고, 부엌으로 장을 보러가고, 빚고, 굽고.

유지와 지연샘이 기름 몇 방울 튀어 깜짝 놀란 일은

모두를 조심스럽게 만든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 유지가 샘들한테 그리 살가울 수가 없더랬네요.

정 많은 태우는 샘들 입에다 만두를 넣어주기도 하고.

 

즐거운 만두: 유진 세린 윤호 규민

만두피 만들기도 칼국수 먹는 일도 속을 가지고 볶음밥을 만드는 것도

죽 한길로 내달았다 합니다.

말없어 보이던 세린이는 의외로 활달하더라고,

특히 샘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놓고 나니(오케스트라) 수다를 쏟는.

아이들은 활동마다 제 모습들을 그리 내보이고 있지요.

유진이랑 윤호는 볶음밥을 안 먹겠다고 해놓고

막상 만들어놓으니까 제일 잘 먹었더라나요.

 

유쾌한 만두: 현수 동희 찬희 현욱 준서

자누 형님이 이 방에 있으니까 방이름을 다르게 하자며 ‘자누만두’로.

엊그제의 '자누국수' 후속타인 게지요.

찬희랑 현욱이는 칼질 좀 합디다.

다른 아이들도 형들을 조금씩 도우며 도마일을 끝내고

끝말잇기를 하며 만두가 구워지기를 기다렸다고.

우리의 현수의 수작질멘트도(* 헤헤) 있었다지요.

“겨울에도 오자. 이 정도 돈 낼 만해. 이렇게 예쁜샘이 있잖아.”

 

명랑한 만두:

‘명량대첩 만두’로 이름을 바꾼 호연 정훈 선우 승욱 율리 윤서 여원이.

저학년 여자아이들 율리 윤서 여원의 엄청난 의욕은

속없는 만두를 속출하게 했다고,

오빠들의 응원을 받으며 말이지요.

“율리는 만두를 그렇게 만드는구나. 잘하네.”

역시 오빠들은 여동생을 좋아하는 고금의 진리.

 

그리고 ‘빛나는 보자기’: 윤상 우준

만두피이겠지요.

흥이, 그것도 굉장히, 넘치며 시작하였으나

공장가동에 문제가 생기고 공급에 차질을 빚고 독촉이 들어오고 혼란스러워지고...

그렇지만 그 마지막은 남은 반죽으로 만든 칼국수.

하여 빛나는 칼국수가 된.

“옥샘이 만두하는 날에 꼭 만들어주셨잖아요!”

보고 배웠다는 수현샘.

“야, 이런 날이 다 있구나, 내가 칼국수를 받아먹어보는 날이!”

우리 잔치잔치처럼 했던 지난 시간들이 되살아나

오늘 우리 앞으로 걸어왔더랬지요.

 

그 시간 달골로 사람 넷 올라갔습니다.

일상의 일도 함께 돌아가는 물꼬.

캠프장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 우리 삶터에서 하는 계자.

아일랜드 교육연수를 다녀오느라 달포를 비운 달골 무성한 풀들을

사람 손이 있을 때 정리를 좀 하기로.

기표샘 있을 적 예취기 한번 돌리겠다 하기.

가온 형님과 도영 형님이랑.

마치 시골에 사는 노모집에 도시에서 온 아들들이 풀 단도리 해주는 것 같은.

모다 초등 아이였을 때 만났던 연들입니다.

참말 아들들이지요.

기표샘은 품앗이일꾼 큰 축이고 있고,

두 형님은 새끼일꾼 중심이 되어주는 이들.

같이 일하고 사랑하고 어깨 겯는 일이 주는 감동에 말이 달리는 거지요.

 

청량한 비입니다.

훤한데 빗줄기 굵어지는.

비는 잎에 닿고 지붕에 닿고 땅에 닿고

전선에서 또르르 구르고 있습니다.

좋군요, 비가 내리는 데도.

아이들도 학교 구석구석에서 저리 웃고 있네요.

 

연극놀이.

같은 제목의 옛이야기를 모둠마다 만들어 보여주거나,

한 제목의 이야기를 장면으로 잘라 각 모둠이 그 장면을 만들어

전체로 이어 붙여 한 가지 이야기로 만들거나,

아니면 주제를 주고, 가령 자유학교라거나, 하기도.

그런데, 이번엔 그야말로 자유롭게 해보기로 합니다.

때로 틀이 좀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이러면 위험부담이 또 좀 있겠지요.

두 패로 나뉘어 연극 두 편이 준비 되는 동안

이불방에서는 분장이, 교무실 곳간 쪽에서는 소품들이

손 빠르게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샘들의 살신성인이 두드러지는 시간,

새끼일꾼 현지도 볼에만 약하게 초록을 바르려다 온 얼굴에 바르고,

해설자로 나선 도영과 배우 자누 진성 가온 훈정 도영 태희.

교무실에서 들으니 또 그런 축제가 없는, 웃고 떠들고 넘어지고.

그런데, 무대에 올라간 극은 다른 때에 견주면 완성도가 좀 떨어졌지요.

하지만 연극놀이의 핵심은 사실 그 과정의 일이 더 큰 공부.

조율하고, 일의 앞과 뒤를 재보고, 움직이고...

결과로도 최상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데, 처음 온 샘들은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연극에 놀라워라 합니다.

다른 때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주어졌단 기존 샘들의 증언에 더 크게 벌어진 입.

아, 객석에는 백세 명의 관객이 왔군요.

일당 백 밥바라지 엄마, 일당 이 소사아저씨, 일당 일 옥영경.

저기, 선글라스 끼고 비서 둘 대동한 준서의 인물이 살더라고들.

참, 승욱이가 분장을 끝내자 곁에서 율리,

“귀엽다.”

“그런 말 처음 들어본다.”

승욱의 대답.

음향과 조명 아래 더 잘난 우리 새끼들.

 

그런데, 무대에 올라간 두 개의 극 말고

또 하나의 공연이 올려졌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샘들의 뽐내기.

대학가나 거리에서 문화선봉대라고 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춤 하나,

샘들이 미리모임에서 늦은 밤 준비를 했더란 말이지요.

“이야!”

감탄 연발들.

하여 우리들의 오늘 연극은 약간의 모자란 감동에서

최상의 환호로 갔더라는!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갑자기 몰려오며 이름을 부릅니다.

“옥샘, 옥샘, 이거 옥샘 쓰신 거 맞아요?”

책방 구석에서 10년도 더 된 시집 한 권을 찾아낸 아이들.

그런 시절도 있었군요.

사랑시를 주로 내는 한 출판사의 계약 제안을 받고

시를 팔아서도 돈이 되네, 그것도 이름 없는 이가,

그렇게 덜렁 시덥잖은 시집이 나오더니..

무슨 캠프장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공간이라 이런 재미도 있는 게지요.

우리 아이들이 무슨 수련원을 오는 것이 아니어.

그야말로 산골외가 같은! 구석구석이 외가의 다락방 같은!

 

다은이는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을 때,

샘들과 치장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나누고,

현수는, 책방에서 책의 내용을 ‘자누국수’로 바꾸어 읽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 올망졸망 대여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붙어서 귀를 기울이고.

때건지기를 끝낸 아이들은 수건돌리기도 하고 책도 읽고

끼리끼리 그리 놀고 있더란 말이지요.

이곳은 전이시간이 깁니다.

앞 시간과 뒤 시간이 10분이면 앞의 책 넣고 뒤의 책 꺼내고

해우소를 다녀오거나 엎드리거나 교실을 이동하거나 하는 시간.

이곳에서는 그 시간이 충분하고 풍성합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준비한 시간보다 이런 시간에 더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물꼬에서 전이시간이 꽤 긴 까닭이지요.

그래야 앞 시간에 익힌 것이 내 몸에 붙는 시간도 있는 게고.

자신보다 어린 나이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건너온 시간을 보고는 하지요.

‘내가 집에서 엄마한테 하는 말과 행동을 실제로 당하니까 진짜 때리고 싶어서 엄마께 매우 감사했다.’(자누 형님)

부모 돼봐야, 처럼 처지가 돼보니 그렇더란 말이지요.

사회의 축소판처럼 아주 너른 나이대가 모여 있으니,

그야말로 공동체인 게지요,

삶에 대한 통찰과 성찰도 그 폭 만큼에 이르는 게 아닌가 싶은.

 

한데모임.

손말과 생활판소리와 듣고 말하기 훈련.

다른 존재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가를,

삶의 흥이 어떻게 타는지를,

그리고 갈등이, 혹은 논의가 어떻게 합의점에 이르는가를 익히는.

승민이는 노래집 찾는 걸 좋아합니다.

자주 홀로 있는 것 같지만 뭔가를 하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

혹여 불편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닌가 이리저리 살펴보지요.

잃어버린 물건을 알려 찾기도 하고

불편했던 일도 알려 펴고

구겼던 마음도 드러내 풀고...

오늘은 내일 산오름에 대한 안내,

무엇을 준비하고 어찌 움직일 것인가 하는.

 

대동놀이에서 소동놀이가 되고 보니,

내일은 산에 오를 것이란 말이지요,

돼지싸움대신 닭싸움으로 전환.

모든 아이들끼리, 그리고 모든 샘들끼리.

규민이와 윤상의 결승전은 정말 볼만했습니다.

그런데 ‘모둠하루재기’에서, 승자였던 규민이가 승자의 너그러움으로

자기가 만난 적수 가운데 제일 강한 적수였다 윤상을 위로했더랍니다.

 

잠자리로 가는 아이들과 동행하는 샘들의 책읽어주기.

계자를 와서 한 경험들 중 손에 꼽히는 좋은 경험이었다는 민우샘,

책을 챙겨는 갔지만

책보다는 아이들이 던지는 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더라지요.

‘놀라웠던 건, 대부분의 아이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굉장히 시끄럽고 통제가 안됐었는데 윤상이가 던진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자 모두가 집중해서듣고 질문도 던지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보수와 진보, 일베와 전교조도 입에 올려졌다 합니다.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 대한 책에선

첫 문장을 읽자마자 따라온 아이들의 반응도 대단했다고.

윤호와 호연이가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흔적이 보이더라지요.

 

밥이 편합니다.

맛도 마음도.

워낙 물꼬 밥은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럴 밖에요, 좀([조옴]) 움직여야 말이지요.

그렇더라도 맛의 차이는 있다마다요.

유달리 밥이 맛있다는 아이들.

임미숙 엄마와 휘령샘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글보글 뒤 그래도 밥이 있어야지 않을까 하고 밥도 간단한 반찬을 꺼내놓으며

‘소박한 한 끼였지만 기본적인 밥상이 가장 배부르고

맛있게, 정직하게 먹을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휘령샘.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냉장고 3번(부엌의 아주 커다란 냉장고의 문짝은 그만큼 커다란 네 짝)의

큰 김치통에 절반의 묵은지가 들어있었는데,

그걸 꺼내고 냉장고 3번이 정리가 되어 있는 겁니다.

남은 자, 아니 남을 자를 위한 배려.

밥바라지 엄마의 최대 미덕은 후덕함, 그것 아닐까 싶데요.

고맙습니다, 미숙샘.

우리 아이들, 이 밥 먹고 영혼도 배부르고 있을 겝니다.


내일은 산에 오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기어코 간다는.

어떤 날이 또 우리 눈앞에 펼져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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