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 >

 

아직도 비입니다.

새벽 4시도 훌쩍 넘어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짧은 잠에도 귓가에 앉았던 빗소리는 꿈이 아니었던 것.

이제 두 시간 안에 개지 않으면

산오름에 대한 최종판단을 해야 하는 시점.

‘산오름 전에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굉장히 긴장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윤지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아침 6시, 샘들은 김밥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산에 갈 생각을 하면 눈앞이 깜깜해지길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났다. 그대로 김밥을 쌌다.’(수현샘)

‘세상에서 제일 간단하지만 가장 맛있는 김밥을 처음 만들어보았다.’(지연샘)

‘학생으로 계자 올 때는 김밥을 어떻게 싸는지 궁금했는데 처음 싸보니까 색달랐다. 평소에 요리를 잘 안 해서 “잘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들었는데 김밥 싼 것을 보고 꽤 만족했다.’ (새끼일꾼 태희 형님)

 

산오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리는 일단 나섰더랬지요, 언제나.

가다 못 가면 돌아오면 되리라, 그래놓고도

한 번도 정상을 밟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절묘한 물꼬의 날씨가 늘 도와주고 있었지요.

오늘은 어떻게 되려는지.

 

06:50 아이들 깨우고

07:20 아침 때건지기

07:40 복장검사

07:50 흘목행 대문 출발

민주지산 산오름의 아침 흐름은 그러합니다.

이어, 학교에서 2km 걸어 나가 물한리행 버스에 오른다,

10여 분 가서 버스 종점 물한주차장에서 내린다,

산을 오른다,

그리고 내려와 17:10 버스를 타고 다시 되짚어 온다, 그렇게요.

 

아침 7시 40분 복장검사를 해야 하는 시간.

단단히 준비하고, 훈련되어 있으면,

에베레스트도 올랐다 무사히 내려오지 않더냐,

동네 뒷산도 준비 없이 가면 위험할 수 있는 것,

접싯물에도 빠져죽는 게 사람이지 않더뇨,

허니 준비 단단히 하기, 마음먹기, 그리고 안내자의 안내에 귀 기울이기.

 

아직 비 거셉니다.

결정해야 하는 거지요.

우리들의 산오름을 어찌할 것인지.

가다가 맞는 비가 아니라 이렇게 흠뻑 젖어서 하는 출발이라면 너무 무모한 짓.

“일단 모둠방에 모이지요.”

이야기 하나가 시작됩니다.

산 아랫마을에 할머니 한 분 사셨지.

나처럼 낼모레 예순인 할머니.

사랑이 많은 할머니 집에는 온 산의 동물들이 사랑방처럼 모였어.

어느 해 겨울 설이 가까울 무렵 만두를 빚어 먹었지, 다들 모여.

그러다 함께 날 좋은 날 나들이를 하루 가기로 했지, 산으로.

날마다 보고 사는 아주 커다란 산.

거기서 밤을 지나고 오기로 한 거야.

여름이 가까운 날 가기로 했지.

동물들은 필요한 것들을 의논했어.

밥해 먹을 그릇도 와야지, 먹을 것도 챙겨야지, 이불도 있어야겠네,

비가 오면 어떻게 해, 도롱이도 챙겨야겠지.

마침내 그날이 왔어!

호랑이는 부하들까지 앞에 세우고,

그 부하들 등에는 허리가 휠 정도로 많은 먹을 것들이 짊어져 있었지.

호랑이답게 후하고 싶었던 거야.

꾀꼬리는 악기를 챙겨왔어, 밤새 놀려고.

멧돼지는 그동안 갈무리 했던 고구마를 실어왔네.

곰은 세간을 죄 실어왔어.

할머니가 나와서 보고 깜짝 놀랐지.

마당이 다 차 버린 거야.

“아니, 이걸 들고 어떻게 산을 가려는 거야?”

그때 할머니는 좋은 생각을 해내지.

“얘들아, 바늘과 실을 좀 가져와 봐.”

커튼을 떼어내 이어붙이지.

그걸 들고 지붕을 간 거야.

지붕을 덮자 텐트가 됐네.

그 아래 집으로 다들 들어갔지.

놀고 노래하고 먹고 뒹굴고 또 놀고.

그렇게 해가 지고 모두 잠자리로 들 무렵,

어, 이게 무슨 소리라니.

할머니 코고는 소리.

시끄러운 동물들은 집으로 돌아갔네.

산에는 벌써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지.(* 비슷한 일본의 그림동화가 있었더랬지요.)

 

예, 오늘 우리들의 산은 바로 여기 이곳입니다.

‘마지막 날, 등산을 하는 날이었고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다만 힘이 좀 덜 들었을 뿐.

...비가 많이 왔지만 결코 아쉽지 않은 하루였다. 그만큼 채웠고 또 그만큼 좋은 시간을 보냈다.’(새끼일꾼 가온)

‘오늘 물꼬에서 처음으로 편안하게 산에 올라갔다. 처음이라서 새로웠다.(새끼일꾼 현지)

“지금 시작점을 시작으로

1지점 계곡에서 모두가 올 때까지 기다려 모일 것이고

2지점 계곡에서 모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오를 산이 품은 이야기도 듣게 되겠지요.

골이 깊으니 깃든 사람들도 많고

깃든 사람들 많았으니 품은 이야기도 많으리.

 

민주지산의 다른 이름은 많습니다.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린 이름도 있었겠다 싶지요.

아주 오래전 이 산이 가막산이라 불렸던 때가 있다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여왕이 다스리는 국가가 이 산에 있었습니다.

모기 없고 산살림 풍족하니

산 아래 마을들이 기근이 들었을 적 이 나라를 넘봤지요.

그런데 이 나라엔 무기로도 이동수단으로 쓰는 기가 막힌 물건이 있었으니

마치 지금의 비행기 비스무레한 거였습니다.

(우리는 그걸 비행기라 부르기엔 적확하지 않은 듯하다며 바행기로 일컫기로.)

국경 방어를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일찍부터 개발한 것.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정말 그게 필요한 걸까 잘 모르겠으나

배운 사람들이 그렇다 하니

백성들도 살림을 쪼개고 쪼개 돈을 모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어떤 삶이든 고달픈 것이니.

하여 적이 쳐들어온다 해도 아무 걱정 아니 했는데,

자, 그 바행기는 제 역할을 잘하게 되는 걸까요...

“다음 이야기는 1지점에서 들려드리지요.”

아이들은 샘들을 산삼아 타고 놀았더라지요.

정말 ‘한껏맘껏’!

우리들이 가끔 속틀에도 적어두는, 그렇잖아도 이미 한껏맘껏 놀고 있으면서도,

아예 대놓고 더 한껏 더 맘껏 노는 그 시간처럼.

 

1지점에서 여느 산오름처럼 사탕을 들고 기다립니다.

아이들이 왔지요.

“옥샘,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웬걸, 걱정 없다던 그것은

그만 추풍낙엽처럼 적의 화살에 너무나 허망하게 산산조각 해체되고 맙니다.

바행기 말이지요.

결국 나라를 뺏겼으나

여왕과 그의 친인척들의 삶은 별 변화 없이 살고 있었지요,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백성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백성들의 돈을 자신들 주머니로 빼돌렸다고.

바행기는 그저 그 돈을 뺏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던.

사람들은 곳곳에서 자신의 것들을 되찾기 위해 싸우려고 준비하기 시작했지요.

“다음 이야기는 다음 지점에서.”

아이들은 꼭 산에 왔듯이

물도 샘들 가방에 있는 물을 마시고

화장지도 샘들 가방에서 꺼내서 쓰고.

 

1지점에 이르는 동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수건돌리기가 모둠방에서 한창.

현수 율 다은 여원 준서 동희 현욱 태우 승민이 거기 있었는데,

고학년도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했지요.

한 15년 만에 엉덩이로 이름도 썼다는 희정샘.

‘여태까지 내가본 윤서의 모습은 소극적으로 조용히 있는 아이의 모습. 윤서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물꼬의 힘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정말 뿌듯’했다는 도영 형님.

 

부엌에선 샘들 쉬어주라고 휘령샘이 홀로 설거지를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음악 들으면서 고요하게.

밖에는 비 내리고,

갈음쌤과 도영이와 가온이가 하는 기타연주랑 노래랑 들으며

샘들도 스르르 눈이 감기는.

‘집에서는 그냥 할 일 없으면 자는 게 다반사였는데 이곳에서는 이것저것 하다가 피곤을 못 참겠으면 그때서야 자서 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새끼일꾼 훈정)

 

1지점 도착 후 ‘침묵의 007빵’.

태우 정훈 호연 큰 친구들도 거기 샘들과 함께 있었지요.

놀이에서 진 호연이와 진성이의 여장이 모두를 즐겁게도 했고.

2지점, 산오름에 쓰려고 챙겼던 오이는 반찬용으로 부엌에 돌려주고

사과를 깎아와 다른 종류의 사탕과 함께 먹었습니다.

“옥샘, 이야기요!”

“어디까지 했더라?”

“옥샘,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사람들은 곳곳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서로서로 연결되어 어느 날 모두가 한 번에 들고일어난 거지요.

그리고 여왕과 그 친인척의 집 곳간을 헐어냈고 다 불살랐습니다.

까맣게 재로 남았지요.

하여 가막산이 된 것.

어떤 명사 앞에 붙어 검은색을 띠었음을 나타내는 말 ‘가막’,

센 말로는 까막.

믿거나 말거나.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산에서의 흐름과 똑같이 1지점, 2지점에서 멈추고 사탕도 나눠주었다.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한 일정이었다.’(수현샘)

윤지샘, ‘학교 안에서 오전에 등반을 하게 되었다. 1지점, 2지점에 도착하면서 그동안 정말 너무 즐겁게 등반을 한 것 같다. 쉬기도 쉬고 노래도 부르고 가온이와 도영이가 노래 부르는 걸 아이들이 완전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집중한 표정이 너무 귀엽고 그렇게 집중한 모습을 간만에 봐서 이뻤다. 1지점에서 2지점을 가는 길에 샘들과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민우샘, ‘등산은 많이 기대했던 프로그램인데 많이 아쉬웠다(장작놀이도, 춤명상?도).

취소는 됐지만 이야기를 합친 실내 진행이 참 독특하고 놀라웠다.‘고

하루정리글에 쓰고 있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굵었습니다, 하늘은 그리 어둡지 않았으나.

이젠 젖더라도 갈 만한 시간일 수 있을 듯하여

꾸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매고

우리는 그제야 물한리로 가는 13:10 버스에 오르기 위해 드디어 학교를 나섰습니다.

장대비.

“여기가 정상일세.”

비를 거슬러 올라간 우리는 정상에서 김밥을 먹었지요.

변함없는 맛났다는 물꼬김치김밥.

 

‘점심 먹으러 버스 정류장 근처로 갔는데 옷은 다 젖었다. 정말 확실히 색달랐고 좀 더 편해서 좋기도 했지만 산 가는 거 많이 긴장하고 있었어서 좀 맥이 풀리기도 했다.’(새끼일꾼 자누)

‘산을 정말 못타서 걱정하고 큰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비 때문에 기쁘면서도 서운했다. 뭔가 티저만 3~4번 보고 본편을 못 본 느낌? 비 맞으면서 가는 길은 거의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걸어본 거라 설레었다...

정상(백숙집)에서 우리가 비 맞고 올라가고 있으니까 식당의 젊은 결혼이주민 여자 분이 커다란 파라솔로 우리를 씌워주셨는데 감동이었다. 손님도 아닌 우리에게 웃으며 걱정해 주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지연샘)

‘사진 찍는 일을 하다 보니 몇 번이나 더 많이 걷고 뛰게 되었다. 카메라 속으로 본 아이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힘든 기색보다는 즐겁고 재미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윤지샘)

‘잠시 밖을 나가서 산 정상...에 오를 때는 날씨도 궂고 길도 가깝지 않았음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참 많았는데 새끼일꾼친구들, 샘들, 아이들 다 같이 어울려서 노는 시간이 참 많았다. ’(민우샘)

‘가고 오는 동안 시원하게 쏟아졌던 비를 온몸으로 맞고 온 덕분인가 기분이 좋았다.’(새끼일꾼 도영)

 

우리들이 비를 피해 들어간 곳은 펜션,

나이 마흔에 우연히 상촌농협서 만난 주인입니다.

나이 스물에 서너 차례 부딪힌 적이 있다는 거였지요, 이름까지 기억, 그때 모습도.

지금도 글쓰냐고 물어왔더랬습니다.

20년 지나 산골마을에서 보게 된 거지요.

늘 물꼬 사는 아이가 오가면 음료수를 챙겨주고,

이렇게 급할 때면 또 이렇게 잘 이용합니다.

한 번도 손님으로 가준 적도 없는.

꼭 곡차 한번 하러 가야겠습니다요.

하려는 얘기는 그런 거,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는가 하는.

 

비를 뚫고 산을 내려옵니다.

언제 우리가 비를 이리 흠뻑 맞아보겠는지.

날이 훤하니 젖는 몸이 그리 칙칙하지도 않은.

다시 2km를 돌아오는 길.

학교를 벗어나 오가는 길은 새로운 관계들을 만나고, 새로운 발견들도 합니다,

사물에서건 관계에서건 자연에서건.

윤서는 첫 캠프라는데도 엄마 보고 싶다고도 않고 의젓합니다.

여원이, 다이어트 중인데 간식을 끊기가 힘들다는군요.

열 살에도 몸매를 걱정해야 하는?

통통해서 더 예쁜 우리 여원이, 수학을 못한다고 걱정하자

곁에서 샘들이 아직 날 창창하게 많으니 나아질 거라 위로도 합니다.

그 나이는 그 나이의 고민이 또 있는 것,

저마다 삶의 무게가 있듯.

“쌤은 애들이 괴롭히는데 안 힘드세요?”

찬희가 태희 형님한테 건네는 말.

샘들과 아이들이 어깨 겯고 빗속을 걸으며 그 관계도 더 깊어갑니다.

율이는 물이 흘러가는 이야기와 워터파크에 놀러갔던 이야기를

돌돌거리며 가는 계곡물을 보며 재잘대고 있군요.

 

‘한껏맘껏’이 계속되지요.

남자 아이들은 베개싸움도 하고.

승욱이와 건호는 꼭 쌓여있는 책상에 올라가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건 늘 재미난 법이니.

그게 재미없는 나이가 되면 이제 재미없는 어른이 된 것일지도.

책방에서 구리 6형제의 이상한 게임도 재미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컴퓨터게임을 알까기판, 바둑돌, 체스말 등을 한꺼번에 모아 옮겨놓기.

여기선 무엇이라도 놀이가 되는!

가위바위보로 화장하기놀이도 나와

진성이는 도도한 가부키, 호연이는 청순화장으로

우리들을 즐겁게도 했지요.

‘호연은 아이들도 잘 돌보고 귀엽고 리더쉽이 있다. 이번 겨울 자유학교 선생으로 정말 추천한다.’(새끼일꾼 진성)

‘호연이 이야기가 계속 하루재기 때 나왔는데 되게 부러웠다. 저번 겨울에 나는 또래도 있었는데 되게 겉도는 것 같았는데 잘 지낸다고 얘기가 많아서 좀 닮고 싶었다.(새끼일꾼 자누)

‘오늘의 가장 큰 변화는 호연이를 발견한 것이다. 아이이기엔 좀 큰 나이였기에 처지지 않게 챙겨주던 아이였지만 정말 심성이 착하고 훨칠한 아이였다.

겨울 계자에는 새끼일꾼으로 나타나겠다는 말도 했으니 꼭 두 번보고 싶은 아이였다.’(새끼일꾼 가온)

괜찮은 사람은 주위를 환하게 하다마다요.

 

팥빙수가 나옵니다.

산을 다녀온 자에게 주는 상?

아이들은 그릇마다, 샘들은 양푼이에 하나로.

뒤란에선 기표샘이 눅눅한 방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때고

거기 소사아저씨는 감자를 구워내고 있었습니다,

마당에서 할 장작놀이를 위한 불을 피우지는 못하더라도.

 

희중샘은 산오름 동행의 임무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무엇이 저 친구를 그토록 움직이게 하는가,

황금 같은 휴가를 무리하게 오가며 이곳에 다 쏟았지요.

‘그러니 내 물꼬에서 어찌 힘들다 할 것인가’

초등 때부터 왔던, 대학에 갓 입학한 스무 살 세 젊은이는

스무 살이 되면 같이 계자를 꾸린다는 약속대로 이 여름을 예서 보냈습니다.

그것도 계자 전 며칠씩이나 일찍 들어와.

‘이러니 어찌 내 물꼬 일을 못 하겠다 하겠는가.’

그 기운들이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리니.

그래서 우리 더욱 행복한 겝니다.

잘 가소, 달려가 밥 한 끼 얼른 차려 보냈지요.

그 밥이 다 뭐라고, 밖에 가면 더 맛난 것들 있을 것이나

그게 이 산골에서 내 그대를 위해 줄 수 있는 전부일 것이라.

 

저녁 때건지기.

‘오늘 먹은 저녁은 지금까지 물꼬에서 먹은 밥 중에 가장 맛있었다.(새끼일꾼 태희)

‘새끼일꾼들끼리 이번 계자가 너무 빨리 간다고 얘기를 하다가 내 생각엔 이번 애들이랑 별로 못친해진 것 같다고 했더니 기표샘이 지나가는 말로 니가 열심히 안해서 그래라고 하셨다. 그때는 장난으로 넘겼는데 생각을 다시 해보자면 내가 너무 애들끼리 친하다고 단정 짓고 먼저 다가가는 걸 망설이진 않았나, 내가 조금 더 다가갔으면 애들도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했다.’(새끼일꾼 훈정)

 

강강술래,

어디 아이들만 즐거운 시간이던가요.

‘고래방에서 대동놀이를 한 게 정말 재미있었다.’(희정샘)

‘대동놀이 오랜만에 강강술래 정말 재미있었음.

아이들과 손잡고 신명나게 놀아본 것이 오랜만이라서 좋았다.

모두 즐거워보이고 신명사 보였다. 이것이 물꼬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 들었다.’(휘령샘)

휘령샘이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대학 때

그네 초등특수교육과에 전래놀이 특강을 갔더랬습니다,

당시 류옥하다 선수를 보조로 데리고, 5학년쯤이던가요.

그 인연이 이리 오래 이어지고 있는.

‘강강술래는 책에서만 봤고 그저 둥글게 손잡고 도는 놀이인 줄만 알았는데 새로운 모습을 봐서 신기했다.’(지연샘)

 

모둠하루재기.

‘대동놀이 땐 대동놀이가 가장 즐거웠는데 하루재기를 하면서 그 순서가 바뀌었다.’

희정샘은 하루 정리글에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하루재기 때에는 휘령쌤의 흥 덕분에 가장 재미있는 하루재기가 되었다.’(새끼일꾼 도영)

예쁘다와 못생겼다 두 가지 수화로 참말 유쾌한 밤이 되었다 합니다.

물꼬 노래와 알려준 단어를 조합해서 너무 못생겼다를 표현한 윤호.

그게 대동놀이 때 했던 놀이로 연결되기도 하고.

‘크고 거창한 게 아니어도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참여도와 기분이 개선시키는데 훌륭한 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희정샘)

 

촛불잔치.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다 말할 수가 없어 재밌었다라고 하겠다’는 여원.

날이 금방 가더라,

일정을 더 늘여서 해 달라,

시간이 이렇게 금방 가냐,

너무 보고 싶을 거다,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늘 하는 거 하는데 저들은 늘 새롭답니다.

‘촛불잔치는 처음이었는데, 모두 진지하게 이야기 들어주는 모습들 하나하나 좋았다.’(휘령샘)

물꼬는 와도와도 안 해봤던 것이 있더라지요.

‘장작놀이를 못한 대신 또 모둠방에서 촛불놀이로 경건한 마음으로 소감을 나눴고, 장작놀이와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새끼일꾼 도영)

 

인디언놀이.

감자도 먹고 숯으로 싸움도 하고.

학교가 한번 들렀다 내려왔더랍니다.

 

샘들 하루재기.

‘정말 재밌다는 말로 그칠 게 아니라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난 게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주일이었다.’(희정샘)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너무 아쉽고 이번 계자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갔던 것 같다.’ (새끼일꾼 태희)

‘이번 계자, 나에겐 언제나 특별한 순간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 하나하나마다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느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다.

몇 년 뒤 내 위치는 어디일까 하며 158계자를 끝내겠다.’(새끼일꾼 가온)

‘첫날엔 이 일정이 어떻게 흘러갈까 걱정되고 시간이 길다고 느껴졌는데 일정이 진행될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하나하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휘향샘)

‘이번계자는 생각할 게 많았던 계자였다. 내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공적인 일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났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까지(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수현샘)

“한데모임시간 옥샘이 말씀 하실 때 유지나 율리의 눈빛을 보는데....”

수현샘은 그가 그 나이에 만났던 물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옥샘이 늘 물꼬는 언제나 여기 있겠다, 그러시잖아요.”

그 나이의 나처럼 그들도 물꼬를 그리 보고 있다 싶어 감동이었다는.

 

오늘 가막산(민주지산) 산오름에 온 큰비는 외려 선물이 되었습니다.

비가 와서 더 한껏 안에서 잘 놀았고, 비가 와서 흠뻑 젖어보았고,

비가 와서 거친 날씨 산오름에 일어났을지도 모를 사고의 발목을 잡아주었고...

물꼬의 날씨는 그렇게 오늘도 절묘하였습니다.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기대치가 가져다주었을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지요.

산에 들면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고

그토록 비바람 불 때 그 바람이 멈추기도 했던 우리들의 산오름,

오늘은 비가 우리의 걸음을 막아

더 한껏 더 맘껏 마음들을 부려놓게 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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