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납니다.

그토록 퍼붓듯 내리던 비가 개고 날이 훤했습니다, 잘 가라고.

아름다운 여름 한때였습니다.

백쉰여덟 번째 계자 ‘2014 여름 계절자유학교-바람은 삽삽이 잎에 앉고’도

이제 물꼬의 역사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비가 와서 그래서 더 많이 안에서 놀았고

비가 와서 그래서 산오름은 짧았지만

흠뻑 젖는 즐거움과 안에서 올랐던 가막산 산오름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기대치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의 크기를 깎는 건 아니지요.

언제나처럼 물꼬의 날씨는 절묘했습니다.

산에 들면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고,

그토록 비바람 불 때 그 바람은 우리의 산오름을 돌아갔더랬지요.

그런데 어제 그 많은 비는?

그것은 그대로 또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원 없이, 정말 원 없이 아이고 어른이고 온 몸을, 온 마음을 부렸더라지요.

 

이불을 털며 아침을 열었습니다.

어른이고 아이이고 해건지기 대신에 한.

아침을 먹고 우리들이 할 ‘먼지풀풀’의 의미를 새기는 모임이 먼저 있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곳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준 것처럼

다음에 이 공간을 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마음을 내고 움직이기,

내가 어질러놓은 것 내가 치운다는 소극적의미를 넘어!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돌아갈 차는 오고 우리는 간다, 끝나면 간다, 라는 생각은

자칫 방만함을 불러오기 쉽지요.

해서 무기력한 고학년들을 위한 협박(?)도 잊지 않기.

기차와 버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

제대로 아니 할라치면 내가 안 보내고도 남을 사람이야, 그런.

 

청소 끝내고 갈무리 글쓰기, 그리고 복도에서 한 줄로 주욱 늘어서서 ‘마친보람’.

한 사람 한 사람 갈무리 인사를 하고 안고 나면

글집에 받은 도장으로 가마솥방 점심 밥상 앞으로 가지요.

왔던 버스에 올라타 다시 영동역, 그리고 제 물건을 찾는 ‘물꼬장터’를 끝내고

부산행 서울행 기차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둘러앉아하는 샘들 갈무리.

“지금 영동역, 참 좋습니다.”

가끔 기차가 지나고, 말이 끊기고...

퍼질러 앉은 저 위로 하늘 좀 보라지요, 저 하얀 구름도.

바람이 나무를 건드리듯 우릴 건들고

샘들은 아이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배시시 웃고 있고...

어린 날의 나랑 마주앉은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물꼬의 매력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가족처럼 지내며 행복했고

여기 와서 새로운 해답을 찾았다,

물꼬는 참여연령대도 다양하고 참여샘들도 다양한데

이렇게 성장하는, 그게 부러웠다,

물꼬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감동하고 감명 받았다,

이렇게도 학교가 굴러갈 수 있구나 신기했다,

교실혁명이란 게 뭔지 알겠다,...

새끼일꾼들, 고생스러웠을 것이나 어떤 의미에서 복이다,

우리도 이 나이에 물꼬를 만났더라면...

“그런데, 학교를 나서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돌아보는 눈은 좀 필요하겠습디다.”

그리고 계자 내내 했던 우리들의 뜨거운 시간과 각오도 되짚었지요.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놀고 사랑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연대하기!

좋은 세상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 되기,

세상을 어쩌지 못해도 교실혁명은 가능하지 않겠는지요.

생각하는 이들이 각 지점에서 힘을 내고 그리고 그 힘을 나누고 보태기!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휘향샘을 시작으로 민우샘이며 그예 우리는 모두 눈물바람 되었습니다.

1994년 첫 번째 계자가 떠올랐지요.

서른하나의 교사가 아이들 87명과 설악산을 다녀와

바로 이런 학교를 10년 뒤 만들자고 결의했던 자리의 감동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물꼬는 또 새로운 역사 앞으로 한걸음을 갑니다, 이 아이들과 이 샘들과 함께.

아무래도 오래, 아주 오래 물꼬 일을 해내가지 싶은...

 

예년과 달리 올 여름 일정은 초등 계자 다음에 청계를 바로 이어서 합니다.

7월의 아일랜드 전환학년제 연수로 일정이 밀린 까닭입니다.

다른 때라면 초등 계자 한 주 전 청계를 하고

거기서 훈련된 이들이 새끼일꾼으로 합류하게 되는 것.

그런데 이번엔 초등계자 마치고 다음날 청계.

하여 오늘 샘들 갈무리를 끝내고, 청계를 위한 장을 보았습니다.

기표샘이 하루 더 남기로 하며 운전을 맡아주었지요.

 

물꼬로 다시 들어오는 사람 수가 적잖습니다.

내리 청소년계자를 주말에 이어할 가온 도영 훈정 현지 진성 태희 자누,

청소년계자에 합류할 류옥하다,

기락샘과,

하루를 더 머물며 계자 뒷정리를 도울 기표샘과 연규샘과 윤지샘.

연규샘과 윤지샘은 고래방에서 한껏 158 계자 여독을 푸는 새끼일꾼들을 위해

저녁도 챙겨 멕이고 밤참도 해다 주고...

샘들도 가볍게 곡차.

그 안주를 역시 그들이 만들었습니다.

“옥샘, 자랑할려구요...”

세상에,

골뱅이소면을 해서 굳이 보여준다고 일하고 있는 교무실까지 들고 와 보여주는 샘들.

“아이고, 우리 딸들, 뿌듯하다!”

물꼬는 우리를 이리 훈련시켜주어 왔더랍니다.

 

그리고, 오늘 깊이 마음을 울리는 말;

인간이 된다는 것은 서로를 아끼는 것!

안녕, 158 계자...

불편한 곳에서도 씩씩하게 지낸 자랑스런 우리 어린 벗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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