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초등) 오라고는 안 해도 청계엔 애들 보내라 한다.’

자주 하는 말 그대로,

그 진한 질감 그대로,

이 여름의 청계도 있었습니다!

 

어제 158 계자를 끝내고 몇 샘이 들어오거나 남아

계자 마무리와 청계 준비를 도왔지요; 기락샘과 기표샘과 연규샘과 윤지샘.

연규샘과 윤지샘은

고래방에서 한껏 158 계자 여독을 푸는 새끼일꾼들을 위해

저녁도 챙겨 멕이고 밤참도 해다 주고...

이러면 계자 열둘도 더 해내겠구 말구요.

덕분에 교무실 일정도 원활하였고,

어른들이 곡차도 한 잔할 여유도 얻고.

초등계자에 아이로 왔던 이들이 새끼일꾼 거쳐 품앗이일꾼에 이르고

이제 이곳을 이리 꾸려가고 있는 주축이고들 있는,

이것도 기적이라 하겠습니다,

이 감동 말이지요.

 

올 여름 자주 올리는 말입니다만,

예년과 달리 초등 계자보다 한 주 전에 있을 것을

초등 계자 끝으로 청계가 밀리다보니

개학을 바로 코앞에 두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건너뛰기엔 아쉬워.

아일랜드에서 보낸 달포의 전환학년제 연수가

여러 일정들을 이리 밀리게 하였군요.

개학이 청계 끝난 다음날이고 보니

부담스럽다고들 안부만 묻기 여럿,

그럼요, 겨울에는 제대로들 모입시다려.

결국 내리 158 계자를 한 이들만 청계로 넘어왔습니다.

아, 류옥하다를 더해.

결국 갑자기 가방을 싸서 오겠다던 대구의 두 친구도 동행을 못한.

단촐하군요.

 

청계!

영성의 바다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시간,

그쯤이지 않을지요.

1. 성장-명상과 수행 프로그램을 통한 영적 성장의 계기

2. 배움-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배움(자원봉사교육)

3. 나눔-내가 가진 것으로 기꺼이 나누며 배가되는 기쁨

4. 쉼-다음 걸음을 위한 호흡

그 목적이야 말 많이 이리 둡니다만.

 

158 계자를 물고 가는 청계라 뒷정리가 남겨진 속에

이제야 냉장고를 다 쏟아내고 점심 밥상을 차렸습니다,

나가는 샘들도 밥 한 끼 챙겨먹고 나가라 붙들어.

“옥샘, 청계하기 전에 늘 이렇게 하세요?”

“그럼, 이게 계자의 시작이지.”

냉장고에서 쏟아져 나온 것들이 쌓인 걸 보며

도영이가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그러지요, 새끼일꾼 되며, 샘들이 이리 많은 일을 하는 줄 몰랐다고,

그리고 품앗이일꾼이 되며 또 그럽니다,

새끼일꾼 땐 미처 몰랐노라고, 그 많은 일을.

나이가 들며 그 말을 더 많이들 한단 말이지요.

그만큼 일이 보이는 것일 터.

그럼요, 우리가 움직이는 뒤엔 또 얼마나 많은 손발과 기도들이 있는지요.

그러니 나만 달랑 세상에 있는 게 아니다마다요,

나만 고단한 것도 아니다마다요.

 

밥을 먹고 아이들이 설거지를 할 동안

그제야 계자 끝난 냉장고를 정리했습니다.

그건 청계를 시작한다는 의미일 테고.

158 계자의 밥바라지 미숙샘과 휘령샘이 해놓고 간 단도리가

큰 도움이었습니다.

남겨진 이를 위해 최대한 손을 보태고 가신 흔적,

고맙습니다.

 

바로 학교로 돌아갈 아이들이어

이번 청계는 조금 쉬엄쉬엄 가자 합니다.

이미 계자에서 새끼일꾼으로 움직인 일의 강도가 있으니

노동 또한 조금 힘을 덜 들여도 괜찮을 듯.

사과잼부터 만들려지요.

이 산마을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9학년까지 지냈던 류옥하다가

주마다 한차례 머슴을 살러가던 유기농사과 농장에서는

지금도 조정환샘과 정현옥샘이 사과를 나눠주고 계십니다, 새경처럼.

이번 계자도 아이들 멕이라 실어 보내주신 것들,

흠난 것들은 사과잼을 만들기로 이리 남아 있었던 게지요.

씻고 도려내고 썬 사과를

저들이 모래사장 풀을 뽑기 위해 자리를 옮겼을 때

불 위에 올렸답니다,

갈 때 전리품처럼 조금씩 들고 가라고.

풀 뽑던 일손들 땀에 절자

계곡에 들었다 돌아와 또 호미질.

저녁답 풀섶 모기들이 더 신났을 테지요.

 

“물꼬 밥 중에 옥샘 밥이 젤 맛있어요!”

일하고 먹는 밥이,

마당 두어 번 왔다갔다 하면 해가 지는 산마을 일에서,

해우소 가려해도 저만치 걸어야하는 이곳에서

어떤 것들이, 누가 한들 맛나지 않으려나요.

아니면, 권력의 중심을 알거나(하하)

‘지금’에 충실하거나

정말로 밥이 맛나거나...

잘은 몰라도 그건 아마도 사랑이었을 것, 그 밥!

 

저녁밥상을 물리고 ‘숙제검사’.

자기 생을 건드린 책, 나누고픈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 안에 자리 튼 이야기.

달콤한 시이기도 하고, 곧추세우는 글이기도 하고, 위로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을 성찰케 하는 책이기도.

서로가 서로를 건드려 감정 혹은 감동이 증폭되고,

마치 헛헛했던 우리의 영혼이 비로소 생기를 얻는 것 같았던 시간.

마지막 류옥하다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재를 심도 있게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조지오웰과 조지 프리드먼, 세계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를 다룬 두 의견.

세상은 조지 프리드먼의 예언대로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진실이 그 속에 표류하거나 묻히는 상황을 목도하지요.

그 속에 우리는 무엇을 어찌 할 것인가 물었습니다.

‘진보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에 위배되니까.

하지만 희망적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자리가 오래전 어느 시간에는 가능했겠는가,

조금씩 그렇게 진보되어 온 결과다,

그러므로 진보적 움직임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하여 지금 이 시간 우리들의 날갯짓 또한 의미가 있을지니.

 

그리고, 오늘은 물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물꼬가 무엇을 해왔던가,

세월호가 어떻게 우리를 상처 입혔고,

그것의 의미가 지금 무엇인가,

이제 물꼬가 무엇을 하려는가.

더하여 어떻게 물꼬가 굴러가고 있는가를 나누었습니다.

그간 해온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을 들려주고

좋은 세상에 복무해왔던 방법 그대로

건강한 사람들을 만들어 사회로 내보냈던 그 시간 그대로

또 여전히 걷겠다는 다짐.

‘오늘 청계하고 나니까 그전에는 물꼬에 다녀가는 손님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뭔가 물꼬의 일부분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훈정)

이심전심, 염화미소가 그런 것일 터.

‘...

지금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가난‘을 저주하고 증오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일념으로 추구해온 것이 결국은 공허한 물질적 안락이었다는 데 핵심적 비극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다가 우리는 뜻밖에도 우리의 삶이 전혀 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다운 삶의 근본기반이 망실돼 버렸음도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이 극적으로 표면화된 것이 ‘4대강사업’의 재안과 ‘세월호 참사’이다.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이 두 개의 사태 사이에는 내면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두 사태는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공적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근원적으로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사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으려면 ‘사색’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고, 사색할 줄 아는 인간들의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종철 선생의 글 일부를 읽으며 마무리한 숙제검사였지요.

 

실타래가 이어졌고 마지막 일정은 공동창작.

칠판 위에 오래 걸려있던 어느 계자의 열린교실 결과물을 이젠 내리고

접고 그리고 붙이고 걸고.

모이니 일이 됩니다, 저마다 재주들이 다르니.

 

밤참과 함께 夜단법석.

말한 것만이, 일정만이 다였겠는지요.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젊은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세상이, 생이 든든해진 밤이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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