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12.쇠날. 맑음

조회 수 891 추천 수 0 2014.10.08 06:40:00


또 사람 하나를 보낸 산마을.

한 분씩 한 분씩 그리 보냅니다.

학교 앞에서 이 학교가 폐교되던 1991년부터 5년 동안 관리를 했던 이였고,

1996년 가을 물꼬가 자리 잡은 이후엔 물꼬의 이웃이었으며

소사아저씨의 오랜 친구였고,

답답하면 건너오는 마을사람이었고,

가끔 점심으로 낸 국수를 드시러 오는 할머니들의 한 자리셨던.

최근 읍내 아들네 가 계시다가

결국 세상 접었다는 소식.

그렇게 가고 또 누군가 오고.


한가위를 지나며 이어진 긴 연휴가 제법 책을 뒤적이게도 하는.

지난 7월 벗 하나와 프리모 레비 이야기로 메일이 한참 오간 적이 있습니다.

1934~1945년 라거(강제수용소) 살아남았던 레비는

1946 <이것이 인간인가>를 발표합니다.

이후 <주기율표> <지금 아니면 언제> <휴전> <멍키스패너>를 내고

1986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자>를 발표한 뒤

1987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요.


‘대다수는 정신적 나태함 때문에, 근시안적 타산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국민적 자부심 때문에 히틀러의 ‘아름다운 말들’을 받아들였고, 거의 대부분이 눈을 감고 침묵했으며 거의 모두가 비겁했’고,

‘라거(강제수용소)에서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용기 때문에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보다 더 관대하고 섬세하고 현명하고 쓸모 있고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던 레비는

수사(修辭)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아름다운 말들에 가려진 불가능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생의 마지막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쓴다 했지요.

공교롭게도 지난 4월 서해에 배가 가라앉은 뒤 지금까지의 시간에

레비의 이 책이 곁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

여기서 두 가지를 의미 있게 보았소.

첫째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유지는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민, 정교한 독일의 조직화 등

실제 라거(강제수용소)내에서도 무수한 계층화를 통한 통제

아인자츠코만도스(살육 담당 특수기동부대), 카포(통제 반장) 등을 통한 통제

실제 유대인이 그 안에 있고 죽음을 조금 연장하는 ...

독일 국민들의 동의와 협조 (이후에는 무시 등)


이것은 간디의 식민지 지배(<위험한 헌법>) 분석과 동일하고

조선의 피지배 과정이 동일하게 겹쳐진다는.


둘째 악의 평범.

몰랐다고 언급되는 독일인에 반해 1938년 11월 9일 크리스탈나흐트 등으로 이미 광기어린 과정이 있었다.

또한 라거내에서의 독일인들의 행위 등 (또한 1934~1945의 히틀러 집권)

이것은 1961년 예루살렘 재판(아이히만), 회스 말에서 단순히 명령을 충실히 하기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영화 <더 리더>와도 겹치고

한나 아렌트 논문 <악의 평범성>과도 겹치는.


이전의 책들과 또 다른 엄밀함이 있더군요.

지금 아니면 언제, 휴전은 레지스탕스 내용이라 그런대로인데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는 라거 내에서 인간의 모습이라면

다분히 이 책은 라거 속의 인간군과 이후 과정들을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가에 초점이 있었던 듯

(삶과 일과 무엇보다 이해하려는 집요한 고민으로 점철된 40년이었어요-인터뷰 중)

현재 세계도 똑같은 잠재성, 발현 가능하지 않을까?

김동춘의 기억과의 전쟁이라고 한 것도 이와 같으려나.

전 세계의 과거들이 고스란히 잊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해 무거움을 간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메일을 읽고 세 시간여를 그냥 흘려보냄.

무, 거, 웠던...


깊게 읽지 못하니 안다 하기 그렇습니다만,

사실은 프리모 레비 들먹이실 때부터 긴장 같은 게 있었어요.

일종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들을 때 같은 그런 긴장.

몸이 먼저 하는 반응처럼 여기가 가슴이구나 하고 아린.

NHK 지지거리는 영상으로 처음 봤던 5.18 같은.


안나 아렌트의 책은...

악의 진부성 혹은 일상성이라 번역하지 않은,

번역자가 전체 글의 맥락에서 얼마나 고심하고 결정한 낱말일까를 읽으며

‘악의 평범성’을 이해했던 듯.

안나 아렌트도 구조된 자의 자살에 대해 거론한 적이 있어요.

직접 프리모 레비를 말한 건 아니었지만.

같은 맥락 아니었을까 싶은.


아이히만만 하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아이히만,

이 순간에도 있는 아이히만.

그래서 날카롭게, 각성하지 않으면 되살아나는.

방치하면 도사리며 힘을 기르고 있는 우리 안의 폭력성과 한 얼굴을 한.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지 못할 때 기어 나오는 악.

하여 모른다는 것이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돌아앉은 내게 하는 레비의 경고음은 들리지만

그러나, 여전히 ‘나’는 모르고, 나는 ‘평범’하며,

하여 사는 일이 더 길고 더 먹먹해지는...

그래서 다시 연대를 말할 수밖에 없는.

혼자는 무기력하므로.

어깨 겯고 갈 그대 어디 계신가요...


종일 지역에서 하는 연수 하나 있었고,

진행하는 이들의 차를 타고 서울행,

내일 우이령을 걸을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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