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14.해날. 맑음

조회 수 910 추천 수 0 2014.10.08 06:47:38


학교에서는

고구마와 고추와 호박들 사이 풀을 뽑은 가을 하루.


그리고,

사람들과 국립중앙박물관 산수화전에 걸음 하였습니다;

2014년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김홍도의 그림을 시작으로

18세기 조선 화단에서 쌍벽을 이룬 이인문의 산수도로 끝이 나고 있었지요.

이 한 점만 봐도 폭염을 잊게 한다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8m 56㎝에 걸친 장쾌한 산수.

노년에 이른 이인문 자신의 자화상처럼 보기도 한다지요.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군주의 통치대상인 국토와 백성이 영원하다는 것,

곧 왕조가 무궁하리라는 것을 조형적으로 표출했다 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여러 사람 손에서 반복되는 소상팔경이야말로

이 특별전의 핵심 아니었나 싶은.(순전히 개인 취향!)


제1경 소상야우瀟湘夜雨 (永州城東) 영주 강변의 밤비 내리는 풍경

제2경 평사낙안平沙落雁 (衡陽市回雁峰) 강변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

제3경 연사만종煙寺晩鐘 (衡山縣城北淸凉寺) 아득하게 연무에 잠긴 채 산사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

제4경 산시청람山市晴嵐 (昭山) 아지랑이에 싸여 있는 산마을

제5경 강천모설江天暮雪 (長沙橘子洲) 저녁 눈 내리는 강의 풍경

제6경 원포귀범遠浦歸帆 (湘陰縣城江邊) 멀리 포구로 돌아가는 돛단배들

제7경 동정추월洞庭秋月 (洞庭湖) 동정호의 가을 달

제8경 어촌낙조漁村夕照 (西洞庭武陵溪) 어촌의 지는 해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에도 소상팔경 대목이 나옵니다.


소상강 들어가니... 소상팔경이 눈앞에 벌여 있어 찬찬히 둘러보니 물결이 아득한데, '주루룩 주루룩' 내리는 비...‘소상강 밤비'가 아니냐. (제1경 瀟湘夜雨)

칠백 평 호수 맑은 물에 가을달이 돋아오니 하늘의 푸른빛이 물위에 어리었다. 어부는 잠을 자고 소쩍새만 날아드니 '동정호 가을 달'이 이 아니며 (제7경 洞庭秋月)

오나라 초나라 너른 물에 오고가는 장삿배는 순풍에 돛을 달아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야, 어기야, 어야.” 소리하니 ‘먼 포구에 돌아오는 돛단배'가 이 아니냐. (제6경 遠浦歸帆)

강 언덕 두서 너 집에 밥짓는 연기 나고, 강 건너 절벽 위에 저녁노을 비쳐오니 '무산의 저녁노을'이 이 아니냐.(제8경 漁村夕照)

...푸른 물 하얀 모래 이끼 낀 양쪽 언덕에 시름을 못 이기어 날아오는 기러기는 갈대 하나 입에 물고 점점이 날아들며 '끼룩끼룩' 소리하니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가 이 아니냐.(제2경 平沙落雁)

...새벽종 큰 소리에 경쇠 소리 뎅뎅 섞여 나니 배 타고 온 먼 길손의 깊이 든 잠 놀래 깨우고, 탁자 앞의 늙은 중은 아미타불 염불하니 '한산사 저녁 종'이 이 아닌가.(제3경 煙寺晩鍾)

[<한국고전문학전집 13:춘향전>(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1995)]


허두가(판소리를 부르기 전 짧게 부르는 연습곡?)에서도

(나중에 단가라고 독립적인 형식이 되는, 오페라의 아리아쯤?)

소상팔경이 으뜸이었습니다.


춘향이 옥중 꿈속에서 소상팔경을 유람하고,

흥보가에도 수궁가에도,

김시습 만복사저포기에도, 김만중의 구운몽 배경에도, 한용운의 흑풍에도,

양천허씨문중의 설화에서도 돈 대신 소상강을 구경합니다.

무가 만조상해원경에도, 서도민요에도,

송강의 사미인곡에도 임금의 옥루고천에 견주어 자신의 거처를 소상남반이라 일컫고,

허난설헌의 규원가에도 소상야우를 빗댄 표현이 등장합니다.

박인로의 선상탄에도 원포귀범 형상이...


판소리와 소설만 그런가요, 탈춤에서도 나오는 소상팔경입니다.

흥을 돋우는 대목에서 ‘소상팔경 구경 가자' 하지요.

한자 몰라 소상팔경에 무지했던 저자거리 백성일지라도

고단한 일상을 떠나 잠시 쉬는 유토피아쯤으로 알지 않았겠는지.


서두 쯤 있던 여덟 폭 소상팔경이 더 마음에 머문 전시회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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