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알이 떨어지고 있다,

라고 쓰고 오래 할 말이 없다.

요새 긴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원래도 그랬다.

시를 쓰기 시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소설보다 짧았던 까닭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더 긴 이야기일 수 있음을 훨씬 나중에 안 뒤로는

시조차 쓰지 못했고,

더 노골적인 까닭은 그것마저 게으름에 기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새의 글 짧음은 생각 없음, 철학 없음과 닿아 있다.

조금 더 파이껍질처럼 들춰보면 역시 게으름이다.

또 다른 껍질을 벗기면 거긴 외려 ‘생각만 많음’과 한 통속이 있다.

그건 또한 ‘덧없다’와도 닿아있다.

그래서 ‘오늘에, 지금에 집중한다’는 건강함과 이어지면 좋으련

무기력으로 가려한다.

그것으로부터 단호해지려는, 그러니까 방어적이려는 태도가

다른 날과 달리 오늘 해라체식의 ‘이다’로 글이 씌는 까닭이겠다.

이렇게 시작하고 나니 아스라해지던 마음이 좀 나아지는 듯.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긴 가을볕 탓이다, 순전히.

가을은 그렇게 아득한 느낌으로

현실조차, 지금 곁에서 재잘대는 아이 목소리조차

비현실적이게 만든다.

가을이다!


오는 25일 26일 서울에서 대안교육 국제포럼이 있다는데,

대안교육의 국제적 동향과 발전방향을 짚는 모양이다,

뭐 가긴 어렵지.

못가지.

그때 중국에 있다.

돌아오고 있겠다.

유기농업 연수라지만,

재능기부로 이루어지고 있는 오지의 서원을 하나 볼 테고,

폐교를 온천장으로 쓰고 있는 곳도 볼 테고,

혁명유적지쯤 되는 곳도 밟고 있겠다.


귀농기를 쓰고 있는 분이 계시다.

당연 귀농해서 사는 이야기.

한 편을 읽었다.

중학생 아이가, 엄마아빠처럼 사는 것도 괜찮다 해서

며칠 내내 기분이 좋았다 했다.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로 맘먹은 것보다,

좋은 성적표를 가지고 온 것보다,

부모를 지켜봐 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했다.

부귀영화를 지녀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닮고 싶다는 아들의 말이

나도 덩달아 기쁘고 또한 고맙게 했다.

한편 내 삶이 누덕누덕해 보여 목이 벌게지고 있었다.


한 편을 더 봤다.

풀을 깎고 있는데 이웃 어른 오셨더란다.

“뭐 하시는가.”

“풀 깎았어요.”

“깎아도 자라는 거 뭐 하러 자꾸 깎는가.”

애쓴다는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아저씨 태풍이 또 올라온대요.”

“태풍이 올라오지 내려가겄는가.”

“또 감 다 떨어지겠어요. 올핸 좀 큼지막하겠는데.”

“감나무 가지 두어 개 씩은 꺾어져야 가을 오지 공짜로 되겄는가.”

“아저씨 호박 하우스 또 무너지면 어쩌게요.”

장씨 아저씨는 재작년 태풍 볼라벤에 큰 피해를 입었던 경험이 있다.

“어쩔 것이여. 다시 하믄 되지.”


고승은 절에만 사는 게 아니다.

득도 역시 절집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닐 테니까.

저자거리의 고수들이야말로 고수다.

아니, 강호의 숨은 고수 아니어도

살아내는 이들 모두가 고수다.

오늘은 그것이 위로이다.

잘 살았다, 오늘도.

아니 잘 살아냈다.

딱히 무엇을 쌓지 않아도 좋다.

삶만 하루를 살아내도 장할지니.

아이들아, 그리만 살아도 장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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