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7.달날. 높고 파란 하늘

조회 수 675 추천 수 0 2014.11.01 07:24:40


감과 사과를 썹니다.

여행길에 좋은 요기입니다.

이번에는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먹게 될 것입니다.

손이 모자라 광평의 현옥샘 손까지 빌립니다.

거기 건조기도 있지요.

볕에 말리고 이슬 맞혀가며 말리면 좋으련

이번 주에 이르러서야....


이웃마을 대식샘과 영욱샘이 건너와

흙집을 손 좀 보았습니다.

내려앉은 세면대 위 천장을 나무로 막음하고,

세탁기 뒤쪽과 욕실 안 벌어진 틈도 백색시멘트로 메워주고,

달골 난간 떼어내고 뚫려 비 스미던 벽의 구멍도 막아주고.

지난겨울을 건너며 숙제가 되었던 일들.

비 많았던 때 아일랜드에서 자꾸 걱정이던 달골 햇발동 구멍처럼

흙집은 한해 내내 어째야 하냐던 문제아.

고맙습니다, 마음 덜고 떠날 수 있게 해주셔서,

마실 건너갈 가까운 이웃까지 생겼지요.


이번 주는 겨울 깊기 전 해야 할 물꼬 일들도 서둘러 챙기고

네팔 갈 준비도 좀 하여야 합니다.

하기야 떠날 준비란 것이 떠날 곳에 대한 정보를 얻기보다

떠나갈 곳을 정리 하는 게 먼저.

어디가 방점이냐 찍기 나름일 것이지만.

갈 곳에 대해 익히고 집도 단도리를 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정히 안 될 땐 집을 정리하는 쪽.

삶의 제 태도인 거지요, 그대의 태도가 있듯이.


그런데, 이것까지 꼭 할라고 한 건 아닌데,

그만 눈에 보여 버려,

사람들이 작업하러 온 김에 아이들 뒷간 앞 창고에 들어가서,

이제 더는 안 된다, 더한 청소는 눈 꼭 감고 다녀와 섣달에 하리라 했는데,

손에 대기 시작하니 끝을 보려,

하여 해질 녘까지 움직였더랬네요.

먼지란 건 또 쌓일 테고

쓰레기며 또 꾸깃꾸깃 쟁여질 테지만

뒤로 돌아가지 못한 동안 뒤란 비닐하우스와 남자해우소 뒤편은

던져진 상자며 여기저기서 나온 물건들이 마구잡이 널려있었지요.


헌데, 하다 보니 짜증이 좀 일었습니다.

왜 이러도록 일을 버려두었나,

일이란 자꾸 쌓이다보면 결국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커져

중요한 다른 일들도 마구 삼켜버리는 속성이 있지요.

이번학기 들어 뒤란을 살펴주지 못한 동안 그 지경에 이르른 것.


그런데, 찬찬히 마음길을 살피니 일어난 짜증이 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들어서는 더욱 아닌.

이까짓 게 무슨 삽질도 아니고 자갈 등짐도 아니고,

시간에 걸렸던(문제였던) 겁니다.

이번 주는 정말 네팔에 갈 준비를 해야는데,

겨우 오늘내일 온전히 짬이 좀 났는데,

그걸 이리 쓰고 있으니...

그간 한주살이였습니다.

주말 일정 중심으로 한 주를 살고

주말이 끝나면 다음 한 주를 준비해서 또 주말을 맞고

그렇게 지난 빈들모임까지가 끝났지요.

비로소 네팔 준비,

그런데 달날이 이렇게 던져져버린 겁니다.

(중요한 걸 먼저 하지 못한다 안타까워하실지도.

그런데 일상을 잘 챙겨내는 일만큰 중요한 일이 또 무에 그리 있을라구요.)


근데 말입니다.

누구 삶인들 그러하지 않은가요.

누구 삶이라고 일이 일을 몰고 오지 않더이까.

어느 삶이 일이 차례로 가지런히 오더란 말인가요,

어떤 삶이 무겁지 않던가요.


어릴 적 누구네 집이고 가면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언니오빠들이 사와서 집에 걸어둔 것이 있었습니다; 푸쉬킨의 시.

총총거리며 포드닥대고 있노라니

선배 한 분이 안쓰러워하며 보내준 시였더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는 것.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ЕТ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ВСЁ МГНОВЕННО, ВСЁ ПРОЙДЁТ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ЧТО ПРОЙДЁТ, ТО БУДЕТ МИЛО.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삶에 노여워 않기로.

전주에서 빈들모임을 마치고 물꼬까지 들어왔던 금룡샘은

이른 새벽 일터로 가셨더랍니다.

아무쪼록 곤하기 덜하길.

고맙습니다.

퍽 좋은 가을여행을 만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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