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1.달날. 눈보라 / 김장

조회 수 836 추천 수 0 2014.12.13 02:46:13


돌아왔습니다.

입국 예정이던 30일보다 사흘 일찍 인천공항에 닿았습니다.

아직도 밭에 있을 배추가 걱정되기 조금 서둔 걸음이었지요.

안나푸르나를 향했던 한 달여의 네팔행은

<히말라야의 아들>(자크 란츠만), <Into Thin Air>(Jon Krakauer),

그리고 <The Ascent of Rum Doodle>(W.E. Bowman)과 동행한 길이었습니다.


지난 쇠날 저녁부터 대해리에 들어와 이장님 댁부터 인사 넣고

학교 마당 건너 언덕의 된장집에서 겨울을 날 준비부터 하였습니다,

욕실 묵은 먼지며 하수구 구멍 때 청소까지.

학교에는 해마다 어김없이 이맘 때 들어오는

논두렁 이상찬님이 보내오신 소금이 다섯 자루 쌓여있었지요.

안나푸르나를 가면서도 여러 등산용품들을 선배로부터 빌렸더랬습니다.

천산을 넘던 재작년 달포의 실크로드 길에도 같은 까닭으로 도움이 컸던 선배입니다.

이장님이며 몇 어른들께 11월 한 달을 학교를 비운다 말씀 드려는 놓았으나

마을에서 몇 어르신들이 다녀도 갔다셨지요.

심심해서이거나 답답해서이거나 하소연을 위해서,

혹은 무언가를 부탁하러 들리셨을 겝니다.

차차 뵙거나 전화를 넣거나 해야겠지요.

교무실 자동응답기에도 겨울 계자에 대한 문의며,

지난 11월 19일 MBC 특집 다큐의 한 꼭지에 담긴 류옥하다의 이야기로

여러 통의 전화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막 버무리던 김치에 따뜻한 밥상까지 차려주신 읍내의 한 어르신은

비어있는 시간이었으니 생김치가 어디 있겠냐며

김치를 커다랗게 꾸려주셨더랍니다.

내 이러도록 착하게 산 구석이 있었던가, 무슨 복을 이리 누리나 눈시울이 붉어졌던.


29일 흙날 배추밭부터 달려갔지요.

비 내린다는 예보이더니 날 좋아 일하기 맞춤했던.

일 나간 엄마를 잘 기다려준 아이마냥 그간 날이 평년기온보다 아주 높아 푹했다던 날씨,

배추도 마음 쓸 것 없이 밭을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낼모레부터 눈과 함께 추워질 거라더군요.

마을의 한 어르신 부부가 트럭으로 배추를 실어주셨습니다.

황간의 유기농장 조정환 선생님 댁에서 올해도 함께 키워주신 배추.

“그렇게 배추를 정성스레 키워주고 내가 다 고맙데.”

출발하려던 트럭에서 굳이 내려 조정환샘 부부를 향해

두 손 모으고 허리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 어르신.

“무랑 파까지 실어주는데 친정 부모들처럼 내 마음이 다 고맙더라...”

여러 마음씀을 또 어르신들로부터 그리 배웠더랍니다.

볕 좋은 데서 부려놓은 배추를 땄지요(배추를 쪼개면 정말 그리 딱 소리 나는!).

100포기를 자르고는 그만 물집이 생겼습디다, 목장갑을 끼고 했는데도.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해마다 그리 김장을 해오셨을 겝니다...

20포기는 부침개도 하고 국도 끓이고 나물도 한다 남겼지요.

배추 일을 하는 앞과 뒤엔 비웠던 자리를 돌보았습니다.

화분들에 물부터 주고 부엌곳간이며 선반이며 쌓인 먼지들을 닦고 커튼도 빨고.

그리고 온 식구들이 모여 김장할 마늘을 까기 시작했지요.


30일 해날인 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진즉부터 올 김장을 도와주겠다던 마을의 두 어르신들을 기다리며

김장에 필요한 젓갈이며 몇 가지를 챙겨서 들여오고,

달골에도 올라가 화분들 물도 주고 들여다보고 내려왔지요.

작년까지 여러 해 김장을 돕던 아이 외할머니를

올해는 예서 알아서 해보겠다 걸음을 막아두었습니다.

추적이는 비처럼 조용히 오신 마을 어르신들과 배추를 절이기 시작했지요.

미리 바깥수돗가로 옮겨놓은 배추여서 절이기가 좋았습니다.

어르신들이 댁으로 돌아가신 뒤

지역도서관에 가서 몇 권의 책을 빌려도 왔지요.

그간 류옥하다는 제도학교를 다니는 가운데도 책을 부지런히 빌려다보고 있었더군요.

도서관 사서가 건네 온 인사로 알았습니다.

한밤, 네팔에 다녀온 짐을 그제야 풀고,

절인 배추를 뒤집어 놓고 자정에야 방으로 들어갔네요.


그리고 섣달 초하루인 오늘, 김장을 했습니다.

어제 오셨던 마을의 두 어르신이 이른 아침부터 건너오셔서 같이 배추를 씻고

물이 빠지는 동안 무도 썰고 같이 양념을 만들었지요.

작년처럼 밖엔 눈보라 휘몰아치고

가마솥방 안은 난로 위에 물이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버무린 김치에 점심을 먹으며 차도 달여 냈지요.

어디서 이리 맛난 게 있더냐며 다식도 맛나게들 드시고,

총각김치까지 담고 해지기 전 끝내고들 쪄낸 떡을 드시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일하던 바닥까지 닦아준 어르신들, 남은 일도 얼마나 많을 거냐며.

이 세상 어느 누가 내게 그리 할까,

고맙고 미안하고, 무어라 다 인사를 할 수가 없었던.

일하던 걸음으로 파김치도 담고 생강대추차도 한 양푼 만들었지요.

한 선배가 늘 하는 말, 하늘이 네 편이잖아.

그런가요, 그렇다 싶습니다. 물꼬 편입니다.

김치 다 묻고 나자 날이 아주, 아주아주 호되졌지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늘도 어르신들도 멀리서 늘 마음 보태주시는 분들도.


학교를 비웠던 시간동안 자리를 지켜주신 소사아저씨를 비롯 오간 걸음들 보탠 손발들 마음들,

모다 모다 고맙습니다.

이제 물꼬의 뜨거운 겨울, 거기 또 같이 걸어 들어가 봅시다려.


마을로 들어오던 저녁 버스가 쉼터 저 아래에서 돌아나갔습니다.

이 밤, 눈, 눈, 눈이 퍼붓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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