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불날 눈, 101 계자 둘째 날

조회 수 1442 추천 수 0 2005.01.27 09:50:00

1월 25일 불날 눈, 101 계자 둘째 날

요가를 중심으로 다루던 몸을
이 아침엔 우리민족 옛 체조로 해봅니다.
마침 남경샘이 해왔던 운동을 나눠주셨네요.
첫날이어서인지
고요하게 오래 바라보는 명상은
뒤로 갈수록 옷끼리 부스럭대는 소리가 잦아집디다.
(눈을 뜨면서부터 지은이가 배가 아프다 우는데
곤함이 겹쳐 더하지 싶데요.
어제 이른 아침부터 예 왔을 테니까.
오전에 뒹굴며 쉬더니 점심때부턴 괜찮댑디다.)

산골 마을엔 아직도 전설이 남아있습지요.
대해리 이 골짝도 예외가 아닙니다.
< 나뭇꾼과 선녀 >
그래요, 그 나뭇꾼 그 선녀는 어찌되었던 걸까요,
일설엔 하늘나라에서 잘 산다고도 하던데...
예도 산 있고 나무해서 땠던 시절 있으니
(아, 지금도 땔나무를 하지요)
나뭇꾼이 없을 리 없고
산이 작은 샘 하나 품지 않았을 리 없으니
선녀탕 하나 없을 리 없겠지요.
신선처럼 지금도 삶을 이어가는 이 곳 나뭇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도 세월을 타서
잘잘 끓는 기름 보일러 잘 쓰다가,
미군이 이라크 팔루자를 진격하는 동안
죽어나가는 죄 없는 아이들 여자들을 보며
다시 나무보일러로 바꾸었다는,
자기가 쓰는 석유도 그 사람들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성 위에.
저 눈들 좀 보셔요,
이야기가 무슨 늪인 양 빠져들고 있었더랍니다,
흐린 이 아침.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나무 하러 가면 혹 만날지도 모른다는 명우입니다.
"그러면 선녀는 아이를 둘 밖에 안낳았겠네요."
해인이는 너무나 진지합니다.
하루가 다 가도록 그랬댔지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깜빡 놓쳤는데..."
예, 이 곳 선녀는 하늘로 훨훨 날아가지 않고
나뭇꾼이랑 오붓하게 나무하며 잘 살았대데요.

그 길로 나무 하러들 갔습니다.
달골로 갔지요.
달이 머무는 골짜기, 우리 아이들 집(기숙사?)이 생길 저 건너 산.
버얼써 남자샘들이 자연사한 큰 나무들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숲으로 들어가
잔가지들을 꺾거나 잔솔가지를 줍거나 불쏘시개감을 긁습니다.
더러 톱질도 하고 낫질도 하고.
태어나서 처음 하는 톱질이라는 경표는 예제서 여간 바쁜 게 아닙니다.
창욱이도 못잖구요.
너나없이 바쁜데 준영이만 어슬렁거리네요.
"너는 추운데서 잘라구?"
"저는 시원한 것 좋아해요."
차가움과 시원함의 차이가 대해 말해보지만
썩 먹히는 것 같진 아니합니다.
그러다 학교 얘기가 나왔지요.
"효원초등학교요? 저는 거기가 더 좋아요."
"왜?"
"거기는 책으로 공부하는데
여기는 선생님이 말로 다 가르치잖아요."
치이, 넘들은 그래서 좋다더만...
"그만해요."
자루에 같이 솔방울과 나뭇잎들을 넣던 류옥하다입니다.
"에게, 가벼운데?"
"아니예요. 지금은 가볍지만 가다보면 무거워요."
"조금 더 넣어도 되겠는데..."
"사람이 지금 당장만 생각하면 안되지,
닥칠 일도 생각해야지..."
중얼거리는 류옥하다입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
자주 다리 쉼을 했지요.
"어휴..."
"그 봐요."
그래요, 일을 해본 사람의 지혜지요.
그는 지난 섣달부터 내내 나무를 하고 살고 있거든요.

기다란 나무를 두 셋이 어깨에 같이 메기도 하고
포대를 혼자 혹은 둘이 들거나
아주 큰 통나무를 끈에 매달고 둘이서 끌기도 하고
잔가지를 여럿 엮어 내려오는 녀석도 있고...
정화샘은 아주 나뭇단을 한 짐 이고 옵니다.
효립샘 남경샘 숙희샘도 어찌나 일들을 잘하시는지.
(숙희샘 말: 내 어릴 적 청도에서 나무하던 추억,
이 아이들도 나무 해봐서,
그런 아름다운 기억을 가질 수 있어 좋겠네)

나무하러 오르던 오전에 영운이 의로 차영이랑 나란히 걷고 있었지요.
"눈, 안 오려나?"
영운입니다.
"오지 싶네."그리고 정말 눈이 내렸습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마을을 지나 달골을 다시 오릅니다,
점심 먹고 따끈한 방에서 소르르 졸음이라도 올 녘.
(어, 소하가 코를 다쳐 금새 내려왔네요.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며 위로했더라지요.)
해본 가락이 있으니 이제 일들을 제법 옹골지게도 하더라데요.
갈 때부터 묻기 시작하던 새참,
네 시에 먹겠다던 걸, 결국 한 시간 전에 풀어야 했다고,
겨울 산에서 먹는 귤은 또 얼마나 꿀맛인지,
주전부리 없는 이곳이니 더욱...
"어, 눈 오네."
학교를 지키던 이는 으레 다들 내려오겠군 하고 있는데,
눈 내리는 숲에선 무슨 나무에서 돈사야 하는 나뭇꾼이기라도 한 양
그저 나무를 하더라지요.
뭘 않아도 숲은
우리에게 줄 것이 넘치고 말구요.
근데 나무까지 하러 들어갔으니
나무랑 돌이랑 벌레들이랑 만나는 질감이 더 유난스럽지 않았을까나...
(누구보다 조용한 혜린이랑 효빈이가 그리도 일을 잘하더라나요)
눈발이 굵어지고 어둠이 내려오고,
아이들이 쌓아놓은 나뭇짐에
어른들 입이 벌어졌습니다.
"이번 애들이 하루밖에 안했는데 지난번에 이틀 한 것보다 더 많다"고
불을 관장하시는 젊은 할아버지는 얼굴 환해지셨댔지요.

"방에 뭐가 있어요.
동물 같은 거 있나 봐요."
잔뜩 겁먹은 아진이가 눈을 크게 뜨고 가만가만 속삭였습니다.
모두 뚤래뚤래 했겠지요.
온 몸 바쳐 움직이는 효립샘,
기어이 저녁 먹고 노곤함을 못견뎌 잠시 눈 붙였는데
그 짧은 순간 코까지 골았던 거였더이다.

슬라이드로 동화도 하나 읽고
한 밤 토끼몰이도 하였더이다.
학교를 중심으로 큰마와 댓마가 나갔던 지난 겨울 토끼몰이처럼
열다섯 마리, 아홉 마리씩 잡았지요.
그런데 하루 지나 큰마에서 두 마리가 덜컥 죽고
댓마에서 세 마리 새끼가 나더니 다음날 또 한 마리가 나
결국 두 동네가 비긴 얘기 말입니다.
가끔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 어떤 게 진실인지 모르겠는...
오늘 밤에도 그 모양으로 함께 만세 부르며 놀이가 끝났다지요.

"저 어릴 때 텔레비전에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이근샘의 얘기가 여운을 오래 남긴 밤이었더랍니다.
나중에 책 시리즈도 나왔다는데,
노변담화라고 난롯가에서 따스하게 나누는 얘기들,
도시락 쌓고,
그 소중한 추억들을 먼저 짚더니,
"지금도 난로 주위에서 이렇게 둘러앉으니 옛 생각이 나면서..."
그가 이곳을 오는 까닭을 들려줍니다.
아이들을 통해서도 많이 배우지만
하루를 마치고 샘들이
아이들을 놓고 조심스레 생각을 나누는 하루재기 자리에서
정말 많이 배우신다합니다.
"제가 여기 오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티벳불교도 인도불교도 그렇고,
'우주적 본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거 있지요,
우린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데,
물론 잠깐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 안에는 그것이 잘 내재 돼 있는 것 같애요,
오늘 같은 노동의 결과물도 놀랍지만...
교대 교육과정에서는 그런 걸 익힐 기회가 없거든요..."
그래서 계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며 눈물을 흘리는 모양이라고,
이 고생스런, 불편하기 그지없는,
그 불편을 어른들이 메우려드니 더욱 힘든 이 곳에 오고 또 오는,
서른 두 살 총각 이근샘,
문창과를 졸업하고 일을 하다 다시 수능을 쳐서 교대 3년이 된 그에게
선생님이란 어떤 자리일지를 가늠해 봅니다.
그렇게 오가는 품앗이들을 통해
아이들 앞에 서려고 준비하고 각오하는 자세를 배우는 저희이지요.
그 처음을 배웁니다.
그를 만나는 일은 참말 즐겁습니다.

아이들 혹여 추울세라
샘들은 밤새 한두 시간 씩마다 불을 살핍니다.
낼은 효립샘이 나가는 날이라고 가면서 자면 되지 하시며
밤새 당신이 불 앞을 지킨답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 마음이 그런 건가봅디다.

눈은 기세도 꺾지 않고
이 밤에 내리고 또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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