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5.쇠날. 구름

조회 수 782 추천 수 0 2014.12.25 05:03:07



기온이 많이 떨어졌고 소사아저씨는 화목보일러에 불을 지폈습니다.


핏빛 동백이 졌다.

평지돌출로 일어서 조선의 낡은 질서를 깨뜨리고, 조선의 민중운동을 창작하고 전개했으며,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 싸운 '녹두장군' 전봉준은 그렇게 이승을 떠났다. 그가 종로 네거리에

뿌리고 싶어 했던 그의 피는 곧 그의 말이려니, 그 말은 여직 우리 귀에 생생하지 않은가.

; 소설 <동백>(전진우/나남/2014)의 마지막 문단


나라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도 좋아, 그러나저러나 어째도 우리는 살 거니까,

제발 우울하게 만들지만 말아다오,

요 며칠의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그 우울증 위에 동백꽃이 떨어졌지요, 투욱!

나는 울었다, 라고 썼습니다.

정윤회 게이트,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공교롭게도 이즈음 읽게 된 <동백>으로,

그예 이 나라 구성원으로서의 설움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지난 10월 빈들모임에서 동학의 흔적을 좇으며 전주를 걸을 때 같이 나누고팠던 <동백>을

한 달의 네팔 여행 뒤로 미루며 이제서야 책장을 덮었군요.


<동백>(전진우/나남/2014)

다시 갑오년에 쓴 역사서, 120년 전의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부패하고 무능한 지배층과 침략한 외세에 맞서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궐기했던.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뛰어난 사상적 운동·투쟁(1년여 연인원 30만 명의 농민대중 참여)에서

최소 3만 명 이상의 민초들이 희생되었고,

나라는 망국의 길에서 비틀거린.

최현식, 한우근, 신용하, 이이화, 박종근, 김인환 선생 들의 저서와 송기숙 한승원의 소설,

강창일 이효숙 김양식 박맹수 배항섭 서영희 양상현 우윤 이광재 이진영 정창렬 한상일 들의 논문 및 평전,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사료를 바탕으로 썼다 했습니다.

소설이나 기록문학에 가깝다 할.

가장 최근에 나온, 그래서 종합적인 보고서 같은.


왜군을 몰아내달라는 대원군의 밀지를 받고 김개남이 눈이 벌개졌을 때

(전봉준 장군에 가린 그를 우리는 분명 다시 조망해야 할 것),

동학군 일구(막치)가 우금치싸움에서던가 아내 분이와 헤어지던 때를 그릴 때,

결국 살아남는 것이 또한 중요한 거라며 지리산으로 돌아가 처자를 지키라 할 적

윤덕술이 전봉준 장군 앞에 엎드려 울 때,

덩달아 눈시울 붉어졌습니다.


집강소를 통해 민군이 내세운 폐정개혁 12개조 일부를 들여다보면,

- 청춘과부는 개가를 허용할 것

- 관리채용은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分作케할 것(정약용의 <경세유표經世遺表>에 담긴 정전제井田制 구상을 원용한 경작평균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었음).

유교사회 안에서 평등을 앞세우고 혁명을 꿈꾸었던 것도 놀랍지만

‘집강소’의한(실제 혁명 당시 호남지역에서 시행한) 철저한 자치와 ‘합의정치’에 의한 국가체제 구상은

현실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그것을 바꾸기 위한 처절한 실천투쟁에서 얻어낸 성과.


543p

1월 24일 경성으로 압송된 전봉준이 남산 아래 진고개의 일본영사관 순사청에 구금되었을 때, 일본군 후비보병 제 19대대 사령관 미나미의 신문;

“너희들이 백성을 선동하고 난을 도모한 이유를 상세히 진술하라.”

545p

1월 26일,

네가 경성에 쳐들어온 후 도대체 누구를 추대할 생각이었느냐

일병을 물러나게 한 뒤 부패한 관리를 쫓아내어 임금의 곁을 깨끗이 한 연후에 몇 사람 주석柱石의 선배를 내세워 정치를 하게 하고, 우리들은 곧장 시골로 돌아가 상직인 농업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사를 들어 한 사람의 세력가에게 맡기는 것은 그 폐해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몇 사람의 명사들이 합의한 법에 의해 정치를 담담하게 할 생각이었다.

신문에 배석했던 법무아문 참의 이재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자가 서양의 입헌군주제를 알고 있었던가? 그렇다면 대원군이 저자를 이용하려 한 것인가, 저자가 대원군을 이용한 것인가?


다 알다시피 오늘날 한국정치의 근본문제는 모든 권력을 대통령이 독점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 이 나라는 민주공화체제라면 반드시 작동해야 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거의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헌법기관’임에도 여당의원들은 오로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고, 검찰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법부조차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것이 바로, 군사독재정권과 싸워서 민주화를 쟁취한 지 25년 이상이 된 지금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왕조 말기 동학농민군이 궐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정치현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결국, 전봉준 장군이 구상했던 자치와 합의의 정치만이 합리적이고 건강한 정치를 보증할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최고 권력자 개인의 인간적 자질과 품성과 능력에 정치적 의사결정이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무책임한 정치, 어리석은 국가운영을 초래할 수 있는지 지금 우리는 매일매일 끔찍하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가들 개개인을 비난하기 이전에 먼저, 이 의롭지 못한 허망한 정치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칼럼 “[김종철의 수하한화] 녹두장군이 꿈꾼 ‘됴흔’ 나라”에서)



서울에서는 한 역사모임에서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모임이 따뜻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모이기 힘들겠지요.

(그래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며 또 모여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통이 좋고 의미가 있는데도 자리가 그리 쓸쓸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배움이었지요.

불편하고 먼 이 골짝 물꼬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재미난 걸 생각하면

다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내 어린 벗들, 내 사랑하는 동료들이 한없이 그리웠습니다.

이들과의 뜨거운 겨울을 기다립니다.

어여 어여들 오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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