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나무날 맑음, 101 계자 넷째 날

조회 수 1415 추천 수 0 2005.01.30 16:11:00

1월 27일 나무날 맑음, 101 계자 넷째 날

"너무 짧아..."
엿새 가운데 나흘 밤쯤 되면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답니다.
나흘이 훌러덩 가버렸네요.

교실이 열렸습니다.
물론 제 하고픈 대로 모이지요.

가사:
바느질로 생활소품 만들기를 했습니다.
영운이와 의로가 도움꾼으로 형님 역할을 해주었지요.
자기가 아는 것을 발전시켜
알려주지 않은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일찌감치 지갑을 완성하고 영어놀이를 기웃거리거나
미술방을 넘겨다보고 다니는 하다,
소리 없이 오직 바늘과 천을 바라보며 한땀두땀 잇는 소하,
동생 주려고 뭔가에 열중인 해인,
거실 소파에 둘 쿠션을 완성한 차영,
다했는데 잘 안돼서 풀렸다지만 다시 해볼 거라는 지은,
새 쿠션에 도전한 지혜
("니네 자매가 너무 많이 울던 걸, 울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
슬쩌기 놀렸는데, "이제 그게 줄었어요." 지혜가 그랬지요).
한데모임에서 자랑도 있었겠지요.
대충 만들어서 부실 공사 되었다는 의로의 가방에
아이들이 한마디씩 위로도 했고,
의로만 한 것 만들고 싶은 아쉬움이 있었으나
자신이 얻은 만족감을 전하는 영운,
쿠션과 주머니를 자랑스럽게 든 아진,
그리고 상수샘까지도 작은 작품 하나를 들어보이셨답니다.

실과:
사실 가사과목의 다른 이름이지요.
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익혀보기로 합니다.
가라앉지 않는 뜨개질 열풍으로
자연스레 실을 다루게 되었네요.
아대와 머리띠를 만든 뒤 목도리를 시작한 아리,
효빈은 손가방에 계속 몰두하고 있고,
머리띠에 동전지갑도 만들어본 은비
(이 방에선 그가 좋은 도움꾼, 형님이 돼주었지요),
기어이 아대를 완성한 창준
("낼 업그레드 시킬 거예요."),
토시를 뜨는 중인 용균,
손목아대에 꽃까지 달아본 민재,
그리고 머리띠에 고무줄도 이어서 하고 다니는 한결.
이네들은 아예 밥이고 뭐고 이것으로 배부르고 있었지요.

미술:
하고픈 게 너무 많았지요,
할 수 있는 것도 참 많았구요.
그런데 어제 주물럭에서 남은 재료가 있더라구요.
'다시 쓰기'는 어떨까...
그래서 종이죽 밀가루죽에 색종이를 더해보기로 했답니다.
어제 주물럭을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으나
중심생각이 달라지니 것도 재밌어라 했지요.
동물농장!
저는 다만 곁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둘러 앉아 역할들을 나누는 듯도 하더니
한번씩 쳐다보면 어째 진척이 없습니다.
딱히 나서서 일을 몰아가는 아이가 있는 경우도 아니고
한 시간이 가고 십 분이 가고 또 십 분이 가고...
그때 바느질을 끝낸 의로가 다가오길래
좀 도와주는 건 어떠냐 하니
(제법 손이 야문, 생기 있는 그가)
내 해왔던 양 동물들을 빚어대데요.
그러자 모두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공간이 채워지더니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더하고
종이로 접은 동물도 배치합디다.
아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그렇게 절묘한 반전의 자리를 보는 건 늘 경이이지요.
혜린이 준희 원석이 정원이 희선 소진이가 함께 했더랍니다.
아, 동희가 그림을 그리 잘 그리는 줄을,
비율 감각이 뛰어난 줄을,
글집에 그린 그림으로 그 시간에 알았더랍니다.

자연:
토끼사냥을 떠나기로 하네요.
눈 내린 산이니 설화(눈신발)가 있어야겠지요.
짚으로 엮진 못했지만 종이끈으로들 엮었더이다.
현빈 경표 현철 현수 재홍 용균 창욱이
자기 것을 먼저 만들고는 다른 이를 돕거나 잘 지켜보고
청소까지 깔끔하게 했다지요.
젊은 할아버지가 오셔서 끈 매는 것도 도와주고
대나무도 잘라주셨답니다.
그걸 한데모임에서 보여주고 있을 때
손 번쩍 들고 알려주었지요.
"대나무를 불에 살짝 구우면 쉬 굽혀져요."
물꼬의 상설학교 아이들이 스스로연구를 통해 안 지식이었노라
자랑도 잊지 않았지요.
류옥하다도 한마디 보탭니다.
"대나무 쪼갤 때 마디 안쪽을 벗겨내면 쉽게 잘려요."
지난 학기 물꼬 아이들의 학술제에서 얻은 정보였던 게지요.
상설학교와 계자가 그런 교류들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더이다.
"비록 신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집에 가서 언젠가 다시 할 토끼사냥을 꿈꿀 것입니다."
승현샘이 그러시데요.

영어:
어제 폐강됐던 과목이지요.
오늘은 성빈이 찬슬 청민이가 구제해주었습니다.
팔 품사 상자를 만들어서
낱말들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데요.
남경샘은 평가에 대한 부담 없이 학교에서도 이리 하면 좋겠다셨지요.
류옥하다가 왔는데 글씨 쓰인 상자엔 시큰둥하더랍니다.
그래서 물꼬에선 영어를 어찌 하나,
활자로는 안하는 것 같다 자꾸 궁금해라셨습니다.
우리 역시 별 뾰족한 수 없이 넘 하듯이 하지만
활자로는 안하고 '몸으로 통으로' 한다 했지요.

특별반:
"특별한 반, 어떤 목적으로 같이 모이거나 하는 방이지요.
어느 학교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모아 부르기도 하던데
어쨌든 특별한 반인 겝니다."
어제의 다싫다 주구성원들이 신청을 했네요.
"아, 좀 모지래는 애들이구나!"
우리는 놀려주기도 했지요.
뭐 전혀 개의치 않는 재준 명우 현재 경태입니다.
학교 대문 머리 위 떨어진 '유'자를
어떻게든 만들어 붙여보려고 애쓰다가
표지판을 새로 하나 묻는 걸로 대신했다데요.
본관 건물 뒤로 돌아가
아궁이에 달걀과 감자까지 구워먹었다 합니다.

한 패가 방에서 우리가락을 하고 있을 녘
보글보글패들은 만두와 떡볶기 부침개를 해서
간식을 날랐습니다.
만든 이보다 앉아 받는 이들이 더 풍요로이 먹었다지요.

그림책 하나를 읽어줍니다.
듣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호경샘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합니다.
아이들도 모두 숨소리가 낮았지요.
동적인 것들과 정적인 것들을
늘 적절하게 배치해 보려 합니다.

한데모임도 길었던 오늘, 샘들 하루재기도 깁니다.
불을 보는 숙직샘을 위한 배려로도
잠들을 미루어주기도 하구요.
그래서 공식적인 모임 아니어도
아이들 얘기가 넘치고 넘치는 밤이었네요.

"한데모임에서 숙희샘이 하신 말씀이
단지 적절함을 넘어 깊은 얘기"였으며
"이근샘, 도시농부학교도 다니고
유기농 무기농에 대한 지식이며 나은 데다,
고민하고 애쓰는 모습"보며 자극이 되더랍니다, 상범샘이.
"(물꼬에)오래 있으면서 묵은 것도 있구나..."
많이 배우고 깨쳐야겠다 합니다.
희정샘은 부엌에서 나름대로 규모를 잡고 하는데
오늘 자신에게 '상처'가 된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마음에서 불편을 일으키고
늘 그런 걸 다 안고 가면 맘이 얼마나 지옥일지요.
상범샘과 희정샘이 물꼬에서
새학년도에 연구년을 쓸 것을 권유를 받은 까닭도
오늘 나온 이야기 같은 것들이 배경인 셈이랍니다.

남경샘은 오늘 한데모임이 아주 감동적이었다 합니다.
"옥샘은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많이 아쉽다 하지만
(회의)이렇게 할 수 있구나,
고등학교는 그런 시간 자습 시키거든요,
어른들도 저 정도까지 인내하고 있구나,
내가 안들었구나(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이틀을 (한데모임)못들어왔는데, 이게 하이라이트구나..."
보글보글방은 스스로 많이 아쉬웠다 합니다.
과정에 대한 공유가 아이들과 없었고,
눈에 뭐가 돼 가면서 아이들이 흥분하니 만드는 게 더 안되고...
"시작하기 전 기준을 잘 세웠더라면,
과정을 잘 설명해주었더라면"하고 반성하셨답니다.
그런 고백도 이어지데요.
"어제까지 힘들었습니다.
여기는 대안학교고 공동체인데
평소 모습보다 더 친절해야 되지 않을까,
그게 부자연스럽고 힘이 들다가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나니,
화도 내고 하니까제 제가 행복해졌어요"

숙희샘도 오늘은 말씀이 깁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여기서는 하는 구나시데요.
"삶과 교육이 같이 사는, 애들은 지켜보고 있고, 모든 게 드러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설 수 없는 자리,
내 위선적으로 살 수 있었던 장치가 지금 학교시스템이구나...
(가르치는 공간이기만 한, 퇴근하는)"
이곳의 한데모임에 대해서도 여느 어른들처럼 말씀을 보태십니다.
더구나 현장에 계신 분이니 본 바가 많으시겠지요.
"어른들 사이에서도 참 안되는 거지요.
남을 비난하고 징계하고,
찬반 투표(다수결의 횡포, 혹은 대안찾기 부재로)하기 바쁘고,
회의라는 게 늘 들춰내고 지적하고, 별일이 아닌 걸 가지고,
우리가 그래야 할까, 너무 괴롭게,
그런데도 회의는 계속 그렇게 진행되고..."
돌아가면(새학기) 학급회의를 바꿔야겠다십니다.
"민주주의, 아무도 경험 못했고 교사인 나도 못했고,
이런 반성의 시간에 감사합니다.
어디가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지요.
경력 많으면 그 경력만큼 교사가 돼야하는데,
학교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교사가 왜 안되는가,
온갖 정책, 논문, 돈도 들이고..."
여기선 날마다 샘들이 아이들 얘기를 이렇게 하고
내일 일을 논의하고(학교에는 이런 장치가 없는데),
여기오니 가슴이 탁 트이신데요.
교사로 지내는 한은 영향을 미칠 것(받을 것) 같다십니다.
그런데 꼭 같은 걸 해도
어떤 이에겐 감동이 어떤 이에겐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지요.
잘 읽을 수 있는 것도 준비인 것 같더이다.
워낙에 이번에 품앗이로 온 샘들은
나를 내려놓고 좀 보자, 그랬던 것 아닌가 싶습디다.
별 것 아닌 것도 귀하게 보고
많이 보시데요.
그리고,
물꼬는 이 겸손한 샘들을 통해
다시 우리 자신을 찬찬히 살펴본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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